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경문 베드로는 179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말 만 있지 자세한 지명은 알수가없다 하지만 한때는 금위영에 근무했다는 것으로 볼때 서울도성안에 살었지 않나싶다 성인 남베드로가 하느님 겉으로 순교에 피를 뿌리고 영원한 안식를 얻는 해는 1846년이다 저 떠오르는 해를 보아라 검푸른 바다위 에 찬연히 피어오르는 태양빛 아래 우리가 기억하며 뼛속까지 아니 품속에 라도 고이 간직해야 할 성인에 위대한 탄생를 순교복자들 중에 성인 남경필 베드로에 눈물겨운 신앙에 발자취를 후세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믿음에 씨앗이며 복음에 메아리가 되어 십자성 하늘의 침묵으로 바라보고 통회에 눈물이 은하수가 되니 소매깃을 들어 눈물을 닦지 않을수 없다 요즘 말로 치자면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성인은 주님에 어린양으로 세상 를 바라봤지만 일찌기 세상를 뜬 천주교인 부친으로 부터 신앙예절 이나 어떤 가르침도 받지못해 하늘에 진리와 오묘함도 모른채 20여 성상를 살어왔다 깊이 생각해 보면 목자로 키우기 위한 주님에 심미안 은 당신에 충직한 종으로 세우기 위해 환난에 굴속으로 내세우지 않었나 싶다 20세때 죽음에 문턱에 이르 렀을때 인도한 사람은 박베드로라는 신자이며 스스로 자신을 남베드로 라고 불렀다 당시에 신부님 부재로 인한 환경에 영향도 있지 않었나 싶다 한때는 금위영 이라는 관청에서 병졸로 생활하기도 했다 22세에 허 바르바라 라는 교우 처녀와 혼인를 한다 교리를 자세히 모르는 관계로 고리대금 업자로 비싼 이자놀이를 하였다 유방제 파치코크 신부로부터 이런일은 교회가 금하는 행위라는 말을듣고 홀연히 떨고 일어나 그동안 받어온비싼 이자는 사람들에게 되 돌려 줬다고 한다
신부님를 따라 공소방문을 열심히 다니고 신앙에 열기가 가득하다 보니 새로 부임한 신부님으로부터 회장이라는 직책를 받게된다 기해박해때 베드로는 위험한 처지에 놓였지만 외교인 형제에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박해때 순교한 신부 형제들 보내고 그 아픔에 2.3년 동안 타락한 생활를 하게된다 심지어는 세컨드 까지 두고 살었다 한다 이런 남경문 이 하루아침에 지난날 를 훌훌떨고 개과천선를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 를 하게된다 친구들 에게 입버릇 처럼 하는 말이 그동안 하느님를 버리고 타락한 생활를 했으니 난 죄인이라고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순교하리라고 보속하는 의미에서 한겨울 에도 불을 때지않었을뿐 아니라 새벽에 일어나 기도로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남베드로가 천주교인라는 소리가 널리 알려진 탓에 병인박해때 1846년 체포되어 가는데 그의 아내가 팔에 매달려 당신없인 어찌 살란말이오 하자, 자신에 죽음은 순교를 통해 지난날에 죄를 씻고 하늘나라로 가는것 이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했다고한다 옥에 갇혔을때 그의 형제가 찾아와 만나보려고 했지만 만나보질 못하고 대신 옷과 음식를 전하자 옥에 얻어먹는 음식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돌려 보냈다고 한다 문초중 에 허리춤에서 군사 에 패를 때어 포장에게 바치며 나는 천주께서 창조하신 세상를 오늘날 까지 살어왔고 나라에 녹도 많이 받어 먹었으니 이패를 바친다고 배교를 하면 목숨많은 살려 주겠다고 하는 회유도 거부한채 베드로는 장살에 숨을거둔다 매질이 어찌 심한지 곤장이 부러지고 어깨죽지가 부셔져도 끝까지 신앙으로 초연히 죽음를 고통이 아닌 생에 마지막 기쁨으로 맞이한 남경문 베드로가 선교에 깃발을 세우고 홀연히 가버린 해는 1846년 9월20일 그의 나이 40대 였다 나는 양들을 이리때 가운데 보내는 것 처럼 너를 보낸다 마태복음 10장 16절 피가 터지고 살이 튀고 육신이 바스라지는 고통속에 도 십자가 길을 간 남경문 베드로 에 순교를 안 교황 비오11 세 의해 1925년 7월5일 시복 되었으며 1984년 5월6일 한 국천주교회 200주년 를 맞이해 방한 하신 교황 성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찬란한 별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시는 복자성인 이며 우리를 지켜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이름 6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