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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2 : 10 하나님의 깊은 것 - 고전 2 : 11 사람의 일
3. 성령의 계시와 교훈 ( 2 : 10 - 13 )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바울이 본 절에서부터 16절까지 줄곧 '우리'라는 대명사를 주로 사용한 것은 계시가 바울뿐 아니라 모든 사도에게 주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바울 사도는 사람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성령에 민감하고 성령을 순종하고, 그의 삶이 성령에 인도되는 사람을 말한다. 모든 결단과 판단을 성령의 지도에 따르려고 힘쓰는 사람이다.
둘째는 육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육체적 물질적 기준에 의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좋은 예로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순결의 의미가 이해될 수 없다. 축재를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는 사람은 자선의 의미를 모른다.
욕망이 인간 행동의 긍극적인 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순수성이라는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세상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영적으로 산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로 보일 뿐이다.
우리의 심령 속에 목말라 하는 동경심이 있는데 이것을 계속 억압하고 무시하면 그러한 인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한번 그렇게 되어버리면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하여도 그때는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 것에 몰두하면 이 세상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전 2 : 10 하나님의 깊은 것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신비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신성(神性)을 가지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오직'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어떤 사본에는(*, A, C, D), '데'(*, '그러나')로 되어 있고, 어떤 사본에는(P ,B) '가르'(*, '왜냐하면')로 되어 있다.
개역 성경은 '데'를 취하여 본 절을 앞 구절과 역접 관계로 보았다.
그리고 헬라어 본문에는 '우리에게'(*, 헤민)가 문장의 초두에 나와 특히 강조되고 있다.
이 세상의 관원들이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깊은 지혜가 선지자와 사도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계시 되었다.
* 엡 3: 5 -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성령으로 나타내셨는데, 성령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심을 가르친다.
* 요 4: 24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알려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라고 할 때 이것이란 앞의 문단에서 말한 하나님의 지혜를 뜻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말한다.
‘보이신다’라는 <아포칼립토>는 보통 ‘계시하다’라고 번역하는데, 감춰졌던 것을 ‘드러낸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세상이 알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에 속하였던 것이 드러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러한 진리를 알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오직 구원받은 자들에게만 계시하셨다는 뜻이 아님을 이해하여야 한다.
딤전 2: 4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모든 자가 구원을 받고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육에 속한 자들이 계시를 이해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므로 결과적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만 알게 하신 것처럼 여길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써만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죄로 인하여 영에 속한 것을 분변 할 수 있는 영적 인식력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에 속한 일들을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성령의 계시로 하나님의 존재와 은혜를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정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또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결국 심판을 면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2]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인간은 한정된 지적 존재이나 하나님은 무한히 의식적이며 지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참으로 아신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한하시고 완전하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크심은 그의 창조하신 만물에 잘 증거되어 있다. 성경도 그의 크신 지혜와 지식을 증거한다.
욥은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면서(욥 12: 13), 하나님을 ‘지혜(다임 םי , 지식)가 온전하신 자’라고 표현하였다(욥 37: 16).
한나는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고 말했다(삼상 2: 3).
시편 139: 1, 2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다고 표현하셨다(마 10: 30).
히브리서 4: 13은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말하였다.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해 이해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지식의 대상은 현실적인 것뿐 아니라 가상적인 것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지식의 성격은 직각적이며(욥 34: 23) 독립적이고 총괄적이며 동시적이며 개별적이고 명확하고 완전하며 불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의 지식은 그 범위가 전(全)포괄적이므로 전지(全知)라고 표현된다.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의 모든 지식의 원천이며 원형(原形)이다.
사람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본받은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한 요소이다. 사람의 지식의 성격은, 하나님의 지식의 성격과 달리, 점진적이며 의존적이고 부분적이며 제한적이고 불명확하고 불완전하며 가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지식과 구별되는 지혜는 지식을 응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식을 응용하여 최선의 방법으로 최선의 목적을 이루시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11: 33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증언하였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인간이 그를 속이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인간은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솔직해야 한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완전하심을 깨닫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과 다스리심에 순응해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은 인간과 구별되게 하나님 자신과 모든 사물과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것을 아신다(全知).
원형적 · 직각적 · 독립적 · 동시적 · 개별적 · 불변적으로 명확하고 완전하게 아신다.
* 요 21: 17 -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히 4: 13 -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2)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기 지식을 응용하시되 자기를 가장 영화롭게 하는 방식대로 하신다.
* 롬 11: 33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시 147: 5 -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나, 스스로 모순되는 일, 즉 거짓말, 뜻을 변경하는 일, 자신을 부인하는 일은 못 하신다.
