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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10)아, 관준(4)이 화장실 좀 데려다 줘. 관인(7)이 관학(6)이 싸우지 말고! 관철이(11)는 윤지(3) 좀 업어주고~"
젖병에 분유를 타는 김연정(32)씨 입에서 잔소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사내아이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안방에서 칭얼대는 막내 윤아(1)를 안고 있던 남편 황운기(39·요리사)씨가 빨리 우유를 가져오라고 아내를 재촉했다.
4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다세대 주택. 20평(66m²) 남짓한 2층 전셋집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북적거리는 이 집을 남들이 들여다보면 '아이 생일잔치에 동네 아이들을 불렀나 보다' 싶겠지만, 일곱 아이는 모두 김씨가 배 아파 낳은 아이들이다.
둘이 만나 둘도 안 낳는 세상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은 1.19명에 불과했으니, 김씨는 가임기 여성 5인분의 역할을 해낸 셈이다. 서른 두해를 사는 동안 약 6년간은 임신상태였고, 일곱 아이를 낳는 여파로 어금니가 몽땅 빠지는 등 치아가 망가져 '임플란트 해 넣을 치아가 5개'라는 치과진단을 받았다. 황씨 부부는 무슨 생각으로 일곱명의 자녀를 둔 것일까.
처음부터 칠남매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1998년 결혼할 때는 '셋은 낳자'고 가족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삼신할머니는 딸을 기다렸던 황씨 부부에게 아들만 점지해줬고, 우여곡절 끝에 여섯째에 들어서야 딸 윤지가 태어났다. 황씨 집안에서 46년 만에 태어난 딸이었다.
고명딸로 예쁘게 키울 법도 한데, 황씨는 "'그래도 윤지에게 자매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일곱째로 들어선 아이도 딸이었고, 지난해 윤아가 태어나면서 '신월동 칠남매'가 완성됐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자녀를 3명 둔 가정은 5.23%이고, 4명 이상 둔 다둥이 가정은 0.5%에 불과하다(2005년 인구 총조사 기준). 2007년 일곱째로 태어난 아이는 51명이고 여덟째 이상으로 태어난 아이는 21명이었다. 황씨네 가족은 0.5% 중에서도 극소수에 속하는 셈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황씨네는 아이 수만큼 사건도 많았다. 유괴당할 뻔한 사건이 2번 있었고, 영화 '나홀로 집에'처럼 한 아이를 깜빡하고 집에 두고 여행을 간 적도 있었다.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는 건 셀 수도 없다. 김씨는 "놀이터에서 보면, 아이가 조금 긁혀도 요즘 엄마들은 벌벌 떨어요. 우리 집 애들은 '이 정도는 괜찮아. 안 죽어' 하죠"라고 했다.
뭐든지 '대형'이기도 하다. 과일은 상자째 들여놓고 먹어야 하고, 기저귀·분유는 10년째 박스로 쌓아놓고 산다. 전북 고창에 사는 시부모님의 원조도 받고 있다. 시골에서 김씨가 '자식 잘 낳는 최고 며느리'로 추앙받는 덕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시아버지는 한달이 멀다 하고 쌀이며 채소, 과일까지 넉넉하게 부쳐 준다.
그래도 300만원이 채 안 되는 황씨 월급으로는 아홉 식구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관철(4학년)이와 관문(3학년)이는 아직 한번도 사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김씨는 "요즘 부쩍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는 때가 많다"고 말했는데 이 대목에서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관철이는 인근 초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축구를 잘해요. 근데 운동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관문이도 학교에서 과학영재로 뽑혀 교육도 받았는데, 이렇다 할 뒷받침을 못해주고 있고요. 남들은 자식 1명에게 집중하면 될 걸, 우리 애들은 7분의 1로 나눠 써야 하니까요. 많이 어렵죠."
어떤 사람들은 "집도 차도 없이 저렇게 궁상맞게 살면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이만 일곱이나 뒀느냐"고 모진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부부는 후회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김씨는 "뭔가 반전(反轉)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아리송한 말을 했다.
"아이 한 명한테 온갖 경제력을 집중해서 고이고이 키웠는데, 그 아이가 부모에게 그만큼 잘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요즘 세상이 또 얼마나 무서워요. 사건·사고도 많고 새로운 병(病)도 많고. 우리는 일곱 중에 두세명만 잘 돼도 '남는 장사'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형제 많으면 다 잘 큰다고 하잖아요. 남편이랑 가끔 그런 계산도 해요. 나중에 얘들이 용돈으로 100만원씩만 줘도 700만원이라고."
칠남매는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이목을 끈다. 형제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 집 아이들이 가장 부러운 친구다. 관철이와 관문이의 담임 선생님들은 "다둥이 가정 아이들은 말 안 해도 티가 난다"며 "양보할 줄 알고 예의 바르고 사회성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정부의 출산 장려 유인책에 불만이 많은 듯했다. "다둥이 가정이니까 정부에서 혜택받는 게 많겠다. 거의 공짜로 키우지 않냐"고 묻자 김씨는 "실제로 정부에서 도움받는 것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저귀 할인해 준다고 해서 봤더니, 300원 수준이에요. 다둥이 가정은 자동차도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경차를 30만~40만원 깎아주는 수준이고요. 아홉 식구가 어떻게 경차를 타겠어요? 유치원은 절반 가격에 다니지만, 실제로는 교육비보다 소풍비, 재료비가 더 많이 들어요. 실상이 그런데, 어느 부모가 푼돈 바라고 아이를 더 낳겠어요."
묵묵히 있던 남편 황씨가 입을 뗐다. "요즘 아이들 혼자 크는 거 보면 안타까워요. 우리 집은 가난하긴 해도 북적거리며 사람 사는 맛이 나요. 옛말에 자기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고 하잖아요. 나중에 아이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평생 서로 힘이 될 형제가 일곱이나 되니 걱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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