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의 역사를 바라보는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인식에 대하여
“모두가 자유롭게 될 때 비로소 나도 자유로울 수 있다.”
- 해방신학자 제임스 콘
남부연합 기념비를 왜 철거해야 하는가
작년 8월에 미국 버지니아 주 샬럿츠빌 시에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가 집결했다. 그들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사령관이던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폭동을 일으켰다. ‘대안우파’(Alt-Right)로 불리는 백인 청년들은 나치문양기와 횃불을 들고 조직적인 시위대를 이루어 독일 나치정권 당시의 구호 “피와 땅!”을 외치며 동상 철거를 반대했고, 이 모습이 생방송으로 보도되었다. 대안우파의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혐오 표현에 맞서기 위해 시민들이 샬럿츠빌 시위 현장에 모여 대안우파 집회를 반대하는 맞불 시위를 벌여 결국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샬럿츠빌 폭동은 인종차별의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과거 250년간 흑인들의 노동력을 강탈한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경제를 발전시킨 미국 역사를 감안할 때, 이는 결코 이례적인 사태도, 모순적인 상황도 아니다.
1619년 8월, 아메리카 대륙의 영국령 식민지 버지니아 주에 흑인 노예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약 250년 동안 백인 노예소유주들은 목화밭, 사탕수수농장, 담배농장에 흑인 노예를 투입해 독립 이후 미국 백인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닦고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백인의 자유와 권리는 민주적 헌법에 의해 보장하며 백인 남성은 모두 민주 시민의 지위로 격상시켰지만, 흑인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사형에 처하거나, 흑인 노예 소유의 말이나 가축은 교회가 압수하여 교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만들어 흑인을 불가촉천민 신분에 가까운 사회 최하층 계급으로 떨어뜨렸다.
로버트 리는 남북전쟁 시절 노예 소유를 옹호하는 남부연합을 위해 싸운 사령관이었고, 버지니아 주 최대 노예 소유주 가문의 딸과 결혼하여 재산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비록 패전했지만 이후 100여 년 간 버지니아 주를 비롯한 많은 주에서 그를 남부연합의 영웅이자 상징으로 추앙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리 장군 사망 이후 그를 기념하기 위해 동전과 우표에 그의 사진을 새기는 사업과 저택 복원 사업을 펼쳤고, 여러 주와 시에서 리 장군의 동상을 건립하면서 남부연합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힘썼다. 미국 남부를 가보면 여전히 곳곳에 인종차별의 상징물인 남부연합 기념비와 남부연합군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쟁 이후 여러 주에서는 기념비를 철거하지 못하도록 복잡한 법을 만들거나 아예 철거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공공장소에 있는 남부연합의 깃발과 기념비와 동상이 노예제라는 부끄러운 역사의 상징물임에도, 여전히 미국의 많은 주에서 반성의 대상이 아닌 과거에 대한 향수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남부연합 기념비를 철폐하자는 움직임이 주류 언론에 등장한 것도 불과 3년 전 흑인 교회에서 일어난 총기 사태 이후의 일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의 흑인 교회에 백인우월주의자 청년이 침입, 총기를 난사하여 9명의 성도가 숨지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이 교회는 19세기에 해방노예 출신이 세운 교회이자, 남부 흑인들에게는 일종의 성역이며 노예 해방의 상징물이다. 남부의 대표적인 흑인 교회에서 발생한 찰스턴 총기 사태가 계기가 되어, 인종차별적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몇몇 주와 시에서는 남부연합 상징물을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극우단체인 ‘대안우파’는 샬럿츠빌 시립공원에 있는 리 장군 동상 철거 결정에 대해 법정소송을 걸었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철거가 지연되었고, 이를 틈 타 결국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반대하기 위해 우파 결집(Unite the Right)을 외치는 백인 청년들이 샬럿츠빌에 모여들어 폭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 교회는 노예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샬럿츠빌 폭동은 미국 사회가 역사를 반성하는 과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교회도 인종차별적인 역사를 반성해야 하는 필요를 느끼면서, 복음주의 계열의 가장 보수적 교단으로 불리는 남침례교도 2017년 총회에서 인종차별을 죄로 규정하고, ‘대안우파’를 비난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죄로 규정하고 대안우파를 규탄하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수많은 과제의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 사회는 앞으로 누구의 역사를 더욱 연구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역사를 써나가야 하는지, 현 시대에 맞게 어떻게 역사 인식을 재형성해야 하는지를 묻고 답해야 한다.
