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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토우와 팔만대장경
그런데 팔만대장경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사실 말은 많이 들
었어도 팔만대장경이란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지는 못하거
든요.
기미히토가 진정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큰스님은 일본인인
기미히토가 팔만대장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하자 진지한 얼굴
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팔만이란 부처님이 중생의 번뇌가 팔만사천 가지에 이른다
고 설파하시고 그에 대치하는 팔만 사천의 설법을 논하셨기에
그 모두를 담았다는 뜻이지요. 대장경은 세 개의 광주리라는 뜻
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달은 경 ,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
르는 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담은 율,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
해 놓은 논을 말하는 것으로 불교 경전 모두를 총괄하는 것이기
에 일체경이라고도 합니다.
아하, 그렇습니까. 저는 경판의 숫자가 8만 개라서 팔만대장
경이라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원래는 팔만사천대장경
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여기에는 속장경도 있어요.
속장경은 무엇입니까?'
대장경이 부처님의 설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면 속장경은 한국, 중국, 일본, 거란 등의 학승들이 저술한 것을
말하지요. 인도에서 성립된 대장경에 비해 속장경은 각국의 지
역적 특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불교 문화의
성숙과 변용의 측면에서 대장경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
습니다.
기미히토는 큰스님을 따라 걸으면서 무엇보다도 대장경의 엄
청난 양에 감탄했다.
팔만 사천 가지 설법을 모두 대장경에 담아서 인지 경판의 수
만 해도 대단하군요.
그렇습니다. 이 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몽고의 침략을 당하자
온 조정과 백성이 16년 간이나 전력을 다해 완성한 것입니다 하
루에 한 권씩 읽는다 해도 거의 20년이 걸릴 정도의 방대한 양이
지 요.
기미히토의 입이 벌어졌다.
그 양보다 더 놀라운 것은 경판 하나하나가 만들어진 과정입
니 다.
저도 언젠가 그 경판들이 제조 후 7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이
르기까지 썩거나 좀먹거나 뒤틀리지 않고 온전히 보존되어 오고
있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만
들었기에 이토록이나 내구성이 강할까요?'
기미히토의 물음에 큰스님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설명을 계
속했다
우선 경판 자체가 부패하거나 벌레 먹는 것을 방지하고 나무
재질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원목을 바닷물에 3년 동안 담
가두었다가 꺼내어 판자로 짠 다음, 다시 그것을 소금물에 삶아
내서는 그늘에서 말린 뒤 깨끗하게 대패질하여 판을 만들었습
니다.
재료를 마련하는 데에만 34년이 걸렸군요.
기미히토가 탄성을 자아냈다.
완성된 밑판은 판각하는 곳으로 옮겨지고, 판각수들은 여기
에다 편찬 교정이 끝난 경의 내용을 경판 수치에 알맞게 구양순
필체로 정성껏 써놓은 사경 원들의 판하본을 붙여 한 자 한 자 돋
을새김으로 새겨넣었어요.
신기한 일이군요. 그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작업한 것이 어쩌
면 그리도 한 가지 필체로 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마치 한 사람
이 작업한 것처럼요.
부처님의 신력이 작용했을 테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미스터리군요.
그런 다음 판이 뒤틀리지 않도록 양끝에 가곡으로 마구리를
붙여 옻칠을 하고 마무리 손질을 가한 후, 마지막으로 네 귀를
동판으로 장식하여 한 장의 경판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경판의 크기나 두께는 어느 정도입니까?'
큰스님은 기미히토의 깊은 관심이 배어 있는 거듭된 질문에
허허 웃었다
그냥 사과 궤짝만한 크기에 두꺼운 어른 손등 정도 되는 두께
라고 기억하면 되겠지요.
우리 일본에서는 대장경을 만들지 못했습니까?'
기미히토가 부러운 듯 물었다
과거에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들은 더욱 팔만대장경의 수입을 갈구했던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수없이 공물을 바치면서 대장경본을 요구해 왔지요. 세종대에는
일본의 국사가 들어와 대장경 판을 하사하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
다고 하면서 집단으로 6일 간이나 단식한 일도 있었어요.
