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이 10만 광년(光年)인 우리은하
별들의 고향
- 여강 최재효
별은 거만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는다. 별은 누가 뭐라고 하던 제
자리에서 조용히 빛나며, 제 역할을 할 뿐 이다. 마음이 순수하고
영혼이 착한 사람의 눈동자를 보고 별 같다고 한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본 고향은 밤하늘에 떠 있는 저 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 바로 저
기 반짝이는 별이다.
밤하늘을 망원경으로 살펴보면 수천 억 개의 별들이 떠 있다. 먼
훗날 우주시대가 열리면 운 좋은 사람들은 살아서 고향에 가게 되
리라. 생전에 못가더라도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된다.
사후(死後)라도 언젠가는 꼭 가게 될 테니까.
나는 별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별에서 융합되었다. 태양계 경계(Helio-
pause) 지점에서 지구를 봤을 때 지구는 한 점에 불과하다. 지구
에서 이 경계 지점까지 거리가 64억 Km가 된다. 시속 300Km
로 달리는 고속열차로 98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야 도달할 수 있
는 거리이다.
우리은하는 지름이 10만 광년이나 된다. 빛이 1년에 9조4천6백
억 Km를 이동하니 인간의 거리 단위로 환산하면 우리은하 지름
이 94경(京) 6천조(千兆) Km가 된다. 꿈속의 거리이다. 이 거리
중간 중간에 별들의 고향이 있다.
우리 은하계 내에서 대표적인 별들의 고향, 즉 별을 생성해내는
장소는 오리온 대성운과 용골자리(Carina) 성운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온 대성운은 지구로 부터 1500광년으로 1경4,191조 2천억
Km, 용골성운은 65,00광년 거리로 지구로부터 61경 4,952조
Km 거리에 있다. 역시 꿈속의 거리이다.
오리온 대성운은 사냥꾼의 칼(劍) 부분에 위치하며, 맑은 밤에
육안으로도 볼 수 있고, 백개의 불규칙 변광성을 포함한 방출 성
운이다. 트라페지움(Trapezium)이라고 불리는 내부 별무리에는
수만 개의 매우 뜨겁고 젊은 별들의 성단(星團)이 있다. 오리온
대성운과 용골자리 성운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 별들이
태어나고 있다.
“지구 생명체의 근원인 아미노산은 우주에서 왔다.”
2010년 3월 일본국립천문대원이 참가한 국제연구팀이 국제과
학지 '생명의 기원과 생태의 진화'에 기고한 학술논문에서 생명
체 자연발생설을 뒤바꿀 수 있는 아미노산의 수수께끼를 밝혔
다.
연구팀은 관측 장치를 이용해 오리온 대성운 중심부의 신성(新
星)인 IRc2 부근서 원편광(圓偏光-원을 그리며, 좌측 혹은 우측
의 일정 방향으로 진동하는 특수광선)이 태양계의 400배 이상
크기로 퍼져 있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영역에는 두 가지 형태의 원편광이 존재하며,
이 광선이 각각 좌,우 두 가지 종류의 아미노산을 좌형(L) 또는
우형(R)만 남기고 한쪽을 파괴시키는 것도 확인했다. 빛이나
X선에 있어서 전자파의 진동 방향이 정해진 상태를 편광이라고
한다. 직선 편광은 수평 방향으로 진동하는 물결이고, 원편광은
진동 방향이 나선과 같이 회전하는 물결이다.
즉, 별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자외선 때문에,
우형 아미노산은 쉽게 파괴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오리온 대성운
에는 좌형 아미노산을 형성하는 원편광이 주류를 이룬다. 지구
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동,식물 즉, 사람, 뱀, 물고기, 새, 나무,
풀 등의 세포 속에 좌형 아미노산을 지니고 있다.
지구와 오리온 대성운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에서 감지되는 좌
형 아미노산의 성질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45억 년 전 지구가
생성될 때 지표 온도는 수천도가 넘었다. 화산이 분출하는 용암
보다 뜨거운 지표면에 무슨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지구가 어느 정도 식고 물이 생성되면서 생명체가 살기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지구의 생명체가 자연발생적으로 자생했다
면 체내(體內)에 좌,우형 대칭의 아미노산이 존재해야 한다.
최근 갤럽이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구의 생명체의 발생
에 대한 조사에서는 ‘신이 참여한 진화’ 36%, ‘신의창조’ 44%,
‘순수진화’ 14% 등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응답자 50%가 지구의
생명체가 진화와 관계있다고 답한 것이다. 천동설(天動說)을 믿
으며, 교황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중세 유럽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면 99.9%가 창조론에 동의 하였을 것이다.
1969년 9월28일 호주 머치슨 지역에 떨어진 운석(隕石)과 아폴
로 11호가 달 표면에서 채취한 토양을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운
석과 토양 속에서 모두 좌형(L) 아미노산이 발견되었다. 운석은
우리 은하내부를 떠도는 별들의 잔해(殘骸) 이다.
아미노산은 한 분자 안에 아미노기와 카복실기(탄소, 산소, 수소
로 이루어진 작용기의 하나로, -COOH 또는 -CO2H로 표시된
다)를 가지는 유기 화합물로, 모든 생명 현상과 관계가 있는 단백
질의 기본 구성단위이다. 대략 백개 이상의 천연아미노산이 존재
하지만, 약 20개의 아미노산만이 유기체에 공통으로 존재하며,
단백질 합성에 이용된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천만 종의 동,식물의 고향이 바로 우리은하
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별들이다. 우주 공간은 가스와 먼지로 된
성운(星雲)과 암흑물질로 가득 차있다. 성운의 어느 한 지점이
밀도가 높아지면서 주변 물질을 끌어당겨 성장한다.
