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정대한가? 대의명분이 있는가?
[(사)자유시민토론회 회장 손은봉 교수]
공명정대(公明正大)한가?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는가?
교수신문은 올해(2016년)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군주민수(君舟民水)는 중국의 고전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사자성어로써 백성은 물, 임금은 배(船)로 빗대어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船)를 뒤집힐 수도 있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보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의 권력이라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언제라도 국민에 의해 그 권좌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로서 현 우리의 시국은 이러한 군주민수(君舟民水)의 그 깊은 파장이 급기야 대통령탄핵이라는 엄청난 무게의 책임추궁으로 나타난 것이다.
불과 십수년 전 미국에서 이런 해리스 여론조사가 있었다. "안전하지 못한 자동차를 만드는 메이커와 남의 물건을 훔친 도둑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쁘냐" 는 설문이었다. 이에 대해 도둑이 더 나쁘다는 쪽의 이론은 완전무결한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다. 또 수많은 부품을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조립하는 자동차에 다소 하자가 있더라도 하는 수 없다는 주장이었고 한편 결함 자동차가 더 나쁘다는 주장을 편측의 이유는 이렇다. "도둑의 피해자는 한 두 사람뿐이지만 결함차의 피해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로 결함차 메이커가 더 나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결함차 메이커가 더 나쁘다는 사람은 무려 68%나 되고 도둑이 더 나쁘다는 사람은 불과 22%에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그 68%는 압도적으로 젊은 세대에 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 테스트는 무고한 피고를 유죄로 몰아넣은 검사와 권총강도 중 어느 쪽이 더 나쁘냐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대한 해답자 중 78%가 검사를 더 나쁘다고 보았다. 권총강도가 더 나쁘다는 사람은 불과 10%밖에 되지 않았다. 이와 곁들어서 비록 법률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것이라면 무시해도 좋다는 해답이 29%나 나왔는데 여기에는 특히 30세 이하의 해답자 중에서는 40%가 넘었다. 비록 미국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된 "악법도 법이다" 라고 독배를 든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오버랩되는 연유는 무엇 때문인가... 기성세대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나 나쁜 것은 나쁜 것이며 어떠한 명분으로도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이를 분석한 사회학자들은 이를 두고 도덕성이 저하되어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 크게 전환되어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 우리는 다방면에서 기존의 가치체계 기존의 권위는 도전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심각하고도 중대한 또 하나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한 시대 한사회의 정치적인 권위(Authority)란 두 가지 중요한 요소 즉, 법적인 권력과 정치적인 위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만약에 이 두 가지가 모두 없는 경우 그것은 곧 무정부적인 혼란을 의미하지만 둘 중 한 가지만 결여되어도 정치적 권위는 공동화(空洞化) 에어포킷 현상을 일으켜 정치력 급락의 위중한 사태를 빚게 된다. 2016년 12월 9일 오후7시 3분! 은 박근혜대통령의 청와대시계가 멈춰진 시각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지도자상 또한 영도하는(lead) 시대로부터 관리하는 매니저(Manage)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즉 한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소위 나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이다.
그 어떤 중대 사안(事案)이라도 그 사안에 대한 대안(代案)이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본안(本案)이란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상에 있어서도 그 어떤 카리스마도 국민을 도취시키는 그런 시대도 지나갔다. 바꾸어 말하면 영웅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정치나 사회가 더욱 복잡 다기화(多岐化)해짐에 따라 이제 권위주의나 획일주의만 가지고는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지금 세계는 영웅적인 영도자나 카리스마적인 지배자 보다는 조정(調停)과 조화의 능력을 가진 소통형 관리자적 리더를 더 요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는 허위를 끌어내는 비판의 역사위에서 열려왔고 발전해왔다.
오스카와일드는 불만과 비판은 인간과 국가발전을 기약하는 첫걸음이라고 하였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은 지도자를 우리는 원하고 있다. 특히 올해 대선(大選)을 앞두고 갖가지 명분을 앞세워 나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잠용(潛龍)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에 상응하는 전제적 권위가 따라야 한다. 즉 지도철학의 두 가지 본분(本分)이 그것이다. 하나는 공명정대(公明正大)한가? 또 하나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는가? 이다. 지도자는 마땅히 이러한 대의와 명분을 확고히 하여 혹 이에 소흘함이 없는지? 끓임 없이 자신에게 자문하는 자세로 국정에 임할 때 그토록 우리국민들이 바라고 소망한 "성공한 대통령" 으로 역사에 기록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