그랬군요.
기미히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자신이 볼 때에도 팔만대장경은 보통 탐이 나는 물건이 아
니었다.
충분히 이해가 되셨는지요?'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은 작별하면서도 연신 눈길을 사도광탄의 얼굴에 모으
고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도광탄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큰스님과 작별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조 교수는 복
잡한 표정을 지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무엇인가를 한참이나 생
각하고 있었다
이봐, 조 교수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 하더
라도 얼굴은 좀 펴. 기껏 절 구경 잘하고 기분 좋게 오면서 그렇
게 찌푸려 대면 오며가며 운전하느라 고생한 이 서영인이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어?'
서 원장은 모처럼의 여행이 즐거웠는지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나 조 교수는 여전히 잔뜩 찌푸린 채 얼굴을 펴지 않고 연
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결국 그것이 었나?'
아까부터 자꾸 뭐가 그거 였다는 거야?'
사도 선생이 해인사로 내려오자고 한 것이 그것 때문이었냔
말이야.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얘기를 좀 해. 얘기를 해야
알 것 아냐.
답답한지 서 원장의 목소리가 약간 올라갔다. 그러나 조 교수
는 여전히 대답을 않은 채 이번에는 아예 눈까지 감아버렸다 그
러나 이네 눈을 급히 뜨고는 바로 옆에 있는 서 원장을 소리쳐
불렀다.
이봐, 서 원장!~
왜?'
아까 우리가 절에서 나올 때 햇빛이 우리를 정면으로 비치지
않았나?~
서 원장은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일단 기억을 더듬어보니 조
교수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오후 늦은 무렵이었지만 햇살이 정
면에서 비추고 있었다.
그래, 나올 때 눈이 부셨지.
지금 몇 시지?'
다섯 시 . 그런데 왜 그래?'
다섯 시에 해가 정면에서 비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
야?~
글쎄, 나는 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방향 말이야.
방향? 석양 무렵에 해가 정면에서 비치면 서향이잖아.
그래, 바로 서향이야.
서향이 뭐 어때서? 어 서향? 그 토우가 앉혀졌던 방향이
잖아.
그래. 드물게도, 아주 드물게도 해인사는 서향이군.
조 교수가 지적한 대로 해인사가 절로서는 드물게도 서향이라
는 사실이 서 원장에게 토우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이것은
변 교수나 기미히토도 마찬가지였다. 사도광탄은 자신의 입으로
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승려들의 입을 빌려 결국 조선에서
스스로를 지켜온 힘은 팔만대장경이라는 것을 얘기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교수가 이제는 또렷한 목소리로 되뇌었다.
사도 선생이 해인사로 내려가자고 한 이유는 결국 무라야마
가 건드리려 했던 것은 팔만대장경이라는 사실을 말하려고 한
것이었나? 조선에서 스스로를 지켜온 유일한 힘이란 팔만대장
경을 말함인가?'
그래, 바로 그거야. 토우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바로 팔만대
장경이었어.
서 원장은 급히 차를 세웠다 일행은 모두 사도광탄의 굳게 다
문 입술을 쳐다봤다. 조 교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알 수 있었소? 그 토우가 팔만대장경의 수호 사자라
는 사실을?~
사도광탄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순간적으로 깨어난 듯
잠시 사람들의 표정을 훌어보고는 이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는 무라야마가 남긴, 조선에서 스스로를 지켜온 유일한 힘
이라는 말에 주목했지요. 그리고 토우가 앉혀진 서향이라는 방
향도 도움이 되었어요. 그후는 별로 어렵지가 않더군요.
대단한 추리군요.
변 교수는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 교수는 실상 그렇게 힘
든 추리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합리적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광탄. 그의 괴이한 주장은 처음에는 엉뚱해 보이지만 언
제나 합리적인 사고를 배후에 깔고 있었다. 조 교수가 생각하는
한 그는 대단히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합리적인 사고의 단편들을 창조적
으로 이어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토우가 팔만대장경의 수호 사자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거지?'
