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가해)
제1독서(탈출 34,4ㄱㄷ-6,8-9)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내용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에 이르렀을 때, 주님께서는 산봉우리로 내려오셨고, 부르심을 듣고 올라간 모세(19,20)는 백성을 대신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지키고 따르겠다는 계약을 맺었습니다(20,1-17; 24,1-11). 그런데 하느님께서 직접 계약조건을 쓰신 증언(십계) 판을 모세에게 주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모세는 계약의 돌판을 산 밑으로 던졌습니다(32,1-19). 계약 파기와 다름없는 짓이었고, 죽음을 기다려야 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다시 시나이산으로 부르셨고, 돌판을 들고 올라간 모세는 하느님께 자비를 간청합니다(33,12-34,4).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야훼)을 선포하시면서 자비를 약속해주십니다. 모세는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로지 하느님만 섬겨야 합니다(34,12). 이렇게 자비하신 하느님의 이름과 존재와 행위, 이 세 가지는 늘 함께 이해되고,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복음(요한 3,16-18)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한밤중에 찾아온 니코데모와 예수님께서 나누신 대화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하느님(성부)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성자)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고, 당신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1,12). 예수님을 믿는 이는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1,11). “아드님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1,10)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한량없이 성령을 받으신(3,34)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세상은 아버지와 아들을 미워했기 때문입니다(15,18-24).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이 오히려 심판의 문제를 일으키시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이제 이 세상은 심판받을 것입니다.”(12,31)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아들이 하느님 아버지 안에 머무르시고, 진리의 영이 아들 안에 계심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요한 10,38; 14,10-11.17).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아들에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기(6,39) 때문에 아들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12,47).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심판받을 것입니다(5,24).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과 심판하는 일을 넘기셨습니다(5,22.27). 결국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심판의 기준이라서, 생명이신 그분을 외면하고,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을 섬기면, 심판받을(죽음에 이를) 것입니다(3,36; 신명 30,15-19).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하느님의 일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6,29).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대로 말하는 아들은 영원한 생명이며(12,5; 14,6), 아들의 요청으로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이 오시면 그분께서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실 것입니다(15,26). “영원한 생명이란 (성령의 도움으로)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 이 모든 것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고, 사랑하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당신과 아들 사이에 오고 가는 사랑이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16,13).
제2독서(2코린 13,11-13)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눈물로 써 보낸 편지(2,4)를 무시했기 때문에 다시 편지를 보내면서 코린토 공동체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명령어를 남깁니다. 복음 때문에 기뻐하고, 복음 말씀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고,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복음에 순종하여 뜻을 같이하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평화롭게 살라고 합니다(로마 16,17-20). 분열되어 바오로 사도를 비난하기에 정신없는 코린토 공동체가 이 다섯 가지 권고를 잘 실천해야만 평화의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거룩한 사람들(성도)의 모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입맞춤(로마 16,16)이란 사랑을 북돋우고 서로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인사방식(요한 크리소스토무스)으로서 이제 서로 화해하라는(5,18-21) 것입니다. 분별력이 없어서 잘못된 신앙 체험만 내세우고(10,12) 시기 질투와 모략으로 갈라진 코린토 공동체야말로 하느님 없이는 사랑도 없고, 그리스도 없이는 은총도 없으며, 성령께 순종 없이는 일치도 없다면서 바오로는 아주 일찍부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인사합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시고, 사랑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습니다.”(요한 3,35)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보내신 아들에게 아낌없이 성령을 주십니다(요한 3,34). 아들이 가르치신 것을 모두 기억하게 해주실 진리의 성령(요한 14,26)께서는 아들의 모든 것을 증언할 것입니다(요한 15,26).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이름은 다르지만, 한 분 하느님(존재)이시고, 한결같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일(행위)하십니다. 삼위일체(이름)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시며, 우리가 구원받게(행위) 해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음, 하느님의 자녀 됨, 구원받음, 세 가지는 같은 것으로서 예수님의 은총과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우리와 함께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머리로 응답하고, 의지로 결단을 내리며,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불과 빛과 열기로 삼위일체를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불의 빛은 불이 아니며, 빛 또한 불이 아니지만 불과 빛, 이 두 가지는 뜨거움(열기)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불과 빛이 뜨거움을 내포하고 있듯이, 사랑이신 성부께서 불이시라면,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시는 은총이신 성자께서는 빛이시며, 친교와 일치로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령께서 함께 지니는 뜨거움입니다.
성부께서는 세상 구원을 위해 성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같은 하느님이시고, 성부와 성자 사이에 오고 가는 사랑은 성령이십니다. 아버지(성부)의 말씀(성자)은 소리(성령)를 동반합니다. 말은 항상 소리가 동반하는데 참된 의미와 효과를 부여하기 위한 것입니다(요한 다마스커스). 성부께서 파견하신 성자(말씀)를 모르면 아버지의 뜻을 모르기(요한 7,28) 때문에 말씀의 의미와 효과인 성령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는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혈육일지라도 구성원들 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단순한 동거인이지 가족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혈육이 아닐지라도 사랑이 넘친다면, 당당하게 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사랑”(에페 3,19)으로 결속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도 위격으로는 셋이지만, 하나의 실체, 하나의 본성을 지니신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살지만 모두 하느님의 자녀(존재)로 살아갑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모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활동)을 합니다. 여러 가지 색깔을 지녔지만 모두 그리스도인(이름)으로 살아갑니다. 다양성 안에서 한 분이신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을 믿어 그분과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의 신비를 우리 삶으로 실현하려면 먼저 복음을 통하여 자신을 바로 잡고, 서로 격려하고,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같이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친교를 이루어주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절실하게 체험하실 것입니다.
- 방효익 바오로 신부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