성장한 부위는 더욱 커지고 중앙 핵심부는 뜨거워진다. 이 속
에서 아기별이 탄생한다. 커다란 성운일 경우에는 동시에 수많
은 별이 생겨나 성단(星團)을 구성한다.
신성(新星)은 수축하며 온도가 자꾸 올라가 1천만 도에 이르면
핵융합을 하며 빛을 발산한다. 이때 핵융합에 의한 팽창과 중력
에 의한 수축이 균현을 이루며 안정된 별이 된다. 대부분의 별들
은 수소를 연료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며, 헬륨이 만들어지는
데 별의 온도는 점점 더 높아진다. 이때 헬륨 융합으로 온도가
수 억도에 이르면 철, 탄소나 산소 등 다양한 원소(元素)들이
생성된다.
수소와 헬륨을 모두 소진한 별은 부풀어 올라 붉은색 거성(巨
星)이 되면서 별의 온도도 내려간다. 별은 질량에 따라 수명이
달라지는데 수백만 년에서 100억년 정도 유지된다. 적색 거성
은 중력을 이기지 못해 폭발하면서 중심은 백색 왜성으로, 별의
외부 물질은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가 행성상 성운이 된다.
별이 붕괴되면서 우주 허공으로 뿜어낸 조각들이 수백만 년 혹
은 수억 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다른 행성
에 떨어지게 된다. 그 조각에는 금, 은, 철, 구리, 규소, 아미노산
등 수많은 원소들이 함유되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의 가지 수는 110여종이 있다. 그들
원소 중에는 생명 탄생에 중요한 원소들도 포함되어 있다. 수 천
조 킬로미터 떨어진 별의 내부 물질과 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의
성질이 같다는 생각을 하고 별을 바라본다면 경이로움에 몸서리
칠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외계인이나 마찬가지다. 수십 억 년 전에 생
명의 씨앗으로 혜성, 혹성, 혹은 별똥별, 먼지 속에 숨어 우주 공
간을 떠돌다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 안착하여 진화하면서 지금
의 고등 동물로 성장하였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발사되는 각종 우주선에 실려 태양계나 태양계 외부
로 나가는 지구의 박테리아나 기타 미생물이 수억 년 후 어느 행
성에서 고등동물로 성장하여 밤하늘의 푸른 별 지구를 바라보면
서 자신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듯 우리의 고향은 우주 어디인가에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끔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떠
올린다. 30여 년 전에 처음 만화영화로 보았을 때 큰 충격과 함
께 우주로 향한 무한한 상상력을 갖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빈민촌에 살고 있는 소년 호시노 테츠로와 신비로운 여인 메텔
이 기계 몸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안드로메다은하의 어느 별
로 가기 위해 초특급 은하열차 999호를 타고 우주 공간을 달리
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열차가 방문하는 행성마다 특수성을
부각시키며, 인간 삶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외친 유명한 말이다. 미항공우주
국(NASA)가 1977년 9월 5일에 쏘아올린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 14일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인류에게 보내왔다. 지구에서 64억 Km 떨어진 거리에
서 촬영한 사진 속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이었다.
이 작고 푸른 점에서 60억 넘는 인류가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
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지구
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 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
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지름 100 Km 크기의 혹성이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경우 그
충격으로 지구의 지표는 섭씨 6000도의 고열에 휩싸이게 되면
서 모든 생명체는 멸절되고 인간이 이룩한 문명도 흔적 없이 사
라진다. 지구 이외에 우리은하의 또 다른 별 혹은 외부 은하에
분명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 그들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 문제
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 인간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는 티끌 같은 지구에 살면서 우리가 우주의 주인공인 양 거들먹
대며, 여러 종교를 만들고 신(神)을 만들어 스스로 구속되어 살
고 있다. 게다가 인간이 신의 모습을 닮았다며, 궤변을 늘어놓기
도 한다.
전 우주적 관점 보면 인간은 대단한 피조물도 아니며, 영물(靈
物)도 아닌 한시적 생명체에 불과하다. 잠시 지구에 정착하였다
가 또 다시 정처 없는 베가본드(Bagabond)의 길을 떠나야 하는
영원한 방랑자인 것이다.
그 잠깐 동안에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누구를 속이고, 미워하
고, 짓밟고, 빼앗고, 죽이려 한다. 나이 50세, 지천명(知天命)이
면 방랑자의 본질은 깨달아야 하는데 쓸데없는 의식주 같은 기
본적 물질에 현혹되어 있는 방랑자들이 상당히 많다. 방랑길을
떠나는데 지팡이와 괴나리봇짐 하나면 충분하다.
우리들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 고향으로
가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
일까? 절대 아니다.
시신을 땅속에 매장하던지 또는 화장하던지 어떠한 형태로 장
례를 치르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수지화풍(水地火風)에
의해 본래의 형태인 원소(元素) 즉, 철, 규소, 망간, 탄소, 산소,
인, 마그네슘, 수소 등으로 화(化)한다.
돌아가셨다는 말은 지구에서 잠시 동안 인체(人體)를 구성했던
원소들이 억겁의 세월 동안 저 광활 우주 속을 유영하며, 본래
태어났던 별을 찾아가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겉모양
만 보고 인간의 시각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미녀와 추녀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나는 오늘밤에도 조용하고 경건한 자세로 꿈속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보리라. 허블우주망원경 같은 고도의 과학 장비가 없더
라도 나의 근원을 찾아 생시(生時)와 몽중(夢中)을 방황하리라.
별들은 거만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 창작일 : 2018.10.04.
驪江齋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