차를 출발시키던 서 원장이 갑자기 충격적인 생각이라도 떠오
른 듯 외쳤다.
그 토우가 파헤쳐졌다는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거냔
말이야?'
글쎄
조 교수는 언뜻 대답을 할 수가 없어 말을 얼버무렸다
설마 팔만대장경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팔만대장경에?
그래, 팔만대장경이 훼손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그럼, 아무 이상이 없잖아?~
그런데 이상하잖아 그들이 수호 사자인 토우를 파헤쳤다면
대장경에 손을 대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그건 정말 이상하군요.
서 원장의 생각에 변 교수도 동감을 표시했다 일동은사도광
탄의 얼굴에 시선을 모았다. 이제 무슨 궁금한 점이 있으면 사도
광탄을 쳐다보는 것이 모두의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이치상으로는 손을 안 댔을 리 없지요. 수호 사자를 파헤치고
나서 팔만대장경을 그냥 두었을 리는 없겠지요 다만
다만 뭐 예요?'
서 원장이 조급하게 말을 재촉했다
다만 대장경의 법력을 당할 수 없었겠지요.
무라야마는 대장경을 해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대장경
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죽었다는 얘긴가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어요.
뭐예요?'
애초부터 그는 대장경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요.
무슨 뜻이죠?'
토우를 파헤칠 정도의 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
에요.
그렇다면 무라야마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얘긴가요?'
그래요.
그게 누구일까요?~
알 수 없어요. 다만 무라야마보다 훨씬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있겠죠.
기미히토는 사도광탄의 말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언젠가 스기하라가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무라야
마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와 의논을 했다며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덕분일지 모른다고 했었다. 기미히토는 놀
란 눈길로 사도광탄의 옆얼굴을 쳐다보다가 얼굴 한편에 어딘지
음울한 기색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사도 선생님의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아까 경판고에서 뭔가 개운치 못한 기분을 느꼈어요.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 있던 중이었는데 비록 그들이 팔만대
장경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흠이 많이 생겼을지도 모르지요.
어떤 흥이 있단 말입니까?~
세상에 신비력이 있지만 무시로 달려드는 철실적 힘에 항상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면 신비력과 현실적 힘은 언제나 보
완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식민 지배 당시는 우리 민족의 현실적
힘이 너무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음모를 완전히 이겨낼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때도 건재했던 팔만대장경이 결국 식민
지배 때는 그들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요. 그들이 무슨 짓이라도 했을 겁니다. 당시 토우가
스기하라의 동료들을 해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
까?'
어째서 토우가 그것을 증명한다는 거지요?'
조 교수는 사도광탄의 추측이 마음에 안 드는지 따지듯 물었
다.
토우는 경판을 지키는 수호 사자가 아닌가요. 경판이 완전하
다면 그 당시 토우가 일본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확실하진 않지만 대장경판 중 일부가 일본으로 유출
되었을 가능성이 있지요.
그러면 이제껏 가만 있던 토우가 지금에 와서 다시 움직이는
이유도 경판과 관련된 것일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같은 토우인데 차이가 있을까요?~
지금의 토우는 야마자키 연구소에서 동경대로 보낸 어떤 작
업에 대해서만 선택적 장애를 일으켰다고 하셨지요?'
그 작업이 팔만대장경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대장경에는 우리 민족의 안전을 지키려는 수많은 염원이 들
어 있어요.몽고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고려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벌였던 일은 오직 팔만대장경의 제조뿐이
었지요. 조정이 중심이 되어 곤을 조각하고 온 나라의 법술사가
모두 주문을 넣었어요. 천지신명의 기와 부처의 법력이 대장경
에 들어 있단 말입니다 이 세상에 과학으로 규명되지 않는어떤
힘이 있다면,그 힘은 틀림없이 대장경에 들어 있을 겁니다. 그
힘이 대장경을 보호해 왔고우리 민족을 보호해 왔습니다 그러
니 우리가 그 숱한 위기를 넘기고 세계사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이제 그 신통력이 바다 건너 일본에서 한민
족과 관련된 너무도 중요한 일이 생기자 토우를 움직이는 게 아
닐까요. 아마 대장경 못지않게 중요한 성물이 토우를 자극한 것
인지도 모르지요.
