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007'에 납치된 진의는?
"영화의 세계를 재현"하는 힘을 과시하고 싶어서
모친의 옷을 입고 일본 니가타시의 자택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요코다 메구미의 모습.
이 해 가을에 북한에 납치되었다
(1977년 1월, 요코다 메구미의 부친이 촬영)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서 북한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납치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빈발했다. 대다수는 일본인을 포함한 외국인을 협력자로 끌어들여, 납치 피해자의 신분을 세탁하여 '위장하는 것'을 노린 것으로 간주되는데, '대남 공작의 수행'이라는 목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건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당시 일본의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던 요코다 메구미(横田めぐみ)를 납치한 사건이다.
북한에 의한 납치는 공작을 총지휘한 김정일의 개인 성격을 파악하지 않고는 해명되지 않는다.
"김정일은 제임스 본드의 <007> 시리즈 영화를 빠짐없이 입수해서 반복해서 보았다. 그는 공작기관을 자신의 것인 양 움직였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현실을 영화처럼 연출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주한 미군의 정보 부문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약 40년 동안 450명 이상의 탈북한 (북한의) 전임 고위관료 및 공작원 등을 심문해왔던 마이클 리(Michael Lee)는 북한의 공작에 영향을 미친 김정일 특유의 취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그는 무엇보다 스파이 놀이를 좋아했다."
<과거 미국의 탈영병 젠킨스 씨가 출연해>
김정일이 영화를 좋아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그가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800개 이상의 영화를 '제작'했다고 북한의 공식 미디어가 전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모양이다.
납치 사건이 빈발했던 1978년 무렵 김정일이 '북한판 007'이라고 불리는 시리즈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제작에 대해 총지휘를 맡는다. 당시 김정일의 관심이 어디로 행해져 있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전체 20개에 걸쳐서, 북한 공작원의 활약을 묘사하고 귀국한 납치 피해자 소가 히토미(曽我ひとみ) 씨의 남편으로 원래 미국 탈영병이었던 찰스 젠킨스(Charles R. Jenkins) 씨도 출연하는 영화를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한국 전쟁 발발 이후, 홍콩을 거점으로 공작 호라동을 했던 주인공 유림은 영자 신문사의 기자로 위장하고 한국에 잠입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유능하고 신사적인 태도로 활약하는 주인공은 미국 정계 및 재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정도의 대물 기자가 되어, 한국군의 장교에게 접근하여 미군의 작전 계획을 입수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하는 결말이다.
유림과 여성 스파이 순희와의 애증극을 교차시키는 등, 오리지널 '007'을 흉내낸 스토리 전개도 주목을 끈다.
CIA에 근무하는 순희의 정체는 북한 공작원이라는 설정으로, 그것을 알지 못하고 적대하는 유림을 순희는 몇 차례나 비밀리에 돞고, 위기의 순간에도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아름잡고, 기지가 풍부한 여성 공작원은 북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권의 청년들을 매료시켰다.
영화는 1970년대 말에 중국에서도 TV 방영되었고, 중국 베이징대학에 다녔던 필자도 꿈 속에서 그려보게 되었다. 방영 시간에는 학생의 대다수가 (대학교) 구내에 몇 대 밖에 없는 TV 앞에 모여서 작은 브라운관 앞에 모여들었다.
서방 측의 오리지널 '007'을 눈으로 보았던 적이 없는 중국의 학생들은 북한 공작원의 세계에 빨려 들어갔고, 순희와 유림에 대해 동경을 하게 되었다.
<전투 장면에 군 1개 사단을 동원해>
영화로부터는 이 시기에 북한이 얼마나 공작원의 세계를 미화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유능한 공작원에게 국가의 위신을 걸었는가 하는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스파이를 좋아했던' 김정일의 취향이 반영된 것 등은, 당시에는 알래야 알 수도 없었다.
김정일은 시나리오와 캐스팅, 연기, 음악에 이르는 전체를 '총지휘'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 리진우(李振雨)는 공작기관의 사령탑이라고 말할 수 있는 '3호 청사'의 도서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콜렉션의 해외 차량을 촬영에 제공하고, 전투 장면에 조선인민군 1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시키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
"혁명 전사이기 때문에 웅장한 연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 (공작원은) 과묵하고 절제된 연기를 하는 편이 좋다"라고 직접 주인공의 연기 지도에 관련해서도 (김정일은) 말을 했다.
