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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의 잃어버린 6년
수원에서 전남 그리고 대전까지
1997년 5월 21일 도쿄 국립경기장
1997년 5월 21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은 고종수가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계기가 됐다. 이날 도쿄국립경기장에는 비가 내렸다.
도쿄의 을씨년스런 날씨는 당시 한국과 일본 축구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했다.
일본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아시아 축구의 신흥 강호였고 한국은 일본의 맹추격을
인정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이같은 흐름을 나타내듯 경기 초반부터 한국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당시 20살이였던 나카타 히데토시가 선봉에 나섰다.나카타 의 위력은 대단했다
공격수의 발 끝에 정확하게 보내는 칼날 패스로 일본 공격의 파괴력을 더했다.
한국은 전반 30분 까지 제대로 된 공격한번 펼치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 차범근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변화가 필요했다.
차감독은 벤치에 앉아있던 더벅머리 선수를 불러 교체 준비를 하도록 했다.
차감독의 출전 지시에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인 선수가 등번호 22번의 고종수 였다.
그때 고종수는 나카타보다 한살 어린 19살이었다.전반 32분 고종수가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리고 그가 들어간 뒤 거짓말처럼 경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고종수의 활약에 힘입은 한국은 탄력적인 중원 플레이를 펼칠수 있었다.
1-1로 승패를 가리지 못한채 전후반 90분이 끝났지만 한국과 일본의 희비는 엇갈렸다.
일본 축구팬 5만8천여명이 모인 도쿄국립경기장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나왔다
일본 대표팀의 가모슈 감독은 "대체 한국의 22번 선수가 누구냐. 두팀 통틀어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며 혀를 내둘렀다.
2002년 6월 4일 부산 월드컵 경기장
4강 신화의 시작을 알린 2002년 6월 4일 부산 월드컵 경기장
선수가 아닌 해설가로 부산을 찾은 고종수의 심정은 참담했다.
고종수의 축구 인생 나아가 삶 전체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대전의 김호 감독은 "고종수를 망친 장본인이 히딩크 감독" 이라고 했다.
김각돔은 "히딩크 감독은 2001년 당시 체력이 바닥난 고종수의 몸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살인적인 경기 일정에 강도 높은 체력 훈련까지 하면 이를 버틸선수는 없다. 그래서 고종수의
오른쪽 무릎이 고장난 것" 이라며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2007년 8월 26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
전남에서 나온지 1년 6개월을 그냥 보냈다. 2007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대전 입단을 이끌어 낸
곽대표는 "종수가 언젠가 이런말을 했다" ' 형 아침에 갈데가 없어요' 라고
피가 거꾸로 솟는것 같았다. 종수는 예전부터 자존심이 센 아이였다. 그 자존심이 종수를 망쳤지만
지금은 그 자존심이 종수를 되살리고 있다" 라고 말했다.
8월26일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대전과 전북의 K리그 18차전이 벌어졌다.
대전은 후반 2분 브라질리아의 첫골과 5분 뒤 슈바의 두번째 골로 앞서나갔다.
수비를 강화할 시점이었으나 김감독은 뜻밖의 선수를 내보낼 준비를 했다.
후반 18분 왕선재 수석코치의 호출을 받은 고종수가 터치라인에 섰고
임영주와 교체돼 그라운드로 힘차게 뛰어나갔다.한밭벌에 모인 1만 9212명의 함성이 크게 메아리 쳤다.
고종수의 현재 기량은 전성기에 훨씬 못미친다. 예전의 기량을 완전히 되찾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종수는 이렇게 얘기했다 "나를 두고 '실패의 표본' 처럼 얘기하는 것을 듣고 견디기 힘들었다
오기가 생겼다. 앞으로 선수로 뛸 시간이 많지 않겠지만 뛰는 동안만이라도 후배들에게 좋은얘기들을
해주고 싶다. 내잘못이 가장 컸으니까 누구를 탓하고 싶지않다. 요즘은 신이 난다.
