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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친구가 무섭다
1960년도에 나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또래보다 키도 크고 체구도 건장해서 ‘사범대학부속중학교’에서 나는 학교대표배구선수로 선발되어 ‘레프트 스파이커’(left spiker)로 나의 배구인생이 시작 되었고 겸하여 학교대표 교기수(校旗手)에도 뽑혔었다. 당시는 군사정권하에서 학생들이 전국체전.도체전.시체전을 비롯한 교육활동 외 각종행사에도 학교단위로 동원되는 일이 많았고 나는 그럴 때마다 내 키보다 크고 무거운 금박문양(金箔紋樣)의 교기(校旗)를 치켜들고 시가행진은 물론 “우로-봐‘ 사열도 하면서 공부햘랴 운동할랴 힘든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깡패클럽의 끄나풀인 또래 ‘수동’이라는 건달학생과 그 일당에게 가끔씩 학교 캠퍼스 안의 ‘아리랑동산’(현 광주교대 도서관)으로 끌려가서 용돈을 갈취 당하는 일이었다. 고향의 부모님이 어렵게 만들어 주신 한 달치 생활비를 빼앗겨야 하는 뼈아픈 수모를 당해야 했으며 수중에 돈이 없을 경우는 무차별 구타를 당할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빼앗겨도 괜찮을(?)만한 적은 액수의 용돈을 소지하고 다녔다.
예나 지금이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피해사실을 학교나 경찰에 알려봤댔자 미온적 조치나 일과성으로 끝나버릴 것이 뻔한 사회적분위기와 4킬로미터 원거리 등하굣길에서 언제 어느 골목에서 이들이 나타나 더 참혹한 보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차라리 약간의 용돈소지는 나를 폭력으로부터 보호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맞아 죽을 셈 치고 맞대응을 했으면 어쨌을까. 맞대응을 해서 설사 내가 힘으로 싸움에서 이겼다 할지라도 피라미드 조직인 학교폭력써클 두목에게 알려지게 되면 가혹한 보복성 폭력이 자행될 것이고 특히 ‘재크 나이프’를 소지하고 돈을 갈취하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두려웠을 뿐 아니라(실제로 칼을 꺼내 배에 대고 쿡쿡 쑤시기도 함)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한 나의 유약한 성격과 나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호신술도 배운 경험이 없었으며 15세 시골소년이 홀홀단신 상광하여 사글셋방 자취를 하는 상황에서 사고무친(四顧無親)나의 뒤를 봐 줄 수 있는 친척이 있거나 내가 폭력써클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학교 3년을 마치고 다행히도 ‘광주고교’에 합격하여 나의 ‘꿈의 고교생활’이 시작 되었다. 우수학생들의 집합체인지라 나의 성적은 반 65명 중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4當5落’(네 시간 자면 합격, 다섯 시간 자면 불합격)을 벽에 붙이고 쏟아지는 잠을 쫒기 위해 잠 안 오는 약을 복용해가며 공부를 했고, 통금해제 싸이렌 소리를 듣고 새벽잠을 깨어 예.복습을 해야만 동료 학생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 마침내 고3때는 성적이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었고 학급반장에도 뽑혔다. 반장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담임교사의 심부름꾼이지만 그 외에도 시험지 채점, 학급비 징수 및 집행, 교실 환경꾸미기, 청소지도.생활지도 감독 대행, 대외행사(소풍.체육활동.클럽활동)기획에다 반(班) 저금 수납 대행 등이 있었다. 어느 점심시간, 우리 반 친구들의 저금 액을 ‘계림동우체국’에 맡기려 교문을 나서다가 돈을 뺏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깡패 학생에게 붙들렸다. 죽으면 죽었지 반 친구들의 저금 액을 거저 내줄 수는 없는 노릇, 갖은 공갈과 협박에도 순순히 돈을 내놓지 않자 가혹한 폭력이 시작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이들의 ‘양발치기’ 구둣발에 나의 인중을 가격 당하여 저만큼 나가 떨어져 피를 흘리며 나뒹굴었다. 저금가방을 꼭 껴안은 채로. 정말 치욕스럽고 분통하고 죽고 싶도록 참담한 심정이었다. 폭력배들은 나의 완강한 거부에 돈 뺏기를 포기 했는지 슬슬 자리를 떴고 나는 반 저금 액을 당일 우체국에 맡길 수 있어서 반장의 임무는 다했으나 아래턱 살갗이 찢어져 몇 바늘 꿰매야 하는 병원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나의 인중에는 그 때 입은 상처로 흉터가 계급장처럼 남아 있다. 나는 이런 사실을 담임선생님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발설을 한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후환이 두려웠을까, 우직한 책임감이었을까, 당시 학교.사회적 분위기 탓이었을까 아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뒤를 봐 줄만한 백그라운드(back ground)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같았으면 그냥 저금가방을 패거리에 던져주고 도망쳐서 선생님께나 파출소에 신고하면 되었을 것을. 나는 그날 당장 전남도청 근처 ‘청룡체육관’에 등록을 했다. 비참하게 구타당하고 피를 보고서야 폭력과 마주할 용기가 발동한 것이다. 1년여 열심히 권투기술을 연마하여 어느 정도 용기와 자신감도 생겼으며 우연 일치였는지는 모르나 그 후로는 괴롭힘을 당한 기억이 없다. 그때 배운 푸트 웍(foot walk)이나 원투.어퍼컽 날리기 등의 권투기술은 50년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나홀로 운동의 준비운동이 되고 있다.
