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으로도 잘 알려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베트남어: C?ng Hoa Xa H?i Ch? Ngh?a Vi?t Nam 꽁호아 사호이 쯔응이아 비엣남, 共和社會主義越南, 문화어: ??남 사회주의공화국)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에 면해 있다. 동남아시아 본토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수도는 하노이이며, 최대 도시는 호찌민이다. 이 나라의 명칭은 베트남어로 "Vi?t Nam (越南)"인데 이것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하였던 옛 베트남 왕조인 "Nam Vi?t (南越)"의 명칭을 거꾸로 쓴 것이다. 또한 같은 혈족인 중국계의 위에족도 고대에 중국 남부에 가까이 살던 민족의 이름이다.
[편집] 역사
[편집] 건국 신화유명한 베트남 신화에서는 많은 베트남 부족들이 락롱꾸언(베트남어: L?c Long Quan, 용(龍)의 우두머리)과 어우꺼(베트남어: Au C?)가 결혼하고 그 자궁 외에서 태어난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베트남 역사학자들은 동남아시아 전역을 지배했던 동손 문명을 베트남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208년 찌에우 다(베트남어: Tri?u đa)라는 진나라 장수가 남비엣(베트남어: Nam Vi?t)이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이 나라는 중국 남부와 홍 강 삼각주 지역을 통치하였다. 남비엣의 기원을 말해주는 역사적 유물들이 논쟁 거리로서 남아 있는데, 이는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것이 중국의 통치였다고 보는 반면, 일부는 이것이 독립적인 시기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편집] 다이비엣 왕조기원전 111년부터 10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시기동안 중국 왕조를 계승한 통치자들이 지배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산발적인 독립 운동이 시도되기는 하였으나 중국의 무력으로 곧 진압되었다. 939년 베트남인들은 박당 강 부근에서 중국의 무력을 물리치고 독립을 얻어냈다. 또한 1세기 후에는 완전한 자치권도 얻어냈다. 짠 왕조 통치 동안에, 원나라에 의한 몽골인의 침입을 세 번 물리쳤다. 베트남에서의 봉건 제도는 15세기 레 왕조 시기에 절정에 달하였는데, 특히 레탄똥 황제의 통치 때 그러하였다. 11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베트남인은 남띠엔(베트남어: nam ti?n, "남으로의 확장") 이라 부르는 과정을 통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베트남인들은 참파 왕국과 크메르 제국을 정복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프랑스의 식민화에 의하여 베트남의 독립은 종료된다.
그러나 베트남은 전기 공급만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태국에서 수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돈이 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편집] 지리[편집] 행정 구역
베트남의 행정 구역은 59개 성(t?nh 팅, 省)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인 하노이를 포함하여 껀터, 다낭, 하이퐁, 호찌민은 성과 같은 급의 직할시이다. [편집] 기후[편집] 정치
이 나라는 동남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로서 지배하는 정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공산당처럼 베트남공산당만 정당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나라는 미국과의 전투에서 유일하게 승리했고, 적화통일을 이룬 나라이다.
[편집] 언어공용어는 베트남어이며 라틴 문자로 씌여진다. 쿠억 응구(qu?c ng?, 國語)로 불리는 이 로마자화는 16세기부터 선교사들의 현지어를 표기하려는 작업에 기반해 있었다. 예수회의 알렉산드레 데 로데스(Alexandre de Rhodes)는 포르투갈어 철자법을 바탕으로 최초의 안남어 사전을 만들어냈다. 베트남어는 민난어처럼 극동의 언어들 중에서 중국어와 유사한 문자 체계에서 로마자로 변경한 흔치 않은 언어중 하나이다. 이 로마자화의 사용은 현지인들의 교육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1945년 이후 베트남이 독립한 뒤 공식 표기법이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15세기 말에 한자와 비슷한 문자인 쯔놈 문자를 개발해서 사용했지만 20세기 이후에는 지식 높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다. 베트남은 55종에 달하는 언어의 다양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다시 6-7개 정도의 언어 집단으로 나뉜다. 외국어로는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가 쓰이는데, 베트남은 인도차이나에서는 유일하게 프랑스어보다는 영어가 많이 쓰인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미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편집] 종교베트남의 종교로는 불교, 유교, 가톨릭, 개신교가 있다. 베트남 개신교회는 크게 오순절교회계열과 복음주의 계열로 나뉘는데, 오순절교회는 필리핀에서의 유입으로 복음주의는 한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유입되었다. 베트남 가톨릭교회는 19세기 프랑스의 선교활동으로 유입되었는데, 초기에는 순교자들이 발생할 정도로 혹독한 베트남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베트남은 과거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었으며, 예로부터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믿는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불교나 유교만은 탄압하지 못했다. 현재는 종교활동은 허용되지만,개신교의 경우 설교내용을 나라에 보고해야 하는, 제한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 왜냐면 사회주의 국가의 종교정책은 종교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외 불교, 개신교, 로마 가톨릭등이 혼합된 까오다이라는 종교도 존재한다. [편집] 경제1975년에 통일된 베트남은 오랜 전쟁 탓에 경제기반이 무너져 베트남 국민들의 가난한 생활이 계속 되었다. 1980년에는 태풍으로 역사상 최대의 인명피해가 발생해 베트남 경제가 타격받았다. 이후 80년대 부터 베트남 정부는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해결해주기 위하여 계획경제 작업을 중지하고, 새로운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현재는 옛날의 가난에서 크게 벗어났으며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고 있지만 빠른 경제성장의 후유증도 같이 겪고 있다.