2001년 이후 요즘처럼 좋을때가 없었다"
"나의 왼발은 아직 죽지 않았다"
수원에서 김호감독과 차범근 감독을 모두 겪었는데
두감독 모두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훌륭한 분이다. 하지만 선수마다 자신과 잘맞는 감독이
있을것이다. 내경우는 김감독이 더 잘맞는것 뿐이다.
차감독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매정한 편이 있지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일본에서 돌아왔을때에도 좀더 인간적으로 감싸고 보든었으면 시키지않아도 스스로
저녁운동까지 하면서 열심히 했을텐데.. 그런 문제로 교토 퍼플상가에서 한국으로 올때에
조광래 감독이 있는 FC서울로 가려고 했다. 조감독은 수원에서 코치로 있을때 부터
나를 잘 이해하는 분이었다.
서울은 수원의 라이벌 팀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서포터들이 배신감을 느낄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단 더 많이 뛰고 활약할수 있는 팀으로 가고싶었다.
그것이 나를 아껴주는 팬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당시 수원 서포터 회장과도
만나 그런 이유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수원에서 게약 조항등 여러문제를 걸면서 나를 다시 데려갔다.
수원엔 아직도 많은 추억이 있을것 같은데.
창단멤버가 거의 모두 떠나고 몇명 남지않았다.
운재.건하.진우형이 모고싶다. 그리고 오랜 기간 나를 아껴준 그랑블루가 보고싶다.
기회가 된다면 그랑블루랑 따로 은퇴식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팬들에게 좋은 경기내용을 보일수 있도록 힘 닿는데 까지 뛰어볼 생각이다.
대전시티즌에 온 지도 반 시즌이 지났는데.
대전 서포터들이 정말 잘 대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직 대전관중이 수원보다는 적지만 팬들은 정말 열정적이다. 경기내용만 좀 더 재미있으면
대전 축구는 금세 살아날수 있을것 같다.
요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몇몇 어린 선수들이 있다 선배로서 한마디만 한다면.
자만심을 버리고 묵묵히 한단계 한단계 잘 밟아가기 바란다. 그리고 언론에 특별히 바라는게 있다
어린 선수일수록 칭찬을 많이 하는 기사를 실었으면 좋겠다.
어린선수가 꼬투리를 잡아 비판한 기사나 인신 공격성 기사를 보면 한달만에 회복할 부상도
세달이 걸릴수 있다. 그만큼 기사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언론과 선수는 공생관계라는 생각으로 어린 선수들을 동생이나 조카처럼 잘 보살폈으면 좋겠다
+
스포츠 2.0 이라는 잡지에 나온 고종수 선수의 기사입니다.
이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었는데.;; 너무 많아서 치기가 힘들었어요.ㅠ
주요한 부분만 이렇게 올립니다.;;ㄷㄷ
이 인터뷰와 기사를 보고 정말 고종수 선수에 대해 다시 느꼈구요.
가끔 대전 경기 중계를 보면..고종수선수가 나올때 정말 큰 함성소리에 가슴이 막 뛰고.
뭉클하고 그랬는데...진짜.. 다시 재기 했으면 좋겠습니다.ㅠ
고종수 선수에대해 관심 많은신분들은 스포츠 2.0 사셔서 꼭 보시길 바랍니다.
이 내용보다 훨씬더 좋은 내용이 많이 있어요!
첫댓글 고종수가 리니지에 빠져 축구를 소홀히 했다는 말도 들었었는데...다시 꼭 재기하세요!
그거 잘못된 이야기긔 ㅠㅠ
나두 오빠가 실패의 표본이 되는게 속상했어....오빠얘기만 나오면 리니지 얘기 나오는것도 속상했구...경기장에서 오빠를 다시 볼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그래도 난 오빠가 젤 좋다규 오빠 항상 응원하고 있어!!
빅버드 놀러오세요~
아직 믿어요ㅠㅠ 이제 다시 시작이예요!!
꼭 재기하셔야 한다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시긔~!!!!!!!!!!!!!!!!
힘내시라긔 . 보고싶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