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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일보 독해법…기사 행간에서 괴벨스 찾기
송요훈 /민들레 신문
입력 2025.03.04 11:10
수정 2025.03.04 13:35
우리의 언어를 오염시키는 대중 선동
조선일보는 대중심리전에 강하다. 그 방면으로 치자면 가히 명실상부한 ‘1등 신문’이 맞다. 가방끈이 길어 꽤나 먹물이 들고 머리 좋기로 하자면 남에게 지는 걸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는 잘난 인간들조차 조선일보를 보면서 무릎을 친다. 조선일보의 논조가 자기 생각과 똑같다고. 그런데 그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조선일보 논조가 똑똑한 자기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조선일보에 세뇌되어 있어서 조선일보의 논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한 번 속이는 건 힘들지만 두 번, 세 번 속으면 그다음부터는 쉽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남긴 말이란다. 거짓에 세뇌되면 확증편향이 작동한다. 조선일보 기사가 틀렸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당신이 속고 있는 거라고 아무리 알려줘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를 낸다. 때로는 잘못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걸 인정하면 자존심이 상하므로. 머리만 좋은 사람일수록 자기의 자존심을 사수하기 위해 무의식의 확증편향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말이 안 통한다.
조선일보의 시국 사건 활용법
서울 서부지법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구속영장을 발부한 1월 19일 새벽, 폭도로 돌변한 윤석열 극렬 지지자들은 법원에 난입하여 기물을 깨고 부수는 난동을 부렸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겠다고 법원 내부를 돌아다니며 난장판을 만들었고, 미리 준비해온 라이터 기름으로 방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법원이 불탔을 수도 있었고, 판사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었다. 누가 봐도 그건 폭동이었고, 대다수 언론은 법원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린 윤석열 극렬 지지자들을 폭도라고 불렀다. 윤석열의 난데없는 12·3 계엄에 이어 국민은 또다시 충격과 불안에 빠졌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서울 서부지법 난입 폭동은 결코 우발적이고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부화뇌동의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윤석열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을 습격하라는 선동이 있었고, 미리 준비한 라이터 기름을 창문 안쪽에 뿌리고 불을 붙인 종이를 안으로 던지는 방화 시도가 있었다. 유례없는 법원 난입 폭동, 무정부 상태... 윤석열 치하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언론조차 폭도들에게 법이 짓밟히고 법치가 무너졌다고 긴 탄식을 토해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달랐다. 서부지법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린 58명이 무더기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폭도들의 법원 난입 폭동을 ‘시국 사건’으로 분류하였다. 전국법관회의는 서부지법 난입 폭동에 대해 “사법부의 기능을 침해하고 헌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로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했고, 조선일보의 기사에 등장하는 헌법학자들조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해 무정부 상태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 중범죄”이며 “헌법기관을 폭력으로 파괴하는 행위에 사회적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했지만, 조선일보는 그 기사에 시국 사건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시국 사건이라 하면 독재정권이 떠오르고 민주화 운동이 연상된다. 조선일보는 서부지법 난입 폭동을 왜 ‘시국 사건’에 끼워 넣었을까? 뻔하다.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오는 이들에게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1월 19일의 서부법원 난입 폭동이 누군가의 선동에 부화뇌동한 윤석열 극렬 지지자들이 저지른 ‘무정부 상태의 폭동’으로 규정되는 순간 국민의 마음에서 윤석열 탄핵은 불가역적으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법원 난입 폭동을 ‘시국 사건’으로 분류한 거다. 거기에서 용기를 얻었는지 아스팔트 극우 목사들은 한술 더 떠 ‘의거’라고 불렀다.