대장경 못지않게 중요한 성물이라구요? 그게 도대체 뭔가
요?'
가서 알아보기 전에는 대답할 수 없군요.
그 토우의 힘은 영원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토우의 신통력이 떨어지기 전에
흠이 있을 것 같다는 얘기는 결국 경판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
입니까?'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경판의 기가 고르게 전달되어 오지
않았어요.
빛나는 우리의 문화 유산이라고 자랑스럽게 세계문화재로 등
록한 대장경에도 일본인들의 침탈의 마수가 뻗쳤다니 !
여태껏 대장경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서 원장조차 애통한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조 교수는 비교적 냉정한 편이었다. 그로서는 사도광
탄이 경판고에서 느낀 이상한 기분만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학자의 태도가
아니었다.
나는 팔만대장경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가
없소.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정말 완전치 않은지, 일본인들이
정말 손을 댔다면 어느 정도로 훼손되었는지는 전문가에게 의뢰
를 해야만 알수 있는 일이 아니겠소?판단은 대장경의 전문가
를 수배하여 알아본 이후로 미루는 것이 온당할 거요.
사도광탄은 조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내가 신중하게 알아보겠소.
조 교수는 학자다운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기미히토는 자신이 감격했던 팔만대장경을 일본인들이 훼손
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파왔다 직접 토우의 신비를 체험한
그는 이제 팔만대장경의 신력에 대해 누구보다 강하게 믿고 있
었다 일행은 기미히토의 낯빛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
았다.
전후 세대인 기미히토는 언제나 자신의 조국 일본이 미개한
조선을 개화와 문명으로 이끌었다고 배웠고,그런 점에서 일본
의 조선 합방은 정당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문화 유산이라는 팔만대장경을 자신의 선
조들이 유린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자 낯을 들 수 없었다. 기미히
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수호 토우를 묻어 지키려던 그 신물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우리는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알 수 없
었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귀중한 자료를 모두 불태워버렸기 때
문입니다. 이 기미히토가 일본인을 대신하여 사과하는 것을 받
아주십시오.
그러자 변 교수가 기미히토의 팔을 잡으며 숙연해지려는 분위
기를 부드럽게 막았다.
기미히토 교수님처럼 문화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우리 나라
에 와주신 분이 있다는 것을 저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까 사도광탄 선생께서 토우가 다시 움직인 것을 보고 일본
인들이 한국과 관련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셨는데, 옳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한 저는 이런 역사
관계에 대해 백지와 같은 상태였는데,팔만대장경을 노려온 것
만 봐도 일본의 오류가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저는 지금
토우가 움직이는 이유 역시 한국과 관련된 일이라고 확신합니
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서 온 토우가 괴력을 발휘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었다. 조 교수를 비롯한 일동은 고개를 끄덕이
며 기미히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도광탄 역시 묵묵
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일본으로 돌아가서 이 음모를 밝혀내는 데 최선을 다하
겠습니다 그 음모가 한국과 관련된 어떤 것일 거라는 생각이 저
를 못 견디게 하는군요.
사도광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기미히
토에게 물었다.
언제 일본으로 갈 예정이지요?~
팔만대장경의 분실 여부에 대한 결론을 보고 가야 할 것 같습
니 다.
그때 같이 가시죠.
기미히토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면 좋겠군요. 사도 선생께서도 그 토우를 보는 것이 좋겠
습니다.
음, 토우보다도
조 교수는 서울로 돌아온 다음날부터 관련 학계에서 팔만대장
경과 관련된 문헌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팔
만대장경에 대해 서지학적으로 정통한 학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는 깜짝 놀랐다. 학자와 문헌에 따라 모두 제각각의 주장을 늘어
놓고 있었다.
