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 유원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배낭을 매고 나서니 2시 55분이 지나간다.
입구에는 바위 위로 하얀 물이 제법 소리내며 흐른다.
밤에 비가 많이 왔나보다.
아침에는 늦잠을 잤다.
일요일 아침에 가족이 일어나기 전에 집안 일을 따로 처리도 못하면서
괜히 서둘러 일어난다.
이 다음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내 생각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음악도 틀고, 책도 읽는데 곧 졸음이 오곤 한다.
금요일 교육대학에 가는데 비가 쏟아진다.
400석 대학원 강당은 사람이 가득차 간다.
연극을 오랜만에 본다.
'버스 정류장'은 오지 않은 희망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집중하기보다 연기하는 사람들에, 김교수님에 대해서 자꾸 생각한다.
나 보다 먼저 연구실에 나오셔서 책을 읽던 분
말없이 빨간 색연필로 원고지를 그어버리고 한 두개의 표시로 글을 잡아주시던 분
담배를 안 피운다 해도 넣어두라던 분
학생이 놓고 간 양말을 내게 주시던 분
그분의 말투를 닮으려 했고
그분을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느닷없이 안관옥에게 연락하여 점심을 얻어먹고, 앞뒤없는 기사원고를 보냈다.
대학의 선생님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겠다.
23기 후배들의 체육대회 주관사무실 개소식 가는 길에 전원범 교수를 만난다.
김 교수님을 위해 기자회에서 마련한 저녁이 있다고 말한다.
시인이며 협회의 회장도 하시고 이제 교육위원인 그와 김교수의 삶이 비교된다.
영대연구실에서는 붓글씨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는 옛책처럼 묶인 작은 한지 책에 작은 붓으로 쓴 한글 반야심경을 보여준다.
컴퓨터 글꼴 회사에서 우리 옛글꼴을 사서 학생들 가르치는데 쓴단다.
23기 후배들 사무실 개소식은 6시라는데 먼저 들른다.
아는 얼굴들이 인사한다.
낙주는 양복을 입은 채 호치키스를 들고 명단을 박고 있다.
봉투 하나를 주고, 방명록에 고민하다가 '전라남도교육청'이라고 쓴다.
저녁 눈빛고을 만남에는 태현이가 불참했다.
충호형의 유럽여행 이야기
종필이의 사업 이야기
영대의 산행과 운동과 그림 그리기
난 말이 별로없이 웃기만 한다.
이번 겨울에는 종필의 계획에 따라 여수로 여행을 가기로 한다.
노래방과 여관을 거쳐 다음 날 낮까지 자고 나온다.
영대는 일찍일어나 맨몸으로 운동을 한다.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려는데 잠오지 않는다.
한강이가 와서 공원에 가자한다.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햇볕 속에 공원에 간다. 한강이는 내리막에서
퀵보드를 잘 탄다. 바퀴를 다루는 한에는 나?? 훨씬 고수다.
달리디가 싸움하다가 신발던지기 하다가 땀 흘리며 돌아온다.
샤워하고는 또 나간다.
그런 말 안하던 한강이가 밥 먹게 일찍 오라고 한다.
밥 먹고 올거라 했더니 밥만 먹고 빨리 오란다.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이정숙과 서정하를 만나 꽃다발과 액자와 필기구, 그리고 선물로
상품권을 샀다. 미진한 것은 맡기고 먼저 식당에 갔다.
낮부터 만났다는 성룡이와 세은이가 와 있다.
사모님과 재학생 2명까지 모두 32명이 모였다.
영대는 말없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성룡과 정복현이 글을 읽었는데 좋다.
헌사이지만 우리가 지나 온 서로의 경험들을 다시 회상할 수 있었고
그 분의 인품을 되새기며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임미리는 시를 처음 배웠다는 남편 이상인이 쓴 글을 읽었다.
정광원 형은 맨발이었지만 아름다운 오카리나 연주를 들려주셨다.
식사 중에는 교수님도 만감이 교차하는지 자리를 돌며 술을 따르신다.
사모님이 '재수씨랑 어디가서 뽀뽀라도 해야겠다.'고 하신다.
그 분은 대학에서의 3시간 강의와 교회 일과 처가댁 관리로 소일하실 계획이란다.
일을 하실 수 있으시냐고 했더니, 사모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농사일 등 일을 해 보았노라고 하신다.
가실 분들은 가시고 다시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또 마셨다.
서로를 알아가느라, 옛날을 회상하느라 이야기가 끝이 없다.
고맙다는 치사도 듣는다.
하늘은 흐리고 빗방울이 쏟아질 것 같다.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에서 땀을 식히며 사진을 찍는다.
물길은 흙탕물이 넘치고 너른 벌은 도로공사로 잘리고 둑이 되었다.
반듯한 논을 찍어본다.
풀이 길을 덮고 있다.
반바지 무릎위가 금방 젖는다. 산딸기 가시에 ?J힌다.
잎이 무성해진 사이로 고사리가 길게 목을 내밀고 올라와 있다.
7월까지 꺾을 수 있다던 준환이가 생각난다.
고사리로 돈을 좀 벌었을까?
그는 하루에 얼마나 오랫동안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고
팔의 힘을 쓰고 또 땀을 흘릴까?
그는 이제 장주가 되어 이세상 일장춘몽이라고 웃고있지는 않을까?
호남대쪽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만나서야 사람이 보인다.
1시간 걸려 도착한 석봉에는 사람들이 몇 있다.
장수정까지 가는 길에는 사람을 비키느라 길옆에 서곤 한다.
길도 넓다. 산악마라톤이 좋겠다.
샌달에 미끄럽다.
술에 찌든 나의 체력도 형편없다.
장수정에는 '하남 산악회 휴게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썩어가는 사과를 깎아 먹는다.
냉장고에서 꺼내 온 오이는 쓰다.
맥주 생각이 간절하다.
리코더를 꺼내 산바람 강바람을 불어본다.
금방 시들해진다.
젖은 대나무 사이에 곰팡이가 피어난다.
가 나무를 목침삼아 눕는다. 매미는 쉬지않고 운다.
그래도 20여분 잠잤다. 몸이 싸늘해진다.
챙기고 일어나니 5시 20분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부부이거나 부자간이거나 친구사이가
많은 것 같다.
한강이가 씻었던 곳에서 무릎까지 씻는다.
차로 돌아오니 7시가 되어간다. 어두워진다.
임류정 가는 쪽으로 차를 운전하여 강물을 본다.
다리는 물에 넘치고 건너려 하던 봉고차가 후진한다.
그냥 돌아온다.
저기 매운탕 집에 가서 매운탕에 소주 한잔 하였으면 좋겠다.
집에 와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글 사진: 쉬리 변재구
배경 곡: Moldova /Sergei Trofan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