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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2 : 12 은혜로 주신 것들을 - 고전 2 : 14 육에 속한 사람은
고전 2 : 12 은혜로 주신 것들을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의 깊은 것도 아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감추었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 진리를 사도들에게 계시해주셨다.
사도들은 하나님에게서 온 영 곧 성령을 받았고,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성령께서 주신 진리 곧 영적인 진리이다. 우리는 동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이 전한 복음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1]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우리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메이스'(*)가 10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장 초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알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대상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임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본 절에서의 '우리'는 바울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은 자들까지도 포함한다.
2]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는 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본 절은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목적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는 것임을 설명한다.
'은혜로 주신 것들'의 헬라어 '카리스덴타'(*)는 부정 과거로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사람에게 단번에 주시는 선물을 가리킨다(Edwards).
본 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의 깊음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은혜를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 성령께서 추구하시는 궁극적인 목표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계시하시고,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그 계시를 깨닫게 하신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인간 이성의 취약성(脆弱性)과 제한성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대속의 죽으심을 당하시고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음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 말은 믿는 자마다 믿기 전에 먼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져서 믿었다는 뜻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믿음을 고백하는 즉시 세례를 주어야 할 것이다.
성령을 받은 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행 10: 47)은 당연한데, 믿는 자마다 먼저 성령을 받은 자로 간주되므로 나중에 세례를 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행 19: 2에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는 말이 어리석은 말이 되고 만다.
이는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말인데, 모든 믿는 자마다 성령을 먼저 받고 믿는 것이라면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을 수는 없다.
고전 2 : 13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그는 사도들을 통해 주신 신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셨고 믿고 구원 얻게 하셨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상의 지혜로 분별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분별할 수 있다.
1]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말하거니와'에 해당하는 헬라어 '랄루멘'(*)은 '소리 낸다'는 의미를 가진 '랄레오'(*)의 1인칭 복수 현재동사이다.
바울은 현재형을 사용하여 본 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자 하고 있다.
2]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사도들은 하나님께로 온 영. 곧 성령을 받았고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성령께서 주신 진리 곧 영적인 진리이다.
우리는 동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진리들을 다 깨닫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그는 사도들을 통해 주신 신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셨고 믿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상의 지혜로 분별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분별할 수 있다. 기독교 진리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가르치신 진리이다.
또 이 진리는 성령으로라야 깨닫고 믿고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다.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 곧 복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령은 하나님의 비밀을 온전히 아시는 분으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성경의 진리를 깨우쳐 주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베푸신다.
3]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이 구절은 해석상 난제를 갖고 있다. '영적인 것으로'(*, 프뉴마티코이스)란 단어의 성(性)에 관한 문제이다.
개역성경은 이 단어를 중성으로 보고 번역했지만 남성형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남성형이 맞다면 '신령한 사람들에게'라고 번역해야 하고 '분별하느니라'의 헬라어 '슁크리논테스'(*)도 다른 해석을 적용해야 어울린다.
'슁크리논테스'는 원래 '결합시키다', '조화롭게 하다'등의 의미로 쓰였는데 나중에는 '비교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 고후 10: 12 -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가져오다', '주다', '설명하다', '해석하다'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므로 본 구절의 번역은 다음 네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1) '신령한 진리에 신령한 형식을 부여한다.'
(2) '신령한 진리를 신령한 진리로 비교한다.'
(3) '신령한 사람들에게 신령한 것을 해석해 준다.'
(4) '신령한 말로 신령한 진리를 설명하거나 표현한다.'
비록 이 네 가지 해석이 모두 타당성이 있기는 하지만 네 번째 해석이 문맥에 가장 적절하다.
바울은 영적인 말 즉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오시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그가 그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요 14: 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또 그가 오시면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장래 일도 알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요 16: 13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4.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 ( 2 : 14 - 16 )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2: 14부터 3: 4까지는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해 말한다.