조선일보의 서울대 활용법
전문가의 인터뷰가 필요한 기사가 있다. 내가 쓴 기사에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그럴 때의 인터뷰는 가능하면 이름이 알려진 사람, 권위가 있는 사람이면 좋다. 하버드 출신이면 대환영이고, 노벨상 받은 학자의 인터뷰가 들어가면 내 기사는 그 사람의 권위로 100% 신뢰를 보장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최고학부라는 서울대의 권위도 그렇게 사용된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발생하고 한 달이 지난 2월 21일, 조선일보에는 ‘서울대 출신 여의도 증권사 직원, 서부지법 난입으로 구속’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여의도에서 잘나가던 증권사 브로커가 무단결근 후 강제 퇴사 처리됐는데, 사유는 서부지법 폭동 참가자로 구속됐기 때문’이라는 글이 SNS에 퍼졌고 확인해보니 사실이더라는 기사다. ‘단독’ 타이틀까지 붙인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그 증권사 직원을 “여의도에서 꽤 잘나가던 증권사 직원으로 채권 중개 관련 업무를 맡아 업계에서 유명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 이후 SNS에는 법원으로 쳐들어가자는 선동에 현혹되어 법원 난입에 휩쓸렸다가 인생을 망치게 된 청년들의 사례가 간간이 보이긴 했다. 군중심리에 휩쓸린 순간의 오판을 후회하며 구제 방법을 알려달라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30대라는 그 증권사 직원도 폭동 사태 직후에는 무단결근을 했고, 구속된 이후에는 ‘무릎 수술로 인해 업무 및 외부 활동이 불가능하고, 휴대폰을 잃어버려 연락이 안 됐다’고 했다는 거짓 변명으로 추측건대 직장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쓴 것 같다. 그 증권사 직원은 어떻게든 해고는 피하려고 한 것 같은데, 조선일보는 동종업계에서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신상에 관한 정보를 보도했다. 당사자가 원한 게 아니라면 2차 가해다. 조선일보는 왜 그런 보도를 했을까. 법원에 난입한 폭도들이 모두 무지렁이는 아니고, 서울대 나오고 증권가에서 잘나가는 엘리트도 있다는 걸 윤석열 지지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그랬을 것이다. 서부지법 난입 폭동은 서울대 나온 증권가 엘리트도 참여한 ‘시국 사건’이라며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의 자존감을 살려 주기 위해서,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오는 많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옥중 메시지를 낼 때마다 청년들을 거론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조선일보의 학벌의식 사용법
2월 14일자 조선일보에는 서울대학교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서울대 학생들이 교내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열기로 했다는 예고 기사가 게재됐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그 집회는 기독교 계열 보수단체인 ‘트루스포럼’이 주최자이고, 그 단체의 대표인 김은구 씨는 지난달 11일 여의도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의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윤석열 지지 발언도 한 인물이다. 서울대 학생들 중에는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의 폭주를 견디다 못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 믿는 학생도 있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서울대 총학생회는 12·3 계엄 사태 발생하고 사흘째가 되던 작년 12월 6일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학생총회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요구의 건’을 투표에 부쳤는데, 총 투표자 2556명에 찬성은 2516표 반대는 고작 4표였고 기권이 36표였다. 저 살자고 군대를 동원하여 친위 쿠데타를 저지른 대통령을 두둔한다는 게 지성의 전당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창피한 일이라 하더라도,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학생이 극히 소수라 할지라도, 교내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열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므로. 서울대 학생들의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 날, 궁금하여 기사도 검색해보고 보도된 영상도 살펴보니 학생보다 전광훈 집회에서나 볼 법한 아저씨 아줌마들이 더 많아 보였다. 서울대는 다수의 외부인이 들어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발표했다. 서울대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는 윤석열 탄핵이 부당하다는 걸 알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서울대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대중심리전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거다. 서울대생들도 윤석열 탄핵에 반대한다더라, 서울대생들이 그럴 정도라면 윤석열 탄핵에 문제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 서울대에서의 탄핵 반대 집회를 기획한 쪽이나 그 집회를 보도하는 쪽이나 노리는 건 하나다. 서울대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거다. 검언 합작의 ‘조국 사냥’을 할 때도 그랬다.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 장관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었다, 서울대 동문 커뮤니티의 설문 조사에선 조국 장관이 부끄러운 동문으로 꼽혔다. 배후와 동기가 의심스러운 그런 집회와 설문 조사를 ‘친윤’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그건 보도가 아니라 서울대의 권위를 이용하는 선전 선동의 대중 심리전이다. 흥미로운 건, 서울대에서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연고대로 이어지고, SKY 대학들에 이어 서열화된 대학 순위에 따르듯 차례로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거다. 한국에선 학벌 의식이 강자동일시의 심리를 이용하는 대중 선동의 효과적인 도구로도 쓰인다.
