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개비 여행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따개비
배 타고 먼 곳으로 여행을 하고 싶었다
차표를 끊을 수 없어 망설였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할 순 없어 쉿!
몰래 프로펠러에 몸을 붙이고 기다리다
딱, 걸렸다 무임승차에 대한 소문이 돌아
따개비는 옴짝달싹 못 하고 갯바위에 붙어있다가
옳거니, 좋은 생각이 났다
게나 가재나 새우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다
바다거북 등딱지에 찰싹 들러붙어 보기로 했다
갑옷처럼 탄탄하고 널찍한 등딱지는
누구도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심지어
사람도 바다거북을 위협하지 않아
그야말로 안전한 은신처다
출발!
바다거북은 빠르게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아름다운 산호초와 색색의 물고기들이
춤을 추었다 따개비는 황홀했다
평생 등딱지에 빌붙어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빨판상어 한 마리가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느릿느릿 다가왔다
따개비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빨판상어가 바다거북 등딱지에 찰싹 달라붙자
바다거북이 커다란 산호초 밑으로 파고들어
등딱지를 마구 비벼댄다, 어, 어, 어,
안간힘을 썼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따개비는
더욱 깊고 깊은 바닷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내가 한 번도 걸어가 보지 않은 곳을
걷기 위해 찾기 위해
내일 배낭을 메는 것처럼
박예분 《동시발전소》 2024봄호
카페 게시글
날마다 동시
따개비 여행/ 박예분
문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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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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