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해와 진실
중국 사신이 조선에 왔다. 그는 조선이 예의의 나라로 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이인(異人 : 재주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평양에 도착하여 우연히 키가 8,9척이나 되고 수염이 허리까지 늘어진 장부를 만났다. 그 사신은 그가 반드시 이인이라 여기고 말을 붙여보았으면 좋으련만 말이 통하지 않아 생각 끝에 몸동작을 시도해보게 되었다. 사신이 손으로 큰 동그라미 모습을 그려 보이니 그 장부 역시 손으로 네모를 그려 응수하였다. 사신이 다시 손가락 셋을 꼽아 보이니 장부는 손가락 다섯을 꼽아 대응했다. 이번에는 사신이 옷을 들쳐 보이니 장부는 그 즉시 손가락으로 자기의 입을 가리켜 보였다.
사신이 한양에 도착하여 그를 영접하는 관원에게 말하였다.
“내가 중원(中原 : 중국)에서 듣기로 귀국은 예의의 나라라고 하더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더군요.”
영접 관원이 뭘 보고 그러는지를 물어볼 수밖에.
그러자 그 사신이 말하기를,
“내가 평양에 이르러 길가에서 훌륭한 모습의 장부 하나를 만났는데 대번에 그가 이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내가 그에게 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는데 이는 하늘이 둥글다는 뜻이었어요. 그러자 장부는 손으로 네모를 그려 대답하는 데 그것은 바로 땅이 네모났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당시는 ‘天圓地方=천원지방’이라고 해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다고 여겼음)
내가 손가락 세 개를 꼽아 보인 것은 삼재(三才 : 天․地․人)를 가리킨 것인데, 장부는 대뜸 다섯 손가락을 꼽아 대답하였으니 이것은 오상(五常 : 仁․義․禮․智․信, 또는 五倫)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내가 옷을 들쳐 보여 옛적에는 의상을 드리워 천하가 다스려졌다는 것을 표현하였는데 장부는 이에 대해 입을 가리켜 보였으니, 이는 아마도 말세(末世)에는 구설(口舌 : 입)로써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길가에서 만난 장부가 그럴진댄 유식한 사대부들이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봅니다.”
라는 것이었다. 영접 관원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날로 바로 수소문하여 사신이 평양에서 만났다는 장부를 찾아 상경하게 하였다. 그가 상경하자 그에게 푸짐한 선물을 주면서 은근한 투로 전후 사정을 물어보았다.
“중국 사신이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을 대 그대는 어째서 네모를 그려 답하였던 것이요?”
장부 왈,
“그가 떡을 먹고 싶었던지, 떡은 둥글다는 뜻으로 동그라미를 그린 것 같더군요. 그러나 저는 인절미가 먹고 싶었습니다. 인절미는 네모나게 생겼기 때문에 그래서 네모를 그렸지요.”
영접 관원 왈,
“그러면 그 사람이 손가락 셋을 꼽아 보였을 때 그대는 왜 손가락 다섯 개를 꼽아 대답하였습니까?
장부 왈,
“그는 하루에 세 끼니를 먹는다고 손가락 셋을 꼽은 것 같기에 저는 하루에 다섯 끼니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섯 손가락을 꼽았던 것입니다.”
영접 관원 왈,
“그렇다면 그 사람이 옷을 들쳐 보였을 때 그대는 어째서 입을 가리켜 대답을 하였던 것입니까?”
장부 왈,
“그의 관심사는 옷이었지만 제 걱정거리는 먹는 것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입을 가리켰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