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4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주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계명을 완전히 지키심으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습니다.
나 역시 주님이 주신 계명을 잘 지켜 그 사랑 안에 거하여야 함에도 본질적으로 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안의 본성이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는 죄인 중에 괴수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언약으로 죄가 없으시며 죄를 알지도 못하신 아들을 죄인 중에 괴수로 보내시어 속죄제물로 십자가에 거셨습니다.
그 은혜로 나를 구원하셨지요.
오늘 하루도 그 은혜로 시작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이 시간 복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하심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4:1-18
제목 : 육신의 앉은뱅이보다 더 심각한 영적 앉은뱅이가 복음으로 일어서다.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 나의 묵상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어 제자가 되었다.
비록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의 계략에 의해 그 도시에서 쫓겨나 이고니온으로 향하였지만, 두 사도에 의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그 도시의 사람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하여졌다.
이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이곳에서도 맨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거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런데 어딜 가든지 복음을 대적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
복음을 믿으려 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 대해서 대적하게 하였다.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주님을 힘입어 복음을 담대히 전할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고 또한 주님의 은혜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 결과 이고니온의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었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을 따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두 사도를 따르기도 하였다.
그 지역의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고 지도자들이 한 패가 되어 두 사도를 핍박하며 돌로 쳐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그것을 알고 바울과 바나바는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두 도시인 루스드라와 더베로 도망하여 그곳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한편 루스드라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있었다.
바울이 그 사람을 주목하여 보았더니 그 안에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큰 소리로 “당신의 발로 바로 일어서시오.” 하였더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 것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친 것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지르기를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나바를 가리켜 제우스라 하고 바울을 가리켜 말하는 자라고 하여 헤르메스라고 칭하였다.
성 외곽에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꽃다발을 가지고 성문으로 와서 사람들과 함께 제사하려고 하였다.
그것을 알게 된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으면서 제사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쳐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들이여, 어째서 이런 일을 행하려 합니까? 우리 역시 여러분들과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만물을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이 자기 방식대로 살게 내버려 두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에도 당신을 계시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고,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는 등 여러분에게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먹을 것을 풍성히 주셨고 또한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렇게 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제사하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다.
루스드라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있었는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바울이 그를 주목하여 보니까 그 안에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이 보여서 큰 소리로 이르기를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일어나서 걸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다.
물론 이 사람과 같이 육신적 앉은뱅이는 아니지만 영적인 앉은뱅이로서 제대로 일어나 걸을 수 없는 자였다.
왜냐하면 나는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로서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고전 15:22a)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일어서서 걷는다는 것은 곧 아담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아들의 생명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데 나는 아담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을 구별할 줄도 모르는 자였다.
그래서 아담의 생명으로 살면서도 나는 영적 앉은뱅이인 것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것이 내 인생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차라리 육신적 앉은뱅이여서 정말 죄의 자리에 가는 속도가 느려터지고 죄를 향하여 가는 횟수도 현저히 적다면 그만큼 유익이 될 터이지만 육신은 멀쩡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아무런 의식이 없는 나로서는 죄는 물 마시 듯 하면서 내가 불구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육신의 앉은뱅이보다 더 심각한 앉은뱅이면서 말이다.
나는 이런 영적 앉은뱅이의 모습으로 온갖 죄란 죄는 다 저지르고 다녔다.
게다가 그런 나 자신은 파고 또 파도 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영적 앉은뱅이이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짓는 현상만 볼 줄 알았을 뿐 그것이 얼마나 심대한 죄인지는 자각하지 못하였다.
나는 일명 모태신앙인이다.
겉모습은 교회에 다니니까 그리스도인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속 사람은 전혀 바뀌지 않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일 뿐이었다.
이것이 영적 앉은뱅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다가 때로는 심령이 뜨거워지기도 하면서 어쩌다 목사가 되어 지금까지 온 것이다.
목사가 된 후로도 여전히 죄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김유신의 말(馬)처럼 그렇게 그렇게 죄를 먹고 마시면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결코 어쩌다가 목사가 된 것이 아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런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창세전부터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그 오묘하신 뜻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엡 1:4-5)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한 때 깊은 무덤 가운데 있기도 하였다.
그 때 무덤의 상황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심판이요 징계라는 사실을 인정하였을 때 태풍의 눈과 같이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시시로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하거나 두렵기도 하였다.
언제까지 이 심판이 계속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이다.
그 심판으로 교회의 분위기는 안정되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 또 일이 터질지 모르는 가운데 숨을 죽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런 심판 가운데 있던 나를 주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심판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결국 내 안에 고침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 때 겪었던 무덤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무덤 안에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무덤이 생명을 잉태하는 산실이라는 진리 안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잠잠히 바라보고 있다.
내가 무엇을 어찌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영적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로 인하여 생명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난다.
비록 그에 대한 대가는 엄청나지만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우는 데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을 통하여 한 교회가 살고 한 공동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영적 앉은뱅이로 주저앉아 있는 나를 향하여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셨다.
나는 그전까지 나의 발로 바로 일어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저 의존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왔던 나를 주님께서는 나의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외치신다.
그것이 곧 주님과의 영적 교제임을 나는 복음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주님과 나누는 영적 교제.
이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자리요, 카이로스의 영원한 현재이며 주님의 생명으로 행하는 자리이다.
나는 이것을 잘 알지 못하여 말씀을 묵상할 줄도 몰랐고 묵상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인하여 주님과의 교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행하던 자였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묵상을 하면서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정죄하거나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나는 묵상을 함에도 여전히 영적 앉은뱅이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내가 매일 먹고 마시는 죄와 이런 교만의 죄, 그리고 불순종과 불신앙의 죄는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고 이제는 나의 발로 일어나 바로 서는 계기가 되었다.
말씀 묵상이 하나의 습관이나 프로그램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나는 철저하게 완전한 죄인이다.
이런 나를 내 발로 바로 일어서게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에 올라가셨고 이를 기꺼이 수용하셨다.
이제 나도 그런 주님을 따라 나의 십자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내게 주신 그 무덤에 들어간다.
그 무덤은 나만의 무덤이 아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무덤이기에 그 안에 생명이 있다.
그리하여 지식적인 아들의 생명이 아니라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바뀌어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이 실제가 되었다.
생명이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수지맞은 것이 아닌가?
주님과 하나 됨이 나를 새롭게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다시 한 번 찬양과 감사를 올린다.
내 영혼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만물 위로 올라간다.
주님, 모든 영광 받으소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비록 무겁고 가혹한 주의 심판이지만 심판 중에 행하시는 주님의 은총은 무궁하나이다.
내 영혼이 주의 은총을 입어 중한 죄의 짐을 벗었나이다.
그리하여 내 영혼은 깃털처럼 가볍고 날아가오니 지금 주의 나라인 만물 위로 올라가나이다.
나를 받으소서.
내가 주님의 뜻을 따라 일어나 바로 섰사오니 지금 이 자리가 주의 영광이 임하는 카이로스의 자리가 되게 하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죽기에만 합당한 죄인을 의인 삼으시고 주의 것 되게 하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영광을 받으소서.
높임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