* 창 18: 14 -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 렘 32: 27 -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 마 19: 26 -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눅 1: 37 -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 민 23: 19 -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 삼상 15: 29 -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 딤후 2: 13 -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 히 6: 17-18 -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3) 성령께서 모든 것을 아심
전지(全知)의 속성은 하나님만의 속성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기운이나 세력이 아니고 인격적 존재이시다. 그는 무엇이든지 아시는 분이시다. 인격적 존재가 아닌 것은 무엇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영이시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구별되신 성령에 대해 증언한다.
* 요 14: 16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는 분명하게 구별되신다.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의 기운이나 세력이 아니고 인격적 존재이므로 그는 무엇이나 아시는 분이시만 비 인격은 무엇을 알 수 없다.
또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무엇을 지시하기도 하셨다.
* 행 10: 19 -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썼으나 그것을 허락지 않기도 하셨다.
* 행 16: 7 -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또 그는 우리 속에 계시며 우리가 기도할 말을 알지 못할 때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기도 하신다.
* 롬 8: 26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범죄 할 때에 근심하기도 하신다.
* 엡 4: 30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통달한다는 <에류나오>는 막힘없이 통하여 안다는 뜻이다. 곧 성령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아신다는 말인데, 그 이유는 11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고전 2 : 11 사람의 일 -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사도는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겠느냐? 라고 설의법으로 묻는다.
사람의 사정이란 겉으로 드러난 형편이 아닌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프뉴마>이 안다고 한 것은 자신만이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이야말로 자신이라는 뜻이 된다. 즉, 사람의 본질은 껍데기 육체가 아니라 내부에 존재하는 영이라는 점이다.
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우도 알지 못하느니라.
본 절은 인간의 지혜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의 영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와 진리를 이해하려면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본 절에서 언급된 '영'(*, 프뉴마)은 하나님과 사람의 영을 모두 지칭하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실재적인 인격'을 가리킨다(Mare).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신성(神性)을 가지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령께서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구별되신 성령에 대해 증언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는 분명하게 구별되신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고 또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다.
* 마 3: 16-17 -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 16-17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요한복음 15: 26에서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한복음 16: 7에서도 그는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있어서는 내부의 영이 모든 의식 활동의 주체가 된다. 영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인격적 삶을 살게 되는데, 이는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불순종과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단절되었지만, 인간 내부에 있는 영은 인간으로 하여금 지, 정, 의라고 하는 인격적 특성을 나타내게 한다.
동물은 영이 없으므로 아무리 지능이 높다고 하여도 인격 활동을 할 수 없다. 곧 인간처럼 체계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고, 긍휼이나 효도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으며, 무엇을 신앙하는 종교적 행위를 할 수 없다. 지난 일을 회개하면서 앞날을 설계하는 등의 의지적인 부분도 불가능한 것이다.
동물이 생각하는 것은 뇌의 활동에서 비롯되므로 본능적 영역에 국한된다. 인간도 정신 작용의 일부가 뇌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루는데 필요한 인격적 활동은 마음속에 있는 영의 활동이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성경은 사람의 구조를 육<사르크스>과 영<프뉴마>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고 있으며, 육과 영이 결합한 상태가 살아있는 사람이며 육에서 영이 분리되는 것이 죽음이라고 가르친다.
혹자는 사람의 구조에 대하여 삼분설을 주장하면서 육과 영 외에 혼이 있다고 하는데, 혼(魂)이란 '생명, 목숨'이라는 뜻의 헬라어 <프쉬케>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잘못 형성된 개념이다.
<프쉬케>는 단지 육과 영이 결합하여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지 사람의 구성 요소는 아니다. 아무튼 우리의 외형을 이루고 있는 육체라는 것은 용기에 불과하며, 실제로 우리의 본질은 육체 안에 담겨져 있는 영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사정이란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능력의 일체를 뜻하므로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완전하게 아실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이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주님께서 요 4: 24에서 하나님의 본질이 성령이라고 가르치신 것을 통하여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곧 성령인데, 바울 사도는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름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롬 8: 9)이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만 하는가?
이는 성령이란 아버지 하나님의 본질(요 4: 24)이시지만,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본질(고후 3: 17)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즉, 성령이라는 한 본질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요 10: 30)가 되시는 것이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비밀이다. 가르치는 성령이란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로 만드시는 두 분의 본질이시다.
따라서 성령은 곧 하나님 그 자체로 이해하여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영원히 구별(요 14: 28)되지만 한 성령 안에서 한 분으로 존재하시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다.
그런데 만일 성령을 굳이 제 삼의 별도로 존재하는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삼위일체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세 분의 하나님을 믿는 삼신론(Tritheism)이다. 곧 삼위이체론(三位異體論)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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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고,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해지는 그
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