조선일보의 청년 사용법
서울대에서의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시작으로 몇몇 극우 시위꾼들이 대학가를 돌며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말이 집회이지 욕설에 악다구니 고성에 위협적인 행동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전부다. 이화여대에서는 여성 비하의 막말을 하고 학생들의 탄핵 촉구 집회에 몰려가 집회를 방해하고 여학생의 멱살을 잡는 행패를 부렸다. 그들은 왜 대학가를 돌며 행패를 부리는 걸까. 애초에 그들이 노린 건 대학에서도 탄핵 반대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는 선전 효과였을 것이다. 해당 대학에서 학생 몇을 포섭하여 윤석열 탄핵 반대 겸 야당 규탄 집회를 열게 하고 극우성향 유튜버와 윤석열 지지자들을 보내 떠들썩하게 집회를 하면 그들에게 협조적인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00대학에서도 탄핵 반대 집회 열렸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탄핵 반대 여론몰이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탄핵 반대 집회에는 노인들만 나오는 게 아니고 청년들도 많다는 선전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랬는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탄핵 촉구 집회를 열어 탄핵 반대 집회에 김을 빼기도 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도 하니 화가 났을 것이다. 탄핵 찬성 집회를 하는 학생들을 향해 욕설을 하고 악을 써대며 고성을 질러대고 위협적으로 행패를 부리는 건 학생들의 싸늘한 시선이 주는 열등감을 과격한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대학가의 탄핵 찬반 집회를 50대 50의 기계적 균형으로 보도하거나 집회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며 양쪽을 싸잡아 동등하게 비판한다. 마치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학생들이 절반으로 나뉘어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히틀러의 나치가 독일 사회를 집어삼킨 무기는 공포였다. 나치 돌격대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무력시위를 하고 반대파들을 습격하고 대낮에 거리에서 테러가 벌어지고 관공서에 불을 지르는 난동을 부렸다. 나치 돌격대의 난동에 경찰은 방관했고 나치에 협력하는 언론은 사실을 왜곡하여 나치 돌격대의 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보도를 하였다. 히틀러 시절의 나치 돌격대가 한국의 대학가에 출몰한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2025년이고, 다행인 건 나치 돌격대도 괴벨스의 선동도 한국의 대학가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조선일보의 ‘세 과시’ 집회 사용법
부산, 대구에 이어 광주에서도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 손현보 씨가 주도하는 ‘세이브 코리아’라는 단체가 주최한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군중을 동원한 세 과시를 통해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도 많다는 걸 보여주려는 여론몰이용 기획 집회다. 그 집회를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에서 눈에 뜨인 건, 기사에 등장하는 참가자들의 인터뷰다. 전국에서 군중을 동원한 행사인데 기사에 등장하는 인터뷰는 모두 전라도 사람들이고,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전라도에선 윤석열 비판이 금기시되고 윤석열은 수난받는 피해자다. 호남은 ‘탄핵 반대’ 목소리를 내기 굉장히 어려운 지역이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나왔다, 호남에서도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호남에도 상식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계엄 선포 때는 놀랐지만 그 이후 민주당이 해온 행태를 깨닫게 됐다,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 고향 광주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어느 드라마 작가가 배역을 정해주고 기획 의도에 맞도록 인터뷰 대사를 써준 것 같다. 이틀 뒤에 실린 조선일보 강경희 기자의 칼럼에는 그날의 집회에서 호남 출신의 보수 논객이 연단에 올라 ‘호남도 더 늦기 전에 변해야 한다’면서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기적이고, 이런 기적을 만든 원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한미일 협력인데 호남의 선택은 늘 반대’라고 했단다. 내가 아는 사실과 영 반대다. 이쯤 되면 언론에 실린 칼럼이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는 호남 비하이고 특정 정파의 기관지에 실린 선동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누가 우리의 언어를 오염시키는가
지난달 25일에 열린 헌재의 윤석열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에서 국회 측 대리인 장순욱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었다. “말은 언어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는 수단이자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윤석열은 불공정으로 공정을 대체하였다. 몰상식으로 상식을 조롱하였다. 법을 무시함으로 법치를 무너뜨렸다. 한밤중의 난동으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국민을 충격과 불안에 빠뜨리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능청을 떨었다. 평화로움 계엄이었다고 국민을 희롱했고, 내란의 진상을 규명하는 걸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를 쫓는 거라고 비아냥댔다. 말을 오염시킨 건 윤석열 혼자 한 일이 아니다. 윤석열이 오염시킨 말을 그대로 받아 옮긴 언론도 언어 오염의 공범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야당의 줄탄핵, 입법 폭주, 예산 폭거가 12·3 비상계엄의 원인이라고 우긴다.
그중의 하나, 줄탄핵에 대해 얘기해 보자. 무려 159명의 젊은 생명이 이태원 골목에서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 정도의 참사라면 직접적인 책임이 없더라도 관련 부처의 장관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관행이다. 때로 대통령은 해당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문책성 경질로 민심을 다독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에선 그런 게 없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대통령도 책임을 묻지 않으니 국회가 대신 책임을 물은 거다. 그게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의 본질이다. 그것이 왜 비상계엄의 사유가 된다는 말인가. 탄핵 소추로 이상민 장관의 직무가 정지됐다고 국정의 어디가 마비됐다는 건가. 불이 나도 소방차가 출동하지 않았는가. 치안센터가 문을 닫기라도 했는가. 공무원 월급이 안 나오기라도 했는가.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탄핵 소추됐다고 TV가 먹통이 되기라도 했는가. 조선일보를 펼칠 때는 심호흡부터 해야 한다. 속지 않기 위해서. 눈을 부릅떠야 한다. 행간에 숨어 있는 괴벨스를 찾기 위해서. 그것이 나의 조선일보 독해법이다. 내 눈에 비친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보도가 아닌 국민을 상대로 대중심리전을 하는 어느 정파의 심리전 사령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 지면에서 선전 선동의 귀재라는 괴벨스 찾기, 그것이 나의 조선일보 독해법이다. 사실을 왜곡하여 상식적 판단을 방해하고, 혐오 프레임을 씌워 분노와 증오의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조작된 여론조사를 확대 재생산하여 부화뇌동을 종용하고... 괴벨스식 선전 선동으로 민심을 조종하며 국민을 상대로 대중심리전을 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