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해가 길어져 퇴근 후 저녁밥 먹고도 바깥이 훤했다. 평소는 아파트 뒷산을 오르거나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으로 산책을 나갔더랬다. 이날은 대출해 읽었던 책을 반납해야겠고 새로 나왔을 연속간행물실 잡지도 궁금하고 해서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손에 든 농암 17대 종손 이성원이 쓴 ‘천년의 선비를 찾아서’가 내 마음을 맑게 해주었다. 고향 안동에 터 잡고 살며 유가 전통과 선현의 맥을 이어가는 이야기였다.
시립도서관 뜰에 들어서니 실내조명이 어두웠다. 고유가시대 공공기관부터 에너지를 아끼려는 알뜰한 모습으로 여겼다. 그런데 현관 입구 올라서니 서가를 뜯어낸 폐자재가 쌓여 있고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열흘 전 내가 시립도서관 왔을 때는 안내가 없었는데 그 사이 이틀간 휴관 공고가 붙었다. 4층 일반열람실이 비좁아 맞은 편 연속간행물실과 바꾸어 더 많은 시민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는 배려였다.
사실 여느 공공기관보다 창원시 도서관정책은 아주 높은 평점을 받을만하다. 일반 도서관이나 박물관은 일요일 개관하고 월요일 휴관이 상례화 되어 있다. 그런데 창원 시립도서관은 365일 중 단 3일만이 휴관일로 못 박아 두었다. 휴관일은 신정과 설날, 그리고 추석날뿐이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휴관하지 않았는데 내부시설을 고쳐야 할 경우 어쩔 수 없는가 보았다. 작업인부들은 이틀간 밤샘공사를 한다고 했다.
나는 빌려본 책을 도서관 1층 로비 비치된 반납대장에 기록하고 대출도서 수거함에 넣고 되돌아 나왔다. 집을 나설 때는 시립도서관에 좀 머물다 다시 책을 빌려 오려던 마음은 접어야했다. 야간에도 개방하는 공공도서관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시립도서관은 밤 10시까지 대출도서실, 연속간행물실, 일반열람실을 개방해 관심 있는 시민들이 즐겨 이용한다. 좀 더 나은 시설을 위해서라면 이틀쯤은 참을 만하지 싶다.
나는 빈손으로 시립도서관 나와 호수 동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간간이 가족이나 연인 몇몇이 눈에 띄었지만 날이 어둑하게 저무는 때라 조용했다. 나는 신발을 벗어 두고 솔숲 나무 평상에 올라 결가부좌하고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무념무상 한 삼십여 분 시간을 보내자 어둠이 더 짙어오고 호수 근처 상가빌딩 네온불이 밝아왔다. 솔숲 아래 호숫가 산책로는 저녁밥 먹고 나왔을 시민들이 많이 나와 오가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더 이슥해지기 전에 평상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호수 주변을 한 바퀴 걷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산책로에 내려오니 중년 사내가 호수로 뻥튀기를 던지니 오리와 거위가 다가와 받아먹었다. 아장아장 뒤따르던 꼬마가 쳐다보고 신기해했다. 음악분수 관람하려고 스탠드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식이 모시고 나온 휠체어 탄 노인과 부모가 데리고 나온 보행기 탄 아이가 대조를 이루었다.
나는 조용한 침잠의 세계 속에 정적이 깃든 호수라면 더 머물렀을 것이다. 음악분수 공연시간 계획에 따르면 잠시 후 호수에서 형형색색 물줄기가 솟구치면서 촐랑거릴 것이다. 언젠가 겨울밤에 이곳을 지나다 한 번 본 적 있다. 그때 분수에서 펼쳤던 영상이 아닐지라도 나는 음악분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분내가 나지 않을 뿐이지 너무 가식적이고 인공적인 현대문명을 보는 듯해 음악이 나오기 전 서둘러 떠났다.
현관에 들어서니 거실 등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집사람은 전구를 갈아 끼웠으면 하는 눈치였다. 나는 이런 상황이면 바짝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한다. 워낙 기계조작이 서툰지라 손톱깎이로 발톱까지 깎을 줄 알고 컴퓨터는 워드자판 정도 더듬거린다. 식탁 의자를 등 아래 옮겨 놓고 뚜껑을 여는 데도 한참 끙끙거렸다. 뚜껑을 열고 보니 길쭉한 전구 두 개 가운데 한 개가 새카맣게 타 있었다.
그 전구를 뽑으려고 천장을 쳐다보고 땀을 뻘뻘 흘렸다. 아무리 애써도 빠지질 않아 포기했다. 그대로 두고 불을 켜면 전구가 계속 깜빡거릴 일이 걱정이었다. 한 꾀가 떠오르길 전구 곁에 붙은 작은 초크전구를 뽑아버렸다. 그러고 나서 전원을 넣어보니 전구가 깜빡이질 않았다. 그런데 다시 뚜껑을 닫으려니 도무지 닫히질 않았다. 그냥 이대로 남은 한 개 전구가 목숨 다할 때까지 버티련다. 뚜껑은 열어 둔 채로.
첫댓글 중증이십니다치유가필요한듯합니다재밌게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