‘용의 해’ 정초 벽두부터 ‘왕따폭력’(집단 따돌림)을 못 견디고 전국 곳곳에서 중학생.여고생 자살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나라 청소년 두 명 중 한명은 왕따에 시달려 자살충동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한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들이 죄의식이 전혀 없이 왕따폭력을 친구간의 장난쯤으로 여긴다는 사실과 초.중.고,남녀 구분 없이 집단따돌림에 구타.금품갈취.노예계약.성폭행.담뱃불고문.사이버폭력.집단구타 사망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고 잔인한 조직폭력배들의 폭력 수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어 이들 ‘비세대’(초5-중2)아이들은 왕따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초-중-고로 연계되는 조폭 뺨치는 폭력조직 ‘일진회’에 가입을 희망하는가 하면 힘센 ‘일진’친구에게 상품권 및 금품상납과 아첨풍토가 교실에서 자행되고 있으니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실은 실로 위험수위에 와 있다. 이러한 무법천지 교실에 어떻게 내 자식 교육을 맘 놓고 맡길 수 있겠는가.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이 모두가 어른들의 무관심속에서 아이들의 세계를 모른 채 입시제도.사교육비 고민에만 매달려 교육을 학교에만 내 맡긴 결과이다. 옛날과 달리 오늘 날의 학교폭력은 집단따돌림으로 양상이 바뀌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폭력집단이 노리는 대상은 주로 힘없고 자신감도 없고 적극성도 없는 어수룩한 학생을 노린다. 일단 피해자는 후환이 두려워 신고를 할 수가 없다. 교사.경찰.부모님과 사회가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현실과 뿌리 깊은 불신풍조, 그 후에 닥칠 무차별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고 홀로 고민하다가 마지막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교육계만이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도움과 고민이 필요하다. “문제아는 없다 다만 문제 가정이 있을 뿐이다”라고 교육학자는 말한다. 먼저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내 자식 ‘밥상머리 교육’을 통하여 ‘해야 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구별하여 철저히 가르치고 부모의 따뜻한 사랑속에서 격려와 칭찬으로 기리고 용기를 북돋아주어 자신감과 적극성을 심어주는 1차적 가정교육이 절실하고, 왕따폭력이 시작되면 즉시 담임교사나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대화분위기 조성과 속내를 털어 내놓으면 문제가 해결되고 보복 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교육과학부는 물론 각급학교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愚)’를 더 이상 범하지 말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폭력 예방교육’에 파격적인 국가.지자체 예산투자가 우선 되어야하고 사법권이 주어지는 ‘학교생활 안전지킴이’제도 도입과 상담교사.심리치료교사의 확보, 건전놀이문화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오늘의 사회적 병리현상이 돼버린 학교 ‘왕따폭력’ 문제를 예방차원으로 접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서는 낮잠 자는 교실풍토, 교사가 학생에게 구타.희롱 당하고 학부모에게 머리채 잡히는 교권풍토에서 생활지도.학습지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나락(奈落)에 떨어진 교권을 바로 세우고 회복시켜야 할 제도적 장치나 법률의 제.개정도 반드시 수반 되어야 하고 교실에서 성적스트레스에 절어있는 아이들을 하루속히 구해낼 방법의 연구와 실천, 가해학생과 그 부모에 관한 처벌도 강화 되어야 한다. ‘미성년자이니까’ 관대하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 부모가 무슨 죄냐’식의 안이한 솜방망이 처벌로는 결국 ‘왕따폭력의 재발’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자식이 범죄 하면 제삼자나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바로 내 책임이고 부모도 함께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도덕적.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처해야 ‘왕따폭력범죄’를 근절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은 가능성이고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다. 학교교육의 목표가 지식인 양성이나 재능교육 직업교육에 있는 게 아니고 ‘조화로운 인격 양성’과 ‘인성 교육’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스모스 문학지에 기고한 글 (동산 남수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