종합감기로 고생하고 있는 요즘이다.
목 아프고 콧물 질질에 머리는 띵~ 하고
찬바람만 쐬면 연타 재채기.
내 사전에 입맛이 없어 본 적이 사십 몇 년간 별로 없었고
혹여 입맛 안 땡기면 밥 맛으로 또는 반찬 맛으로 머든지 무쟈게
잘먹는 나로서는 .. 무얼 입안에 넣으면 소태같이 쓰다는 것을
그간 표현상으로만 알았지 실감해 보지 못한 터 였다.
그런데 요 며칠, 내 혀는 감각을 상실함과 동시에
무얼 먹어도 씁스름 한게.,. 음식을 씹어 삼킨다는 자체가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을 먹고 삼키고 소화 해야 한다는 그 짜증.
그러면서도 배는 또 어김없이 고파지는 더한 짜증.
냉장고를 열어보니 늘상 자리 하는 것들..
김치, 계란, 과일, 채소 ,마른 반찬 몇개
냉동실엔 생선, 고기 몇 덩어리 등등...
에이 씨.. 하고 냉장고를 쾅~ 닫으려다가
비닐봉지 한 뭉치. 내 눈에 뛴것이 왕다시멸치다.
냄비에 물을 담고 왕멸치를 듬뿍 넣고 신김치 넣고
밥 몇 주걱 넣고 부글 부글 끓이다가 생각난 김에
감자도 좀 썰어 넣고 양파도 넣고 김치찌게용 돼지고기도
몇점 넣고 콩나물 넣고 푹푹 삶으니 [꿀꿀이 죽]
그런데 희안도 하지. 날계란 하나 풀어서
퍽퍽 퍼 먹는데.. 그 꿀꿀이 죽이 내 입맛을 돌아오게 한거다.
막힌 코도 뻥 뚤리고 땀 뻘뻘 흘리며 퍼 먹다 보니
이기이 바로 내 어릴적 먹던 그 [갱시기 국밥]맛 이었던 기라.
난 왜 여적 이 맛과 이 음식을 잊고 살았을까??
경상도가 고향인 나이지만 어릴적에 고향을 떠나온 처지라
이 꿀꿀이 죽같은 국밥의 어원이 왜 [갱시기] 인지 모른다만.
묵은김치에 밥이랑 라면도 넣고 국수도 넣고 고구마도 넣고
콩나물도 넣고 밤도 넣고 이것 저것 있는대로 남은 반찬 넣어서 끓여 먹는
경상도식 [갱죽]이 아마도 그 어원이 아닌가 싶다.
겨울의 갱죽, 잊혀져가는 이 맛은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갱죽] 또는 [갱시기] 라고 부르며 차가운 날씨에
날도 추분데..뜨끈하게 갱시기나 해묵자... 하면서 솥에 펄펄 끓여대던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이상한 그 음식 이었던 것이다.
(난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식은 밥과 남은 반찬, 묵은 김치를 썰어 솥에 대충 붓고 물을 넣어서 끓인 음식.
거기다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저어 먹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상한 음식의 이름이 왜 [갱죽] 이었을까??
궁금한 김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갱은 제상에 올리는 ‘메와 갱(羹)’ 할 때의
그 갱인 것 같단다. ‘메’는 밥이고 ‘갱’은 무우 같은 야채와 고기를 넣고
오래 끓인 국이다. 죽은 말 그대로 죽인데 물이나 국에다 밥을 넣고 끓여서 만든 죽이다.
쌀알을 넣어 끓이는 죽과 달리 이건 한번 밥이 된 것을 다시 끓인다는 게 다르다.
그러고 보니 갱죽은 ‘다시 고친다’ 할 때의 ‘갱’(更)인지도 모르겠다며
갱죽의 다른 말인 [갱시기]는 [갱식]에서 나온 말.
밥과 반찬에서 다시 모습을 바꾼 음식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는 설명이다.
암튼 난 손수 끓인 갱시기 한사발을 땀을 뻘뻘 ~ 흘리며 퍼먹고
포만감에 젖어 있자니.. 어디선가 ... 밝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마당에서 김장 품앗이를 하던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정지간(부엌)에 옹기종기 모여 커다란 솥에 이상한 죽을 끓이며
하하~ 호호~ 웃던 웃음 소리다.
"돼지고기는 다 삶깄드나??? 속 버무리고 배추속 쌈싸서 묵자. 마~" 하시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린다.
엄마.. 나 감기 걸렸는데.. 하문
"뜨끈하게 국밥 끼리서 퍽퍽~ 퍼묵고 이불 뒤집어 쓰고
땀 푹~~~~~~ 내면 감기 낫는다 카이.." 하시던 어머니.
난 어쩌면 문득...또는 여러가지 생각으로
오늘 갱시기 국밥을 끓여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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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뜰
갱시기 국밥
도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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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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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갱시기 국밥이라이 웃음이 나온다. 난 어릴때 부산에서 자라면서 그낭 갱시기죽 이라면서 많이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도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 정겹다는 생각이다.
얼마나 맛있는건데. 난 아직도 좋아해~ 추운 겨울철에 먹으면 정말 제맛이야. 콩나물에 떡점넣으면 아흐~ 감기엔 정말 딱이다. 오늘 땀 푹~ 내면 내일이면 낫겠다. 무조건 건강해야한다. 빨리 낫기를 바래.~
침이 넘어 가는 갱시기 국밥이네요....
많이먹고 건강찾그래이...먹다 죽은귀신 땟갈도 좋다란 말을...명심하면서..ㅎ
이제 곧 한 살 더 목어야되니 됴님아 아프지 마라
됴...두살때 울 아베 군대갔을 때, 쌀떨어져 시래기 넣은 풀죽쒀준 우리 어매 먹지 못하게 모퉁이에 뒤돌아 앉아 먹을 때의 그 맛이 기억나네....... 새처럼 날아왔네. 갱시기란 말꼭지 한개 물고.... 여름철새되어 가기도 하지만 겨울철새되어 오기도 하는 데
됴~ 그거 남았으면 같이 좀 묵자. 나날이 죽을 맛~!
갱시기..정지..삶았드나...경상도네요...^^ 정겹습니다.
우리집은 지금도 가끔 남편이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등장하는 단골메뉴입니다. 보기엔 좀 그래도 그 맛에 매혹되는 충청도 양반들도 더러 있더군요. 술마신 다음날 속풀이로 제격이지요. ㅎㅎ
나는 전라도 쪽이라 갱시기는 모르지만 내도 함 묵어봤심 허네그려 ??????
우리도 남편이 가끔 갱시기국밥 얘기를 하는데.. 오늘 점심쯤은 갱시기국밥으로 ...^^
오늘 김장 해서 보쌈 먹었는데......울 친정집에서......그 맘 알것 같아요.
아직도 내가 모르는 음식이 있구나.. 나름데로 미식가 인데..
처가쪽이 경북 성주인데... 잔칫날이라고 모이면 양푼에 이것저것 넣고 국 한바가지(?) 부어서는 박박 비비더라. 서로 머리통 비벼대면서 먹는 걸 보고는 "참~, 식성도 희한하네......"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