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예》 2026 삼사월호가 오늘(6월 25일) 배달됐습니다. 청탁원고입니다.
2026.6.25.
【수필】
같이 봐야 더 재미있는 이유
― 손자가 가르쳐 준 ‘공유의 심리학’
윤승원
하루에도 수십여 통의 카톡 메시지를 받는다. 특별히 용무가 있어 손수 써서 보내오는 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공유 게시물’이 더 많다.
사람들은 왜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의식주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으면 혼자 보지 않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걸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 정보를 나누고 싶어 한다. 건강 정보도 그렇다. 유익한 의학 정보나 먹거리 정보도 공유한다.
민감한 특정 인물에 관한 호불호 평가도 그렇다. 공유함으로써 공감대를 확산하고자 한다.
무엇이든 새롭거나 특이하거나 유익하다 싶으면 지인이나 가족과 공유하고자 한다. 어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유치원 손자도 그랬다.
“할아버지, TV에서 《라바》가 나와요. 재미있어요. 빨리 오세요. 빨리 빨리요, 같이 봐요.”
손자가 할아버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만사 제쳐두고 손자에게 끌려간다. 그럴 때마다 손자에게 묻는다.
“넌 왜 혼자 보지 않고 꼭 할아버지와 같이 보자고 하니?”
그러면 손자가 이렇게 답한다.
“할아버지랑 같이 봐야 더 재미있어요. 할아버지와 같이 보면 더 즐거워요. 할아버지가 재미있다고 하시는 표정을 보면 저도 즐겁거든요.”
손자는 TV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판소리 추임새처럼 “와! 웃긴다. 참 재미있네”라고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 표정이다.
단순히 맞장구에 그치지 않는다. 감상평이나 소감도 구체적으로 말해 준다. 그러면 손자는 더욱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동심의 눈높이에서 할아버지가 진지한 반응을 보이면 손자의 기분은 더욱 고조된다.
그렇다. 아이도 할아버지의 공감 능력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혼자 보는 것보다 같이 봐야 더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는 손자의 순수한 공유 심리.
오늘날 지인들로부터 매일 같이 보내오는 각종 카톡 정보도, 유튜브 영상이나 명사 강연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혼자 보지 않고 뜻이 맞는 사람과 같이 보고 싶어 한다.
그 옛날 시골 사랑방에서 눈이 어두우신 연로한 아버지에게 야담 실화나 역사소설을 읽어드린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자식이 읽어드린 글 중에서 재미있는 대목이나 유익한 이야기는 또 다른 동네 어르신들에게 그대로 전했다. 함께 나누는 즐거움. 이런 심리를 학술적으로는 어떤 현상이라고 할까?
심리학에서는 즐거운 경험을 혼자보다 누군가와 ‘같이’ 할 때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손자가 “같이 봐요”라고 말할 때, 할아버지가 즐거워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면 정서적 공명(情緖的 共鳴)이 생기는 것이다.
같은 대상에, 같은 시간에, 같은 감정으로 주목하고 싶은 욕구. 나의 즐거움이 상대의 반응으로 증폭되는 경험이다.
사람은 정보를 전달하는 게 목적일 때보다 내가 느낀 감정을 함께 느껴주길 바랄 때 더 큰 공유 심리가 작동한다.
카톡으로 전해 오는 각종 공유물은 사실 ‘정보’라기보다 ‘공감 능력 확인’ 차원의 심리가 우선하여 발동한다.
“나, 이거 보고 놀랐어.”
“이거 보고 화났어.”
“이거 보고 위로받았어.”
말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당신도 나와 비슷하게 느껴줄 거지?”라는 마음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유’를 통해 은근히 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고 있는 거지?”
“우리는 언제나 같은 편인 거지?”
“저의 생각을 선생님께서도 부담 없이 받아주실 수 있는 거죠?”
손자가 할아버지 손목을 잡아끌었던 것도, 그 옛날 연로하신 아버지께 읽어드린 이야기를 다시 이웃에게 전하신 것도, 모두가 ‘관계의 끈’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닐까?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손자 이야기, 카톡 이야기, 사랑방 이야기 등은 세대 관통형 소재들이다. 이를 부담 없이 나누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 찬물을 끼얹지 말아야 한다.
‘비판’이 아니라 ‘이해’라면 더욱 좋은 것이다. 가령, “쓸데없는 카톡 좀 그만 보내라”하는 것보다 잠깐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관용이 생긴다. 거칠어지고 삭막한 세태에서 이심전심 관용의 미학이 전해지면 ‘관계의 따뜻함’도 느껴진다.
누구나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보고 배운 것이 다르니, 내 생각과 같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동류의식이 작용하면 문제 삼을 게 없다.
어떤 가르침이나 훈계가 아니라 대등한 시선에서 관찰자로 이해하는 것이다.
카톡이 너무 많아 피곤한 날도 있다. 하지만 고마운 안부일 때가 더 많다.
이 세상 어느 낯선 거리에서 내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는가? 카톡으로 보내오는 각종 메시지가 따뜻한 인정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여전히 건강하시다는 어르신의 존재 확인이기도 하다. 이때 답글을 쓰는 즐거움, 공감 하트를 누르는 즐거움도 일상의 행복이다.
“할아버지랑 같이 봐야 더 재미있어요. 할아버지가 재미있다고 하시는 표정을 보면 저도 즐겁거든요.”
천진난만한 손자의 말에 근엄한 표정의 할아버지도 무장해제되고 만다. ■
첫댓글 ♧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독자 댓글
◆ 워니워니(네이버 독자) 2026.1.29. 18:57
손자와 할아버지의 마음이 정말 따뜻하네요.
같은 감정을 나누는 게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
공유의 심리가 이렇게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니,
재밌어요!
▲ 답글 / 필자 윤승원 2026.1.29. 20:04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글을 쓴 보람을 느낍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소감이 공유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손자에게도 할아버지의 이 글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는데
선생님의 귀한 소감을 보면 즐거워할 것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영하의 추운 날씨지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고맙습니다.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1.30 07:39
공유의 심리를 멋지게 푸셨습니다. 거기에 부. 아. 손 4대가 이어지는 장점을 읽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지속됩니다. 감사합니다. 후일 손자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로 즐길 날이 오겠지요. 박수를 보내봅니다. 찍짝짝!
◇ 답글 / 필자 윤승원
이른 아침, 병석에 있는 옛 직장 동지의 안부형 그림 카드를 시작으로 지인들의 공유 게시물이 온종일 이어집니다. 뜻이 맞는 사람과 카톡으로 무언가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 이제 하나의 안부 형식이 됐습니다. 할아버지는 글을 쓰면 손자에게 가장 먼저 보냅니다. 도서관에서 읽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손자의 마음과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말씀 주시니 공유와 소통의 의미가 더욱 깊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卜鎭漢(올사모 회원) 2026.01.31 11:30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가 진짜 갈구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나의 감정을 알아주는
한 사람이라는 통찰에 큰 울림을 받습니다.
손자의 눈높이에서
정서적 공명의 원리를 찾아내신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이 참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복 선생님의 귀한 소감을 들으니
글을 쓴 보람을 더 크게 느낍니다.
‘정서적 공명’을 짚어주시니
저의 졸고를 정성스럽게 읽어주셨습니다.
따뜻한 인정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