이 럴 수가
영인본이 있긴 하나 경의 종과 책의 수에 대해서는 하나도통
일된 견해가 없이 중구난방이었다. 의지할 문헌도 없는 가운데
그나마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민족대백과사전에 팔만대장
경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도 경판의 총수량에 주목했다. 경전의 종
수나 권 수에는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해석상
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판의 수는 늘리거나 줄일 수 없
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지 의 여부는 경판의 수를 확인
하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경판의 수까지도 일치하지 않아 결국 조 교수는 분
노를 터뜨리고 말았다. 조 교수는 상기된 표정으로 팔만대장경
에 정통하다는 문화재 위원을 찾아갔다
팔만대장경의 경판 수는 196n년에 경북대학교의 서수생 교수
가 조사한 것이 가장 정확하지 않겠소 서 교수는 당시 문공부의
의뢰로 현지에서 정밀하게 팔만대장경을 조사했으니 말이오.
문화재 위원은 조 교수가 무슨 말을 꺼내는지 경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은 총 1,541종에 6,aU
권, Ul,240매의 경놘이 있었소. 그런데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민족대백과사전에는 팔만대장경의 수량을 1,501종,
f,7關권에 경판은 01,25f)매로 되어 있어요 일치하지가 않아요.
조 교수는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겨레의 성물이라고 할 수 있
는 팔만대장경의 현황이 불확실하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오.
문화재 위원은 계속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종 수나 권 수의 불일치는 해석상의 차이로 볼 수 있소. 하지
만 경판의 수는 틀릴 수가 없는 것 아니오?'
그렇지요.
그런데 분명히 차이가 나지 않소. 경판의 수가 무려 열여壽
장이나.
거기에 대한 조 교수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종잇장도 아니고 사과 궤짝보다
큰 나무판을 잘못 헤아릴 수도 없는 일인데 어째서 그렇게나 차
이가 난단 말이오?'
전적의 종 수나 권 수는 분류하는 사람마다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으므로 그 차이를 일일이 시비하는 것은 대장경의 훼손이
나 도난과 무관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판의 수는 처음 만든
것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똑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서수생 교
수가 센 경판의 수가 틀릴 리는 없습니다. 서 교수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경판을 세고 세고 또 세었으니까요. 정확하게 81,240
매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민족대백과사:戮의 81,258매는 어떻게 해서 나온
숫자죠?~
81,258매는 그전에 세었던 기록이죠. 유감스럽게도 팔만
대장경에는총 경판수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장경
은 제조 후 항상 왕궁의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에 분실이란 생각
할수조차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일제 시대 데라우치 총독
이 일본 천용사에 헌정하려고 인경할 때 조사한 경판 수는
8l,258매였죠.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민족대백과사전의
81,258매라는 경판의 매수가 데라우치 총독 시대에 조사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일제 시대에 조사한 것
과 해방 후에 조사한 것과는 열여덟 매의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그 열여덟 매는 도난당했을까요?'
그수량은 알도리가 없습니다 다만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
습니다.
무엇이죠?'
팔만대장경판의 일부가 없어졌다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습니
다.
뭐라구요?~
조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없어질 수 있단 말이오?그토록이
나 귀중한 겨레의 성물이?'
일제 시대이긴 한데 어떤 경위로 없어 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
다. 일부가 도난당한 것은 확실한데~
그럼 도난당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문서가 있습니다.
문서라구요?'
그렇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사무실에는 없습니다 그러
나 다음에 오시면 보여드리죠.
내일 당장 오죠.
문화재 위원의 사무실을 나서며 조 교수는 아찔한 심정이었
다 팔만대장경 판이 도난당한 사실을 국사학과 교수인 자신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도 한편으로는 사도광탄의 육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
체 기 (氣)가 무엇이기에 그는 경판고 안에서 이미 팔만대장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까
다음날 조 교수는 먼저 병원에 들러 사도광탄과 같이 문화재
위원의 사무실로 갔다. 문화재 위원은 책상 서랍에서 한 장의 서
류를 꺼냈다 서류는 원본을 복사한 것이었다
1937년에 해인사 주지 장제월이 미나미 총독에게 경판의 도
난 사실을 문서로 보고한 것입니다.