인종차별의 역사를 반성하기 위해 미국 교회 지도자들도 역사 인식을 재형성할 필요가 있다. 샬럿츠빌 폭동 직후 존 파이퍼 목사의 홈페이지에 “천국에는 노예가 있나요?”라는 제목의 설교가 올라왔다. 그는 샬럿츠빌 폭동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대신, 홈페이지의 설교 소개란에는 ‘회복된 노예제’(redeemed enslavement)라는 개념을 언급하고, 설교 본문에서는 요한계시록 22장을 인용하여 천국에도 노예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22:3)에 나오는 “그의 종들”이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노예’(slave)를 뜻한다고 가르친다. 파이퍼에 의하면 구원받은 신자는 모두 죽음 이후에 상징적인 노예가 된다. 하지만 지상에서 우리가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노예’라는 단어의 의미가 천상에서는 긍정적으로 회복될 것이며, 단어만 같을 뿐 의미는 노예제가 상징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즉 요한계시록의 ‘노예’는 곧 천상의 주인(하나님)이 값으로 산 소유물이기에 지상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노예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인 함의가 없이, 천상의 주인의 이름이 이마에 새겨진 채 주인을 기쁘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섬기는 존재를 뜻한다는 것이다.
샬럿츠빌 폭동 직후 파이퍼 목사가 미국 사회가 반성해야 하는 250년간의 노예제 역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구원을 노예제에 빗대어 설교하는 모습에서, 그에게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현실 맥락에서 읽어내는 능력이 부재한 건 아닌지 의아했다. 이 설교가 게시된 페이지의 관련 자료에는 “왜 하나님은 노예제를 허용했나?” “바울은 어떻게 노예제를 극복했는가” “하나님의 노예, 성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세 개의 부가적인 글이 다시 포스팅되어 있다.
마지막 글을 보면 죄의 종 노릇 하던 인간이 믿음에 의한 칭의와 성화를 통해 죄의 노예가 된 삶에서 해방된다는 개혁주의 신학에 머물러 있고, 직접적으로 미국의 노예제나 노예해방운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앞의 두 글에서 파이퍼는 빌레몬서와 19세기 노예해방운동을 연결 짓지만, 노예해방운동이나 흑인민권운동의 신학적 토대가 된 본문을 언급하지 않고, 주인으로부터 도망간 종 오네시모를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낸 바울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데 집중한다. 파이퍼에 의하면 바울은 노예제를 직접적으로 타도하지 않고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노예제의 사상적인 토대를 허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노예해방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 어떤 과제가 남아있는지는 언급이 없다.
파이퍼 목사를 비롯한 많은 미국 교회 지도자들은 시대와 역사와 동떨어진 신칼뱅주의적 구원론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한계를 보인다. 파이퍼는 왜 하필 샬럿츠빌 폭동 직후 “천국에는 노예가 있나요?”라는 글을 올렸을까? 인종차별과 노예제의 역사를 반성하고 남부연합 동상을 철거하는 시점에 그는 왜 하필 천상의 노예는 강제로 노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주인을 섬길 것이라며 ‘회복된 노예제’를 설교했을까? 그는 미국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네오칼비니즘 신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회복된 노예제’를 주장하는 파이퍼와 많은 신칼뱅주의자들이 생각하는 해방은 죄에서 해방된 인간이 천상에서 누리는 구원이지, 현 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공평과 정의가 아니다. 이들은 인간이 죄에 종 노릇하는 일이 훨씬 더 비극적인 노예제라고 믿기에, 구원이라는 개념도 천상에서 누리는 구원으로 환원된다.
“천국에는 노예가 있나요?”라는 설교가 논란이 되고 있음을 알았는지, 파이퍼는 2주 후에 “샬럿츠빌, 남부연합 기념비, 남부 문화”라는 글을 포스팅했다. 이번에는 미국 남부의 역사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는데, 남군 측 장군들의 기념비를 세워 노예제와 인종차별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대안우파’를 비판하는 동시에 남군 동상을 철거하는 일이 자칫 남부가 가진 좋은 역사와 문화를 흐리게 할 것을 우려한다. 이 글에 나타난 그의 역사인식을 보면 매우 과거지향적이며 인종 갈등으로 인한 미국 사회의 진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오히려 노예 소유주로 알려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초대 지도자들 동상과 기념비까지 철거될까 봐 걱정한다.
남부연합 동상은 폐지하되 초기 백인 노예소유주들이 마련한 국가적 토대와 업적은 반드시 기념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하는 그의 주장을 보면, 노예제가 초기부터 미국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어 백인을 위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태도가 느껴진다. 파이퍼의 주장에 담긴 우려는 노예해방운동이나 흑인민권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역사가 미국 사회의 주류 역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