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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동님 사진>
* * * * * * *
아버지는 유난히 비린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바닷가 태생도 아니면서 하다 못해 된장찌깨에 들어가는
멸치꽁다리라도 있어야 밥상 취급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제가 밥상을 차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달이면 두세 번은
꼭두새벽에 억지로 일으켜져 노량진수산시장엘 가야 했거든요.
사실...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지, 가는 도중 잠이 깨고...
시장에 도착하면 참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경매쟁이들이 정신없이 빠르게 웅얼거리는 소리...
난전에서 시끄럽게 호객하는 소리...
생선궤짝을 내동댕이치며 싸움질 하는 고함소리...
시장은 막 바다에서 건져올린 것처럼 싱싱했고
그 사이를 분주하게 누비는 상인들의 몸짓과 목소리는
생선의 그것보다 훨씬 더 펄펄 생기있었지요...
그렇게 수산시장엘 가면, 아버지는 경매장 옆에서 기웃거리며
마음에 드는 물건이 어느 상인의 손에 떨어지는지 보고 계시다가
바로 가서 흥정을 하고 짝으로 사들이셨습니다.
1학년짜리 막내동생 키만하던 대구...
전기밥솥만한 머리통에 동전만한 흡반을 꾸무적거리던 문어...
등딱지가 큰 접시만하던 영덕대게...
제가 덮으면 안 보일 만큼 크고 넓적한 가오리...
위에 적은 건 덩치 커다랗던 녀석들이구요...
작은 건 멍게. 해삼. 낙지. 멸치. 고등어. 도미. 우럭. 조기.
사유리. 아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리고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물오징어였습니다.
물론 대부분 그날의 주인공으로 커다란 녀석들이 하나씩 선정되고
작은 것들은 그저 들러리 서는 정도였는데
그래도 물오징어라면 보통 두세 짝쯤 샀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생선들은 몇몇은 바로 요리가 되지만
대구나 가오리 등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앞마당의
커다란 수수꽃다리나무에 높이 매달려 마당을 쓸고 다니는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면서 아래서부터 조금씩 베어져 식구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었지요.
날이 좀 더워져 파리가 꼬이는 듯하면
생선들은 모기장으로 옷을 해 입은 채 그렇게 말라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갔습니다...
특히 가오리가 마춤하게 말랐을 때 손바닥만하게 잘라
솥에 넣고 말랑말랑하게 쪄선, 결대로 길게 죽죽 찢어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에 폭 찍어 먹곤 했는데...
남도의 별미라는 홍어찜의 머리 속까지 찌르는 찡한 기운이 아니고
약간만 숙성되어 싸아~한 기운이 콧구멍을 살짝 후비고 지나가는
그 느낌...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오징어는 배를 따고 내장을 꺼낸 후 목욕재계를 시켜
빨랫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조로록 줄맞춰 척척 걸쳐 널었습니다...
물론 엄마가 대충 손보신 것이니 윗사진에서처럼
편편하고 번듯하게 모양이 잘 잡히진 않았지요.
딱딱하고 질긴 것을 씹으면 두통이 생기는 저는
마른 오징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빨랫줄에서 말라가고 있는 못 생긴 오징어를 하나씩 걷어 구우면
살이 통통하고, 물기도 많고, 딱딱하지 않으면서 쫄깃거리는 것이
입이 궁금할 때 한 마리씩 잡아먹는 재미가 꽤 쏠쏠했습니다~ ^^
그때는 '피데기'란 말이 있는 줄도 몰랐었고
나중에서야 사유리는 학꽁치이고 과메기의 원료이며,
아나고는 붕장어, 반건조오징어는 피데기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나무와 빨랫줄에 생선들이 걸리면 신이 나는 중생들이 있었으니...
그건 동네 고양이들이었습니다.
온동네 고양이란 고양이는 죄다 우리 집 마당에 모여
빨랫줄에 널린 오징어, 혹은 수수꽃다리나뭇가지에 걸린
큼지막한 대구를 향해 하루 온종일, 밤새도록 새까닥질을 하고 또 하며
걷어 먹질 못 해 아르릉거리며 애간장 녹이는 소리를 내곤 했지요.
물론 엄마는 고양이가 제 아무리 뛰어도 닿지 못 할 만큼의 높이를
다년간의 경험으로 터득하고 계셨지만
어디에나 특출난 인재, 백미(白眉)에 군계일학이 있는 법...
가끔 한 번씩은 다 말라가는 생선을 통째 잃고
고양이만 보면 막대기를 들고 쫓아다니며 분풀이를 하셨더랬습니다...^^
저 사진을 보니 문득...
빨랫줄에 오징어가 하얗게 널리고
가오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흔들 바람그네를 타던
그 옛날 우리집 넓은 앞마당이 눈 앞에 어른거립니다......
------- Let me see
첫댓글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
어렷을 적에 저희집은 구멍가게를 했습니다. 마른오징어를 놓고서 팔았는데 오징어 다리하나 몰래 뜯어먹기..눈깔만 빼먹기 일종의 도둑질이죠 ..가끔 물오징어를 장독대에 말려서 연탄불에 구어먹었는데 참 별미였죠..아 그런데 님은 빨랫줄에 오징어를 걸고 빼먹을정도 였다니..부럽다 부러버...
어려운 낱말 두개 배우니 배부르네..... '97년말 월급주는이에서 월급받는이로 바뀐뒤 감포에서 택배로 올린 과메기 두줄 미역과 초장, 피데기 두축을 갖고 날밤새워가며 나눠 뜯다 힘들어 휴대용가스버너로 구워 먹으면서 제일은행과 서울 은행가게.... 도토리알 2조5천개 준적이 있던 기억....에구 것도 벌써 8년전...
경녀님의 새로운 述법에 그동안 대하지 못한 면이 묻어있군요. 소박한 추억~ 오래 오래 간직하시길..... 내 아버지~~~~~~! 께서도 오랫만에 눈 앞에서 들락날락~~~ 그러시네요. 고맙습니다.
언젠가 보았던 강원도 바닷가 마을이 떠 오릅니다 .줄에 널려 꾸덕 꾸덕 말라가는 피데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축 사다 냉동실에 얼려두고 심심할 때 구워 먹으면 그맛이 그만인데~~^^
글은 뒷전이고 오징어 먹고 싶은 생각이 앞서니........어쩌지요.
사진주인께는 허락 받았으니, 널린 피데기 몽땅 걷어 자셔도 됩니다... ^^ 다들 안녕하시지요? 다녀 가신 분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휴일 보내소서...
오랜만에 님 글 읽게되 기분이 좋습니다. 내용도 참 정겹구요... 반가워요..
잠시 향수에 젖어 봅니다. 잘 계시지요?
네, 저는 잘 있습니다. 브래드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고... 현주님...은 여전하시지요? ^^ 산행사진 보니까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