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화가가 된 죄수
리처드 플래너건(Richard Flanagan)
<굴드의 물고기 책(Gould’s Book of Fish)> (2001)
『모비딕』이 고래에 관한 소설이듯, <굴드의 물고기 책>은 물고기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세기의 절도범이자 위조범인 윌리엄 뷜로 굴드의 전기에 영감을 받았다. 굴드는 세라 섬의 태즈메이니아 감옥에서 복역하는 동안 일련의 생생한 물고기 그림을 그렸다. 플래너건의 소설은 이 유형지의 몹시 고통스러운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동시에, 환상과도 같은 이 눈부신 소설은 예술과 자연과 역사, 인간의 고통과 초월, 영국 식민주의와 계몽주의 시대의 오만이 낳은 파괴적 결과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이 자행된 "혐오의 시대"에 대한 주목할 만한 철학적 명상으로 이어진다.
<굴드의 물고기 책>은 대담하고 매우 독창적인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허먼 멜빌, 제임스 조이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프랑수아 라블레, 조너선 스위프트, 헨리 필딩, 로렌스 스턴, 피터르 브뤼헐, 히에로니무스 보슈처럼 독자의 마음속에 연상의 도미노를 일으킨다. 플래너건의 말대로, 굴드의 물고기 그림은 이 화가가 알고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것이 압축된 것이었는데, 플래너건은 이 소설로 이와 비슷한 일을 해낸다. 굴드가 결국 감옥에 오기 전 지나온 수많은 세계와 머릿속에서 창조한 상상의 세계를 언어의 마술로 불러낸다. 여기에는 끔찍하면서 아름다운, 온갖 놀라운 것들이 있다. 흉악한 돼지, 말하는 머리, 남태평양 모래사장에서 솟아오른 분홍색 대리석 궁전, “금강앵무 새끼와 비슷하게 칠하고 교황이 하듯 우울한 시를 암송하도록 훈련시킨” 큰 유황앵무 떼 등이 있다.
플래너건의 굴드는 “검푸른 영혼과 녹색 눈과 벌어진 치아와 텁수룩한 머리와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는 위장”을 가진 죄수로 묘사되는데, 매일 밀물 때면 물로 가득 차고 악취가 진동하는 감방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전혀 신뢰할 수 없지만 즐거움을 주는 화자로 드러난다. 예전에 영국과 미국에서 했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곳에서 오듀본(존 제임스 오듀본은 미국의 조류학자이자 화가로 북미 조류도감을저술했다.) 이라는 사람과 그림 공부를 했다고 주장한다. 종잡을 수 없이 횡설수설하며, 자신이 어떻게 “처음에는 돈과 영광을 찾아, 그 다음에는” 삶의 “이유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라 섬의 죄수인 자신이 화가로 새로 태어나기로 결심했는지 회상한다. 그는 간수에게 존 컨스터블의 가짜 그림을 그려주고(간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이 그림을 판다) 감옥 사령관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이 훨씬 더 힘든 의무에서 벗어나는 방법임을 깨닫는다. 제정신이 아닌 사령관은 황량한 감옥 섬에 유럽의 장관(壯觀)을 가져다놓길 꿈꾸며, 노예 노동으로 건설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철도를 위해 경치가 담긴 배경막을 그리라고 굴드에게 명령한다. 한편, 감옥의 의사는 과학 분야에서 인정받기를 꿈꾸며 태즈메이니아의 물고기에 관한 백과사전을 만들기 위한 조사를 도와달라고 굴드에게 부탁한다. 굴드는 자연의 창의력에 대한 애정과 자유에대한 갈망을 이 계획에 쏟아붓는다.
플래너건의 말대로, 굴드의 이야기는 앙리 샤리에르가 악마의 섬의 수용소에 투옥되었던 일에 대해 쓴 유명한 이야기인 <파피용>만큼이나 참혹하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만큼이나 독창성이 있다. 이 소설은 굴드와 동료 수감자들이 겪는 고문과 궁핍에 대한 소름 끼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세계가 홉스식으로 이렇듯 “끝없는 노동, 그칠 줄 모르는 잔혹성, 무의미한 폭력”으로 가득하지만, 이 소설은 또한 “놀랍고 범상치 않으며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이 경이로운 세계”에 감탄하고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