14-16절은 육에 속한 세상 사람과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 성도의 차이를 말하면서 육에 속한 세상 사람들은 영적 분별력이 없으므로 성령의 일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 성도들은 영적인 일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판단하여 안다는 것이다.
고전 2 : 14 육에 속한 사람은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
육에 속한 즉 육적인(프쉬키코스)이라는 말은 영적인(프뉴마티코스)이라는 말과 대조되는 말로 육신의 욕구와 격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교훈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다.
그는 성령께서 계시하신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 되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1]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육에 속한 사람'의 헬라어 '프쉬키코스 안드로포스'(*)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빛과 진리를 받지 못하여 구원 얻지 못한 자연인의 상태'를 가리킨다.
<프쉬키코스>는 목숨, 생명, 생존 또는 사람 자신이라는 뜻의 <프쉬케>에서 온 말이므로 의식주와 같은 자기의 생존에 연연해서 사는 상태를 가리키며, 이는 곧 15절의 신령한 자인 <프뉴마티코스>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이들은 복음에 대한 이해가 저급한 수준에 있어서 감각적이고 이기적인 정신을 가지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 용어가 신약성경과 교부 문헌에서는 성령과 초자연적인 세계와는 대조적인 자연 세계의 생명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사용되었다.
흠정 역(KJV)에서는 이를 '자연인'(the natural man, KJV)으로 번역했는데, 자연인은 거듭나지 않은 생태적인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성령의 일을 미련하게 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1: 23).
그들은 아무리 지혜롭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 지혜가 걸림돌이 된다. 육적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일반 사람, 즉 믿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이와 같이 세상에 속하여 자신의 현재적 삶에 연연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일<타 프뉴마토스 데우>이란 앞에서 계속 말하고 있는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이다. 세상 사람들이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1: 18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십자가의 도가 육에 속한 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2]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헬라어 본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가 있어서 본 구절에 앞 구절의 이유가 됨을 나타낸다.
'어리석게'의 헬라어 '모리아'(*)는 고대 헬라에서 신체적으로 둔하거나 장애가 있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우둔함을 의미한다.
거듭나지 않는 자연인은 모든 가치를 육체적 물질적 기준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무익하고 무가치하다고 인식된다.
세상 사람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자신의 생명과 무관한 헛된 것으로 생각하므로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 곧 십자가의 도는 영적으로만 분변할 수 있다고 되풀이하는데, 이는 고린도 전서에 나타난 사도의 일관된 사상이다. 감각적 경험에 의존해 사는 세상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계에 속한 비밀을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데,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계에 속한 일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3]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영적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스'(*)는 '영'(*, 프뉴마)의 부사형으로서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라는 의미이다.
'분별되기 때문이라'의 헬라어 '아나크리네타이'(*)는 13절의 '분별하느니라'의 헬라어 '슁크리논테스'(*)와는 달리 법정 용어로서 진술을 듣기 전에 심문받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가 원래 '검사한다', '시험한다'는 의미를 가졌으며 나중에는 '판단하다', '평가하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육체에 속한 사람은 영적이 아님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의 일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이를 분별할 가치 기준도 가지지 못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첫 번째 종류의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프쉬키코스 안드로포스) 즉 ‘육적인 사람’이다.
‘육적인’이라는 원어(프쉬코스)는 ‘영적인’이라는 말(프뉴마티코스)과 대조되는 단어로 감각적 성질 즉 욕구와 격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육적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일반 사람, 즉 믿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로 이단자들도 육적인 자들(프쉬키코이)이다.
* 유 1: 19 -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육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 고전 1: 21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깨닫지도 못한다.
* 롬 3: 11 -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함과 섬김이 없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
* 롬 1: 21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롬 3: 18 -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
* 롬 1: 23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과 악령들을 따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온갖 죄와 부도덕에 빠져 있다.
* 마 15: 19 -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 롬 3: 12-15 -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 엡 2: 2-3 -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엡 4: 17-19 -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교훈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다. 그는 성령께서 계시하여주신 하나님의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되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복음 진리들은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만 깨닫고 분별되고 판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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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