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렉투스
정끝별
의자를 밟고 책상을 밟고 책장꼭대기에 꽂힌 갈매기의 꿈을 손에 쥐려는 순간
폭탄처럼 날았다
두 발을 떼고 두 팔을 퍼덕이다
한발 먼저 추락한 한 발이 바닥에 깨지고서야
부서진 한 발은 종교가 되었다 성물처럼 깁스붕대로 감싸 심장보다 높이 떠받들어야 하는
엉덩이로 밀고 다니니, 먼먼 바닥
휠체어에 앉으니, 어딜 가든 섬
목발을 짚으니, 언제 가든 때아닌
바닥이 넘치고 시선이 떨어지고 속도가 멈췄다
한 발을 잠시 잃고서야
두 발이 날개였음을
발자국이 있어야 바닥을 날 수 있음을
중력에 맞서 한 뼘 남짓한 두 발바닥에 저를 세워 저를 내딛는 이 사소한 직립보행이
인간 기적의 등뼈임을 말미암아 믿겠다
―《시인정신》 (2023 / 봄호)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해오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시학서로 『패러디 시학』, 교과서 시 다시 읽기 책으로 『시심전심』, 평론집으로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시 해설집으로 『밥』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돈 詩』 등이 있다. 유심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청마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