문화재 위원은 조 교수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조 교수는 서
류를 빼앗듯이 받아서는 급한 눈길로 훌어 내려갔다 번득이는
눈동자가 서류를 훌어 내려가는 동안 조 교수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국보 및 사찰 재산 도난 보고의 건)
본년 8월 28일 당사가 안장하고 있는 고려대장경 판목 전부를 만
주국 정부의 의뢰로 탑탁(판목을 종이에 찍어 인쇄함)함에 있어 허가
를 상신했던바, 본년 9월 11일부로 본부(총독부)의 인가가 내렸기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 다카하시 박사의 지휘 밑에 인경 공사
를 실시할 제. 당사 소유 국보 고려대장경 판목 및 당사 소유 재산 귀
중품이 도난되었음을 발견하였음 도난당한 날짜는 미상임.
도난당한 경판명 대반야바라밀다경 1장
대장엄경론 1장
대장경목록 1장
석교분기 원통초 1장
이구열, 한국문화재 수난사 (돌베개)
아, 겨레의 성물이 이렇게 유린당하고 말았다니 !
조 교수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탄식했다. 그는 미련이 담
긴 목소리로 물었다
이것이 총독부의 공문임에 틀림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렸다는 네 매의 경판이 그후 어떻게 되었는
지는 알 수 없습니까?~
찾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 네 매의 경판은 그 열여덟 매 안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조 교수는 맥이 풀린 발걸음으로 문화재 위원의 사무실을 나
올 수밖에 없었다. 사도광탄을 옆자리에 태운 그는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열여덟 매에 대한도난보고가아니고 네 매에 대한도난
보고만이 되어 있을까요?'
그 점을 생각해 보았는데 무라야마는 토우를 파헤치고 대장
경을 보호하는 신력을 일시 흩뜨린 후 몇 매의 중요한 경판만을
빼내어 가지고 갔을지 모르죠. 법술사인 그에게 있어서 궁극의
목표는 조선의 신력을 무너뜨리는 것이지 대장경 전부를 일본으
로 인출해 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 자신 대장경
전부를 손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
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대장경에 손댄 사람이 무라야마 말고도 또 있다는
얘깁니까?'
그렇지요. 대장경의 신력이 얼마간 흩뜨러지자 그 작업에 하
수인으로 참가했던 자들이 뜻도 모르고 몇 매씩 빼갔을 수도 있
겠지요. 어쩌면 무라야마 자신은 단 한 매의 경판도 일본으로 가
지고 가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대장경의 무서운 힘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그것을 피하려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그래서 뜻
도 모르는 하수인들의 손으로 대장경의 신력을 흩뜨려버렸을 수
도 있는 거지요.
그러면 지금 우리는 대장경의 완전한 경판 수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요?'
조 교수의 한탄에 이어 잠시 생각하던 사도광탄의 말이 이어
졌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수량도 대장경의 총 경판 수로 단정해 버
려서는 안 됩니다. 81,240매도 81,258매도 옳지 않을 수 있으니
까요. 아무 주장이나 받아들여 팔만대장경의 경판 수로 확정을
지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오류를 범하고 말 우려가 있
어 요.
맞는 말이오. 일제 시대에 세었던 것이 틀렸다고 해석해 버리
고 요즘 센 것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의 팔만대장경은81,240매
이다. 그러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단정했을 때에는 정말 큰 문
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군요.
사과 궤짝 넓이만한 것을 세는데 일제 시대라 해서 잘못 세었
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도난이 보고된 다음에 센 것을 정확하다
고 주장해서도 안 되겠지요.
그렇군요, 우리에게는 대장경이 세계의 문화 유산이니 뭐니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군요.
첫댓글 변함없이 꾸준한 연재 감사합니다.
아직은 눈의 피로로 집중하여 볼 수가 없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