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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殿(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장사꾼들의 床(상)과 椅子(의자)를 엎어 버린 것을 아는가?(마 21:12~13)
◾副題目(부제목): 오늘날 聖殿(성전)이 强盜(강도)의 巢窟(소굴)이 아니라고 抗辯(항변)할 수 있는가?
🔯 大祭司長(대제사장)들은 聖殿(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에게 賃貸(임대)를 한 것을 아는가?
🆘 聖殿(성전)에서 장사를 했던 大祭司長(대제사장)들은 牧者(목자)들의 自畵像(자화상)이라는 것을 아는가?(조용기, 김삼환, 오정현, 김기동, 이단, 사이비 등)
"예수께서 성전(聖殿)에 들어가사, 성전(聖殿) 안에서 ✔매매(賣買)하는 모든 자(者)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者)들의 상(床)과, ✔비둘기 파는 자(者)들의 의자(椅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記錄)된바 내 집은 기도(祈禱)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强盜)의 굴혈(窟穴,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무엇을 줄을 아는가? 마태복음 21장 12절이, 이렇게 밝혀 주고 있다.
"예수께서 성전(聖殿)에 들어가사, 성전(聖殿) 안에서 ✔매매(賣買)하는 모든 자(者)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者)들의 상(床)과, ✔비둘기 파는 자(者)들의 의자(椅子)를 둘러 엎으시고”.
✔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 가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성전에 있던 모든 장사꾼들을 내어 쫓으시고, 그들의 의자와 장사판을, 모조리 둘러 엎어 버리신 것이었다.
✔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갈아 엎어 버려야,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聖殿)과 우상(偶像)이, 어찌 일치(一致)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聖殿)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居)하며 두루 행(行)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百姓)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6).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자 하는 자들과,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성전이 된 자신의 마음을, 먼저 둘러엎어 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둘러 엎는다" 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바로, 완전하게 뒤집어 버린다는 것이다. 갈아 엎어 버린 다는 것이다. 완전히 부셔 버린다는 것이다.
✔ 예루살렘 성전이, 자신의 욕망에 집착하는 장사꾼들로, 가득 차 있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께서, 장사하는 자들을 모두다 내어 쫓으시고, 장사판을 둘러 엎어 버렸을 때에, 비로소 그 성전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었을 때에, 비로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고, 저는 자들이 걷게 되었고, 어린 아이들의 온전한 찬미가 울려 퍼졌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다.
✔ 자기 의에 빠진 마음과, 재물에 대한 욕심과, 자신의 신념과 고집으로 뒤덮여 있는 마음을, 갈아 엎어 버릴 때에만, 우리는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고, 빛이 될 수 있고, 소금이 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온다. 길가에 떨어진 씨이,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내 다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진 씨는,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었다.
여기서 돌밭과, 옥토의 차이란 무엇인가? 옥토는 갈아 엎어진 곳과, 완전히 뒤집어진 곳을 의미한다. 갈아서 뒤집어진 마음에서만, 복음은 열매를 맺는다.
✔ 지금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있는가? 지금 무엇 때문에, 목회를 하는가? 지금 무엇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지금 무엇 때문에, 섬김과 헌신과 구제와 선교와 연보를 드리는가?
혹시라도 복음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는 도구로 삼기 위해서, 이상의 일들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 만약에 그렇다면, 일평생 수없이 많은 재물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기탄잘리"에 나오는 걸인처럼, 한평생 영혼의 걸인과, 마음의 거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 마음이 가난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우리의 마음을 갈아서 엎어 버렸을 때에야, 비로소 그의 마음은 비어 있는, 가난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비어 있는 마음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채워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갈아 엎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평생 진리의 열매를 얻지 못하는, 영혼의 거지와, 믿음의 걸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 오늘 이 시대의, 교회들과 목자들과 성도들의 상태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어떠한가? 세속화된 교회들과, 재물에 집착하는 목자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인들이 아닌가? 오매! 어째야 쓰까?
오늘 이 시대는, 오직 복음 안에서,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자와,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자와, 철저하게 복음의 지배를 받기 원하는, 오직 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 진다. 낙엽이 떨어 져야, 그 이듬 해에 새 잎이 돋아난다. 이는 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잎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속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버릴 것을, 아낌없이 버릴 줄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다음 해에, 더 풍성한 생명으로 채워진다.
✔ 그러나 인간들은 아니 교인들은, 낙엽을 떨어 뜨리는 나무보다, 훨씬 더 못하다. 공수래 공수거이건만, 죽는 순간까지 부자 청년처럼, 하나님과 말씀보다도, 재물을 꽉~붙잡고 있다. 오매! 어째야 쓰까?
아무리 아름다운 대리석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대리석을 그 자체로 내버려 두면, 그 대리석은 단순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리석을 예술가가 다듬으면, 대리석은 위대한 예술작품이 된다.
✔ 대리석을 다듬느냐? 다듬지 않느냐에 따라서, 단순한 돌덩이로 존재하느냐? 아니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작품으로 남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 대리석을 다듬는 다는 것은, 버릴 것을 버리고, 잘라 낼것은 잘라 내고, 깍을 것은 깍아 내는 것이다. 이는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신을 갈아 엎는 것이다.
✔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자신을 다듬고, 부인하는 방법을 배웠다. 다윗은 10여년 동안이나, 사울 왕의 칼을 피해 다니면서, 자기를 다듬고 부인하는 법을 배웠다.