베트남의 생산품은 1차 산업으로 통해 얻어진 생산물이다. 특히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을 이어 3대 쌀 생산국이다. 그 외에 커피와 차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과 서방 세계와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석유개발을 통해 산유국이 되었다. [편집] 산업[편집] 유통업베트남 유통업태는 특히 도시지역에서 과거 몇 년동안 전통적인 재래시장으로부터 현대화된 수퍼마켓과 쇼핑센터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수입상품의 취급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1999년 2개의 대형수퍼마켓에서 2004년에는 전국적으로 85개가 넘는 현대화된 수퍼마켓이 운영이다. [편집] 교통[편집] 항공
[편집] 해운3개의 주요항구로 사이공항, 하이퐁항, 다낭항가 있다.
[편집] 군대이 나라는 징병제를 실시한다. [편집] 문화이 나라는 예로부터 중국의 식민통치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한 대승 불교 국가이며 유교적인 영향도 들어 있다. 실제로 프랑스 식민통치자들은 라틴문자로 된 베트남 문자인 쿠억 응구(qu?c ng?)를 보급하여, 베트남 지식인들의 유교정신을 말살시키려고 하였다. 베트남의 음식은 매우 적은 기름과 많은 야채를 쓰기 때문에 맛이 풍부하고 건강에도 좋다. 주 요리의 재료는 대개 쌀과 간장, 생선 소스등이다. 맛은 대체로 달거나 맵거나 시거나 감칠맛이 나거나 수 많은 민트향와 바질향이 난다. [편집] 대외 관계[편집] 한베 관계최초의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는 13세기초 고려 고종때라고 전해진다. 베트남에 트란왕조가 들어서자 멸망한 리왕조의 왕자 이용상이 고려로 피난와 귀화하여 화산이씨로 개명하고 살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에 의해 1964년 부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파병하였다. 의무중대 파견을 시작으로 1965년 부터는 맹호,청룡부대 그리고 1966년에는 백마부대의 파견으로 연인원 30만명 최대 5만명이 파병되었다. 이중 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참전 군인중 이후 2만여명이 고엽제등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용사가 많다. 이 파병기간 도중 미군의 밀라이 학살사건과 비슷한 파월 한국군에 의한 빈호아사 커우 마을 사건(1966년 12월 6일, 131명 사망) 등의 민간인 학살들이 있었다고 한다. 통일 이후로는 베트남은 북한과 단독 수교하였었다(1970년). 대한민국과의 공식 수교 재개는 1992년 12월 22일에 이루어졌다. 현재 상주 대사관이 설치 되어있으며 호치민시에는 총영사관이 설치되어있다. 1993년 포 반 키엣 수상이 방한 하였으며 1996년에는 김영상 대통령,1998년 김대중 대통령,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현재의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불리고 있으며 특히 유전개발과 CDMA 이동통신 분야에서의 교류협력등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편집] 사과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였을때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유감 발언을 하였으며 2001년 8월에 트란 득 루엉 베트남 국가주석의 방한 방문에서는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공식 사과 하였다.[1] 이에 대한 한국의 베트남참전전우회에서는 "망언"이라고 반발하였으며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경솔한 말이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한국의 인권단체에서는 일본처럼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에 대한 규명과 범국민적 사과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하였다. [편집] 바깥 고리[편집] 베트남
[편집]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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