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2024년 2월 28일+2024년 10월 14일, 용은중)
작년 10월 초 금요일, 나는 아이에게 연락하지 않은 채 수업 마칠 때를 기다려 5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미리 알면 도망을 갈 수 있으니 특별한 말 없이 데리고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목요일마다 아이와 만나는 지역 교육복지센터 선생님은 벌써 몇 번이나 골탕을 먹었단다. 골목골목 길을 잘 아는 아이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냅다 달려서 눈 밖으로 벗어나기도 하고,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 건너가 버리기도 했단다. 그런 말들에 덜컥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후 교내에 주차해 둔 차에 잘 모시고 출발했다. 아이는 책가방도 벗지 않은 채 어떤 질문에도 묵묵부답하며 30분 정도 걸려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렇게 책상 앞에 마주 앉았지만 아이는 여전히 가방을 벗지 않는다. 여차하면 뛰어나갈 모습으로 보여 긴장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도서관이 있는 동네는 얘에게 익숙하지 않으니 도망가도 소용이 없겠구나! 그래도 긴장을 풀기 위해 달콤한 케이크 조각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환영해. 케이크 먹어봐, 맛있어.”
“저는 낯선 어른이 주는 음식 먹지 않아요. 안에 뭐가 들었을지 어떻게 알아요?“
“아, 그래? 응. 알았어.”
이 녀석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 중 단연코 매운맛이다. 땀이 난다. 길지 않은 대화 후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왔는데 뭔지 모르게 맘이 슬퍼졌다. 도대체 그 짧은 12년 동안 어떤 삶을 산 거니? 그날 날씨는 꽤 쌀쌀했고 나는 다음 날 병이 나버렸다.
성민(가명)이는 2023년 서울시교육청 교육후견인제를 내가 활동하고 있는 고래이야기 작은도서관에서 공모하고 운영하며 연결되었다. 1:1로 멘토링 교육후견 활동인데 성민이는 우리와 연결된 10명의 아이 중 한 명이다.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고 생활에 필요한 의류, 교육비, 병원비 등 여러 가지를 직접 지원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멘토는 아이와 만나 정서, 심리, 학습, 건강, 환경 등 다양한 것들을 살피고 지원하는 다리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성민이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이미 오전에 등교 도우미를 붙여 등교를 돕고 있었다. 등교 도우미 어르신도 골탕을 여러 번 당했다고 한다. 밤새 게임을 하고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게다. 숙제는 할 리 만무하다.
성민이는 현재 60대 중반의 아버지와 둘이 산다. 늦은 결혼에 아이를 보셨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3년 전 아버지는 엄마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살던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오히려 아이가 아빠를 아동학대로 신고해 몇 번 경찰이 다녀갔다. 담임선생님 말씀으로 아버지는 나쁜 분은 아닌데 너무 착해서 애를 휘어잡지 못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이라도 아이를 훈육하려고 하면 불을 지르겠다거나, 집을 나가겠다거나 하는 협박 같은 말을 하고, 아빠가 밥을 차려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단다. 아빠의 카톡 프로필에는 아기 성민이 사진과 하트가 가득하다. 그런데, 현재도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고 자기가 나이가 많아 아이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아이와 만나기 전 만난 담임선생님, 교육복지센터, 아버지는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길 바랬다. 조금이라도 피곤해져서 밤에 게임하지 않고 쓰러져 자길 바라는 맘이다. 그래서 거리가 좀 멀지만 우리 도서관에서 매주 하는 놀이터 활동에 데리고 와 축구에 참여시킬 계획이었다.
“축구하자. 끝나면 떡볶이도 있어.”
“싫어요. 집에 갈래요. 집 가면 안 돼요?”
아이는 돈을 버는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서울에 00평 이상 집에서 승용차를 소유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동으로는 그런 큰돈을 모을 수 없기에 빠르게 돈을 모으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치이면 합의금 뜯어낼 기회라고 한다거나, 편의점에서 본인에게 주류를 판매하게 한 후 미성년자 판매를 이유로 합의금을 요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았다. 이건 교육복지센터 선생님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성인이 된 후 돈이 없으면 장기를 팔아 돈을 벌 거란다. 도대체 그 짧은 삶에서 어떤 것들을 경험한 것인지, 마음이 아프다.
첫 만남 이후 매주 금요일 아이가 하교할 시간보다 조금 일찍 교실 뒤에 도착해 기다렸다. 첫 만남에 예고 없이 데리고 온 게 영 마음에 걸려 미리 한 계획은 잠시 접고 아이에게 맞추려 노력했다. 학교 앞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만나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했다. 학교 급식은 맛있는지, 운동은 뭘 좋아하는지 등 시시콜콜한 것을 물어보았다. 다행히 첫 만남처럼 강렬한 인상은 주지 않았다. 이 녀석 첫날은 나와 기 싸움 한 건가!
여러 내부 회의 끝에 성민이를 위해서는 특별히 수시 입시를 마친 19살 자원봉사 청소년을 섭외했다. 도망가도 따라잡을 수 있는 날쌘 형아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만나자마자 도망갈 생각은 접는다고 순순히 말한다. 이 청소년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수시를 치른 사연 많은 형아다. 성민이가 아무리 게임을 잘한들 형님 아래 뫼이다. 형 앞에서는 순한 양이다. 화기애애까지. 형은 왜 성민이가 이렇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이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고래이야기 놀이터에서 축구하는 대신 형이랑 한강에 나가 공도 차고, 배드민턴도 치고 서점에도 같이 갔다. 아, 고마운 청소년.
