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유튜브로 바둑 해설 동영상을 볼 때가 있는데, 진행자들이 해설할 때 모두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바둑 해설을 합니다. 그런데 내가 예전부터 알고있던 바둑의 정석이나 행마법, 포석법과는 다른 내용으로 설명해서 '아이고 이제는 진짜로 바둑을 못두겠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알파고를 비롯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이 나온 이후에 기존의 바둑 상식이 많이 파괴되어 새롭게 바둑을 배워야 할 정도입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결할 때만 해도 당시 시중에 나와있던 컴퓨터 바둑프로그램의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내실력으로도 왼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해도 이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길수 있다는 것을 바둑동호인이라면 아무도 믿지않았습니다. 바둑의 착수 가능한 수가 거의 무한대인 수(361!=361*360*359*.......*1이 되고 거기다 바둑판 어디에서든 패가 나올 수 있으므로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우주적인 경우의 수가 나옵니다.)가 되므로 바둑은 기계의 계산 영역이 아니라 뭔가 인간의 영적인 감각이 좌우하는 예술 또는 인간의 승부 호흡이 결정하는 정신 스포츠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파고 이후에 여러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나왔는데, 그 인공지능들은 <바둑은 계산가능한 수학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둑에서 한수 한수 둘 때 마다 인공지능은 이길 확률을 % 로 보여주고 있고, 몇집 차이인지 숫자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의 수를 예측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일본의 프로기사 임해봉 9단에게 "바둑의 신과 둔다면 몇점이면 가능하냐"고 기자가 물었을 때 "3점이면 가능하다. 만약에 목숨을 걸고 둔다면 4점으로 두겠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인공지능이 거의 바둑의 신이 되어서 초일류 프로기사들도 2점으로는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하고 3점을 깔고 둬야 겨우 이기는 형편입니다. 이제와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바둑이야말로 수학적으로 계산가능한 게임으로 인공지능에 가장 적합한 게임이었던 것입니다.
기라성 같은 바둑 고수들이 남긴 명국들을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해설하는 동영상을 보면 그 당시 해설자들의 해설이 엉터리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당시에 좋은 수라고 평가받은 수가 사실은 엉터리 수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1999년도에 조훈현 9단과 중국의 왕레이 9단과 둔 바둑에서 조훈현 9단의 대마가 잡혀서 패색이 짙었는데 조훈현 9단이 <100년만의 묘수>로 죽어있던 대마를 살려 대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이 바둑을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다시 살펴보니 이 <100년만의 묘수>를 인공지능은 찾아 내지못했습니다. 조훈현 9단이 대마를 살리는 묘수를 둔 것은 맞지만 그 수가 승부를 뒤집은 것도 아니고 집차이를 줄이기는 커녕 더 벌리는 좋지 않은 수라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왕레이 9단은 자기가 잡은 대마가 조훈현 9단의 엄청난 묘수로 살아나니 역전당했다고 착각해서 냉정을 잃고 그 후에 계속 실수를 범해서 마침내 역전을 허용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냉정하게 형세판단을 했다면 자기가 여전히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인공지능으로 복기한 요즘에야 알게된 것입니다.
요즘 프로기사들은 주로 인공지능으로 바둑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수를 많이 모방할수록 이길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으로 예전 바둑을 복기해보면 이창호 9단의 바둑이 인공지능과 가장 닮았다고 합니다. 이창호 9단은 별명이 신산(神算)으로 바둑을 계산하여 둔 사람인데 이창호 9단의 수법이 지금의 인공지능의 착수와 비슷합니다.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이창호 9단의 수들을 이제와서 인공지능으로 살펴보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신진서 9단은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인공지능과의 일치율이 65%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바둑기사 중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에게도 지는 바둑을 프로기사들이 상금을 걸고 둘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들지만 바둑의 신이 있다고 해도 인간끼리의 순위를 정하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가 있으므로 프로바둑이 계속 존속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바둑기사들의 기풍이라는 것이 있어서 세력바둑, 실리바둑, 공격바둑, 우주류, 지하철 바둑, 대마킬러, 폭파전문, 끝내기 바둑등 다양한 기풍으로 두었는데 요즘은 인공지능이 예측하는 최선의 수를 찾는 것이 중요해서 각자의 개성이 없어지고 바둑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