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강론>(2023. 10. 30. 월)
(루카 13,10-17)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카 13,10-14)”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히 십계명에
들어 있는 계명인데, 신명기를 보면,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여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너의 소와 나귀, 그리고 너의 모든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여 너의 남종과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해야 한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5,12-15).”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을 쉬게 해 주는 날’입니다.
‘내가 일을 안 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안 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딸, 종들, 이방인들에게 일을 안 시키는 날,
심지어 가축들에게도 일을 안 시키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일’은 ‘생계를 위한 노동’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셨다고 해서 회당장이
화를 낸 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을(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병자를 고쳐 주셨다면,
그래서 병자를 고쳐 주신 다음에 치료비를 받았다면, 그것은
안식일을 안 지키신 것이 되고, 회당장이 화를 낸 것은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병자를 고쳐 주신
것도 아니고, 치료비를 받으신 것도 아닙니다.
병자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셨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본래의 정신대로
지키신 것이 됩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왜 예수님께 화를 내지 않고
군중에게 화를 냈을까?
예수님께 직접 화를 낼 용기가 없어서 그랬거나, 치료를 받는
것마저도 ‘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요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중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는 경우라면, 날짜도, 요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만을 갈망하게 됩니다.
만일에 그런 병자에게 가서 주일을 잘 지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랑도 없고 인정도 없는,
글자 그대로 무자비한 율법주의자가 될 뿐입니다.>
안식일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지 않는 날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일을 못하면 굶어야 하는데, 안식일이라는 날이, ‘일을 못해서
굶주리는 날‘로 되어버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가?
탈출기에서 ‘만나’가 내릴 때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 엿샛날에는, 그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면,
날마다 모아들이던 것의 갑절이 될 것이다(탈출 16,4-5).”
하느님께서는 아무 대책도 없이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치 ‘만나’를
내려 주시면서 안식일에 일할 필요가 없게 해 주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고 그냥 굶어라.”는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서, 정말로 먹고살기 위해서 주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 사람들이 주일에 쉬지 못하고,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들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의 책임입니다.
주일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에 지장이 없게
해 주는 것은 공동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계명에 규정되어 있는 안식일이,
단순히 일을 안 하고 쉬는 날이 아니라
‘거룩하게’ 지내는 날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만으로 주일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 하루를 온전히 ‘거룩하게’ 지내야 주일을 지킨 것입니다.
<“나는 미사 참례를 했으니 주일을 지켰다.” 라고만 생각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거룩하지 않게, 즉 세속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속된 오락을 하면서 놀았다면,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 십계명에서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라는 말씀을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 말씀에서
“네 할 일”이라는 말은, 생계를 위한 노동만을 가리킬 뿐입니다.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일은 ‘네 할 일’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면, 그 엿새도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거룩하게’ 지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엿새가 아니라 닷새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틀 동안 무엇을 하면서 쉬는가? 그냥 세속 사람들처럼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도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병자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셨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