김정일의 내처(內妻)의 누이였던 성혜랑(成恵琅)은 수기에서 당시 김정일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만약 김정일이 권력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다. 정치로 분주한 부친(김정일)은 그의 아들(김정일)을 방임했다. 무제한의 권력과 호화로운 사치 가운데에 그 누구로부터의 간섭도 없이 본능만이 성장했다".
(이른바) '위대한' 부친의 그림자에 뒤덮여, 김정일은 권력의 안쪽으로 돌아가 측근을 상대로 무제한의 권력과 호화로운 사치를 보임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고자 했으며, 충성을 얻어내고자 했다. 영화 제작은 주위에 자신의 전지전능한 모습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라고 하는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은 보통의 감독도 가능한 일이다. 김정일이 달랐던 것은 '현실의 세계'를 '영화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열등감을 채우려해>
김정일을 만났던 경험이 있는 세계의 연구자 및 기자, 망명자를 인터뷰하여 그의 정신구조를 분석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의 전임 교수였던 조영환은 <매우 특별한 인물, 김정일>이라는 저서 가운데에서 "김정일이 대한항공 폭파 사건을 일으켰던 것은 자신은 영화와 같은 세계를, 현실 세계에서도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었다"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키가 작고, 체격도 왜소한 김정일은 무의식적으로 외견상의 모습에 대한 열등감을 보완하기 위해 밑창을 올린 구두를 신고, 크고 기이한 목소리를 지으며 웃는다. 보통 사람은 하늘을 우러러 볼 정도의 '관대함'을 (보여주고자) 연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공작 부문을 장악한 김정일은 그때까지의 공작기관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을 해낼 필요가 있었다. 무차별적인 외국인 납치는 프로 스파이의 관점에서 보아도 (이는) 실로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탈출하는 한국인 여자 배우 최은희는 수기 <김정일 왕국>에서 상식으로는 추측할 수 없는 김정일의 언동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납치된 지 약 1개월이 지난 1978년 2월 16일, 김정일은 자신의 생일에 이끌려온 최은희에게 자신의 자식을 소개하는 등 관대한 태도를 보이면서 영화와 관련해서 말을 나누게 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 여사가 출연한 영화는 모두 갖고 있습니다. <저 눈밭에 사슴>이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최 여사는 본처 역할이었고, 윤정희는 첩 역할이었습니다. 최 여사가 얼마나 상심하셨을까요. 하하하. 윤정희는 실제로 조금 얄미울 정도로 귀여웠답니다. 하하하".
윤정희는 최은희를 납치하기 6개월 전에 유럽에서 납치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한국인 여배우이다. 김정일이 "조금 얄밉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은 도망쳐버린 후회를 표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은희에게 '동정적'이었던 것은 이미 자신의 수중에 있으며 바라기만 하면 언제라도 자신의 얼굴 앞에 끌고 올 수 있다고 하는 우월감의 표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보이는 각국의 납치 피해자 수
[국적] 한국 517명(한국전쟁 휴전 이후)
일본 17명(일본 정부 인정)
말레이시아 4명
레바논 4명
프랑스 3명
이탈리아 3명
중국(마카오) 2명
네덜란드 2명
태국 1명
싱가포르 1명
요르단 1명
루마니아 1명
마이클 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김정일은 엽기적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공작원을 움직이게 했다. 외국으로부터 납치된 사람(즉 외국인)도, 그에게 있어서는 '조달품'의 하나였을 지도 모른다."
*필자: 일본 龍谷大教授 李相哲
*일본 <산케이신문>(2015.9.8.) 기사의 전문을 옮긴 것이다.
[관련 참고사항]
리진우는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월북하였으며, 그의 친척들이 대부분 한국에 있었다. 북한 4.25영화문학창작사 작가로 활동하였고 인민군 대좌 계급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활동 영역과 특성상 5.18 광주 대학살의 진상을 모두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후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5.18 광주 대학살을 은유적으로 비유하고 있는 여러 편의 북한 영화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으로 보면 북한판 007 시리즈의 연장선 상에 5.18 광주 대학살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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