자기를 부인할 줄을 아는 참된 믿음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마음을 복음 앞에서, 비울 줄 아는 사람이, 그 인생이 황금으로 승화할 수 있다. 마음을 갈아 엎어 버리는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새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 자, 만시지탄! 비록 늦었지만, 오늘부터 지금 장장 훗딱 얼능, 우리의 자존심과, 자기 의와, 교만과, 재물에 대한 욕심과, 완고한 고집과, 자기 신념을, 갈아 엎어 버리기를 바란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와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우리의 모든 것을 갈아 엎어 버릴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일의 결국(結局)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敬畏)하고, 그 명령(命令)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本分)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行爲)와, 모든 은밀(隱密)한 일을, 선악간(善惡間)에 심판(審判)하시리라"(전 12:13~14).
🔥 최후의 만찬의 그림에서 컵을 지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태리가 낳은 셰계적인 화가이다. 43세 되었을 때에 밀라노 성당에서, "예수님의 최후 만찬"의 모습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서, "최후의 만찬"을 완성했다. 중앙에 예수님께서, 오른 손에 잔을 들고 계시고, 예수님의 좌우에는, 6명의 제자들이,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작품이 완성되자, 친한 친구를 불러서, 그림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평가를 해 달라고 했다. 그림을 본 친구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최대의 걸작이었기 때문이었다.
✔ 친구는 특별히, 예수의 손에 들려 있는 은컵이 너무나도 섬세해서, 컵에서 눈을 뗄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빈치는 붓을 들어서 컵을 지워버렸다.
✔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시선을 끌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컵을 지워 버리고 말았다.
우리도 무엇을 선택하든지, 그 중심은 항상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선택하는 것이,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 전도로 70여 교회를 세운 최봉석 목자
✔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크게 역사하신다. 일제시대에 최봉석(별명 최권능)이라는 목자가 있었다.
✔ 그는 자나깨나, "예수 천당과 불신 지옥"을 외치고 다녔다.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한 번은 지나가는 일본 순사에게, 큰 소리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자, 말이 놀라는 뛰는 바람에, 순사가 말에서 떨어 졌다.
✔ 화가 난 순사가, 칼을 빼어 들고서, 위협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최 목자는 또다시 “예수 천당과 불신 지옥”을 외쳤다. 순사는 황당해서 말하기를, “다시는 소리지르지 말라” 라고 하면서 가버렸다.
하루는 한 마을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영 통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꾀병을 부렸다.
✔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 들자, 최목자는 말했다. “사실은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에게 드릴 영원한 생명이 있다”하고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아니,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하면서 몽둥이로 때리려고 했다. 그 순간 최 목자는, 주머니에 있는 메달을 불쑥 내밀었다.
✔ 메달은 바로, 전도를 해서 받은 상으로서, 동그란 마패와 같이 생긴 메달이었다. 그는 “암행어사 출두야!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암행어사이다!”라고 외쳤다. 무지했던 사람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서,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는 “사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다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
✔ 최봉석 목자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전도로 함으로 인해서, 무려 70여 개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 고난과 역경이 주는 선물
▪최고급의 향수는, 병든 고래의 몸에서 짠 기름으로 만든다.
▪우황 청심환은, 병든 소에게서 얻는다. 병이 들지 않은 소의 몸에는, 우황이 없기 때문이다.
▪푸른 곰팡이로, 페니실린을 만든다. 버섯의 곰팡이는, 생명을 살리는 귀한 약의 재료가 되었다.
▪영롱한 진주는, 조개 속에 들어간 모래로인한, 아프고 쓰라린 상처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윗과 욥과 바울을 만든 것은, 바로 고난과 상처와 시험과 환난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무릎 앞에, 천하 만민들이 무릎을 꿇고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해병대와 특전사와 UDT가, 일반 군인과 방위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천로역정과 실락원과 카라마조프의 형제와 같은 명저들은, 저자들이 자유가 없는 감옥에서, 옥고를 치를 때에 완성된 것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해산의 고통이 있어야, 비로소 자녀를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최고급의 도자기는, 엄청나게 뜨거운 불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견디어 낼 때에 만들어 진다.
▪bnk가 쉬지 않고 꾸준하게, 기도와 말씀에 전무할 수,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은 것은, 모든 면에서 처절하게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로키 산맥의 험준하고 깊은 계곡에서, 비바람과 눈보라의 고통을 견디면서, 죽지 않고 살아 난 나무가, 공명(共鳴)에 가장 좋은 원료가 되기 때문에,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을 만드는 재로가 된다.
✔ 이처럼 고난과 역경 뒤에는, 위대한 작품들이 나오고, 명품들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복된 자가 되기를 권면한다.
🔥 고슴도치의 고민/ 붙어 있으면 아프고 떨어져 있으면 춥다
✔ 영하의 추운 겨울 날, 고슴도치 한 쌍이, 추위에 견디지 못해서 제안을 했다. 따로 떨어져 있지 말고, 둘이 꼭 붙어 있으면, 따뜻하겠다고 말했다.
✔ 그리하여 고슴도치들은, 서로 몸을 껴안고 있었다. 그러나 몸을 껴안고 있으니, 서로의 가시에 찔려서,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떨어지면 춥고, 가까이 하면 아팠다.
고슴도치들은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당하기 보다는, 차리리 혼자서 추위에 떨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고슴도치의 고민이었다.
✔ 우리네 인간 관계도, 고슴도치와 같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고독하고 외롭다. 그러나 너무나 가까이 있다보면, 상처가 생기고 아픔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 관계의 고민이고 숙제이다. 해결하는 방법은, 가시를 없애면 된다.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가시를 제거해야 한다. 이해와 사랑으로, 가시를 녹여야 한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영어로 under stand이다. 결코 over stand가 아니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아래에 선다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눈 높이를 맞추면 안된다. 오히려 눈 높이를 낮추어서, 상대방을 올려다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 한 걸음 아래로 내려갔을 때에, 당신의 시야는 더욱 넓어지게 된다. 한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이 세상이 얼마나 넓어 보인다. 그 사람의 가시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