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단상
유기섭
이른 아침 찾는 이 없는 촉석루는 고요 속에서 단아한 모습으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 수많은 세월 바람과 비를 맞으며 꿋꿋이 지켜온 역사의 한 가운데서 태어나고 떠나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은은히 새겨진 목조건물에서 바라본 시내와 강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떠나간 사람들은 강물에 뒷모습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갔다. 수백 년 동안 남강의 흐름은 그대로인데 변해가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인가보다. 크고 깨끗하게 보존되어서 진주성의 주장대의 면모를 보여준다. 담당 시에서 누각에 오를 때는 신발을 벗고 출입하기를 권고하여 바닥이 깨끗하여 털썩 주저앉아서 옛 선현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절로 시심이 솟고 그때로 되돌아간 듯하다.
숱한 비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정신으로 이 땅을 지키며 귀중한 몸을 바친 선조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의 나를 뒤돌아보며 새삼 옷깃을 여민다. 선현들의 지나간 발자취를 따라서 어려웠던 시대 스스로 힘으로 난관을 이겨나가기 위하여 기꺼이 몸 바친 숭고한 정신이 깃든 이곳.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걸으며 그때의 고단한 삶을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조선조에 왜적의 침략을 당하여 분연히 일어선 선조들의 정신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닐 것이다. 일신의 영달을 뒤로하고 목숨을 초개같이 나라를 위해 바친 정신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은 이곳에 서린 선조들의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리라. 평시에는 학문에 정진하던 선비들이 국란을 맞아서 일제히 일어선 것은 우리의 긍지이고 길이 이어나가야 할 거룩한 정신이다. 작은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고 대의를 위하여 몸을 바친 그들이 있음에 오늘의 우리가 그 뒤를 이어갈 터전을 가꾸어 갈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정신이 깃든 바위는 수백 년 세월 그대로 강을 지키며 후세의 우리에게 의로운 삶의 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다. 바위의 바로 위 낭떠러지 암벽에 나라를 일제의 손에 넘기는데 협조한 조상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잠시 의분을 느끼며 발길을 돌렸다.
촉석루 마루에서 남강을 바라보며 나라를 걱정하고 어떻게 살아야 의로운 삶인지를 토론하던 옛 선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라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목숨을 내걸고 나가 싸우는 한편 지방의 의병들을 모아 왜적과 싸우며 기울어가는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의인들의 기개와 각오가 서려 있는 곳에서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본다.
수많은 의인과 자신의 몸을 내던진 의기의 충정이 서려 숨 쉬는 남강. 그 물줄기는 그때와 다름없이 유유히 흘러 우리 후손들에게 뒤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서초앤솔로지 2026.16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