12월이 되어 드디어 놀이터에 축구하러 왔다! 처음에는 골키퍼를 자처하며 소극적인 모습이었지만 2주, 3주가 지나가면서 수비수, 공격수까지 확장한다. 놀이터 활동가 김0희 선생님과 19살 형아가 저돌적인 축구를 하며 혼을 쏙 빼놓는다. 물론, 다른 어린이들의 축구 실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아이는 체력이 부족해서 금방 지친다.
2032년 12월 말 후견인 사업이 종료된 1월에도 2번 정도 혼자 버스를 타고 와서 축구하러 왔었다. 기특하고 귀여운 녀석. 하지만, 방학 동안 게임에 더 빠졌는지 하루는 오후 5시까지 자고 있다. 이를 어쩌누. PC에 셧다운 프로그램을 설치했지만, 핸드폰으로 풍선효과를 보았다. 안타깝다.
12월 말 사업 종료 시기 즈음, 아이의 낡은 책가방과 잃어버린 실내화가 맘에 걸려 구매해 놓고 성민이에게 전달하려 했다. 옷도 맨날 같은 옷이지만. 그런데, 아이는 한사코 거부한다. 이유는, 자기는 지금 메고 다니는 가방 괜찮으니 필요한 사람 주란다. 같이 골랐어야 했나. 당연히 받을 거라는 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주는 것은, 받을 것을 강요하는 것이었을 수 있겠다. 폭력적인 방법이었고, 좀 더 세심했어야 했다. 도움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 자체가 어쩌면 아이에게는 수치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아이는 책가방 대신 돈으로 달란다. 집이 너무 가난하다고.
성민이는 2024년 6학년이 되어서도 우리와 교육후견인제로 연결되어 만나고 있다. 올해는 나보다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해주시는 김0희 언니와 연결되어 아침마다 버스로 3~40분 걸리는 곳으로 가서 거의 매일 아이를 깨워 학교를 보내고 있다. 자기 아이도 중학생인데 말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방학에는 게임에 몰두하느라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아이를 활동하게 하기 위해 김0희 언니가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가르쳐주었다. 2학기가 되어 김0희 언니가 활동하기 어려운 날에는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이 가서 깨우고 등교시킨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게임에 빠져 있고, 교육복지센터장님은 이렇게 할 거면 엄마에게 아이를 보내라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6학년이 되어 사춘기 거친 아이가 될 거라는 우려와 달리 게임에 몰두할 뿐 특별히 품행이 나쁘지는 않다. 학교 친구들도 고운 마음으로 성민이를 돕고 응원하고 있다. 지난달 김0희 언니가 부재중일 때 두 번 정도 데리러 갔었는데 추석이 지난 시점인데도 식탁 위에는 불닭볶음면만 즐비하게 나와 있었다. 연휴 내내 그것만 먹은 듯하다.
성민이를 포함한 여러 아이를 만나면서 느낀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금전적 지원도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문화 아이들은 정책적으로 많은 금전적 지원을 받지만, 가정에서 부모가 적절한 돌봄을 하지 않는 경우 아이의 표정은 늘 어두웠다. 반면 돈이 없어 핸드폰도 없고 치과도 못 가는 중학생 아이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늘 밝았다. 그 아이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대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가난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고, 당장의 생존을 지켜내느라 온 마음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도 감사를 잊지 않고 사는 모습에 존경스러웠다. 흔하지 않은 경우다.
가난은 사람의 영혼을 갉는다. 가난으로 인해 삶이 벼랑으로 내몰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성민이와 일부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만남이 이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아이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너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첫댓글 관련 내부 인이 쓴 시민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44524?sid=103&fbclid=IwZXh0bgNhZW0CMTEAAR01tfxVOvIshey55QIm54eMhsiHykVmVtqUV-DuH8nnjFMAm6csp7UdZZE_aem_RSMzwbxPU7I9ahNLyDmKeQ
은중쌤의 글도
링크 걸어주신 시민기자의 글도
아침부터 아주 촉촉합니다.
구체적인 장면 묘사가 아이와 은중쌤의 만남을 상상하고 함께할 수 있게 해주네요.
이번 책을 읽으면서 저도 '어른',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은중쌤 글을 읽으며 공감이 되는 부분 역시 좋은 어른, 그리고 만남이네요.
연수 때 쓰신 글 퇴고에, 따끈따끈 새 글까지 은중쌤👍👍👍
이런 프로그램도 있군요. 사회에 속한 일원으로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샘들의 모습에 늘 배웁니다. 늘 느끼지만 진심을 가지고 대하는 어른이 한 명만 있어도 사람은 힘들지만 그래도 노력하며 살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어른의 한 사람인 은중샘 응원합니다.
은중쌤, 혜화쌤의 한 사람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에 늘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도 쌤의 사랑과 관심이 묻어나기 때문이겠죠.
아이를 만나고 아파버렸다는 게 마음이 아프고...
은중쌤에겐 늘 그냥 고맙습니다.
"성민이를 포함한 여러 아이를 만나면서 느낀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금전적 지원도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도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은중샘과 중학생을 깨우러 가주시는 동료분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