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통증의 원인 이렇게 다양했어?
이병문 기자 2016/12/16 15:51
절반 이상이 '근근막통증'…근육·근막에서 발생
심장·폐 뿐만 아니라 소화장기·스트레스도 원인
50대 초반의 직장인 김 모씨는 연말을 맞아 늘어난 업무로 수면부족, 소화불량, 두통 등의 증상이 생겼다. 그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저녁에는 잦은 모임으로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달고 산다. 김씨는 최근 앞가슴 부위뿐만 아니라 등쪽에서도 통증이 발생해 혹시 허혈성 심장질환(협심증, 심근경색)이 아닌가 걱정이 앞서 곧바로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는 역류성 식도염에 의한 식도 문제로 흉통이 발생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철을 맞아 가슴통증(흉통)이 발생하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다른 질환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흉통(胸痛)은 말 그대로 가슴 부위에 나타나는 통증을 말한다. 가슴에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흉통 하면 흔히 떠오르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대동맥박리와 같은 심혈관질환, 폐나 흉막, 식도, 위장관, 췌장, 담도 등 흉곽이나 복강 내 다양한 내장기관에서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내장기관뿐 아니라 가슴이나 상복부 근육이나 건(腱·힘줄), 갈비뼈, 척추 등 다양한 근골격계에서도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흉통은 생명과 직결된 위험 신호인 경우가 드물지 않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절반 이상의 통증이 근육이나 근육을 감싸고 있는 근막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통증을 '근근막통증'이라고 한다.
김상곤 유성선병원 심장내과 과장은 "흉통은 심질환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가장 위험하지만 소화기계나 신경 및 근골격계, 폐질환, 심지어는 정신적 원인에 의해서도 흉통이 나타날 수 있다"며 "흉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다양한 만큼 평소 구별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 허혈성 심질환에 의한 흉통
허혈성 심질환은 심장의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대표적인 허혈성 심장질환은 협심증과 심근경색이며 이들 질환은 혈액 공급의 일시적인 차질로 흉통이 나타날 수 있다.
협심증 환자의 흉통은 가만히 있을 때에는 괜찮다가도 계단을 오르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걷을 때, 과식한 후 잘 발생한다. 심장혈관이 부분적으로 막혀 있는 협심증은 심장근육이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에 발생하지만 쉬면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심근경색 환자는 가만히 쉬고 있어도 가슴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허혈성 심질환으로 흉통을 겪는 환자들은 대체로 숨이 멈출 것 같이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을 느끼며,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것같이 따가운 증상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조이는 느낌, 뻐근함, 무거운 것으로 눌리는 압박감, 터지는 느낌, 답답함,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느낌도 든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으로 나타나는 흉통은 성격이 비슷하지만 심근경색으로 인한 흉통은 30분 이상 지속되는 등 증상이 더욱 심각하다. 급성 심근경색은 구토감, 진땀, 쇼크에 빠질 수 있으며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다. 따라서 흉통이 발생하거나 30분 이상 지속된다면 즉시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김종진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중년 남성의 허혈성 심장질환은 혈관 노화, 흡연, 고혈압, 당뇨병, 과체중, 고지혈증,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생긴다"며 "혈관 노화의 위험인자로부터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운동과 소금 적게 먹기, 금연 등의 생활습관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 소화기계질환에 의한 흉통
흉통은 소화와 관련된 장기로 인해 자주 발생한다. 소화 관련 장기는 주로 가슴 부위에 몰려 있어 협심증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식도에 의해 발생하는 통증은 협심증과 가장 헷갈린다. 역류성 식도염은 앞가슴부위뿐만 아니라 등쪽에서도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이 명치끝이나 흉골(복장뼈) 아래쪽으로 '타는 듯하게' 느껴지며, 누운 자세나 앞으로 숙인 자세에서 악화된다. 우유나 물을 마시면 위산이 중화돼 일시적으로 통증이 완화될 수 있으며 상체를 높인 자세만으로도 통증이 경감되는 특징이 있다.
식도 경련 환자가 통증을 느낄 경우 흉골 아래쪽 부위에 '타는 듯하다, 쥐어짠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등, 팔, 턱 등으로 통증이 퍼져나가는 방사통을 일으키며 대개 식사 중이나 식후에 발생하고 수 분에서 수 시간 동안 지속된다.
평소 운동을 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없으며 연하운동, 위 내 음식물의 역류 등으로 통증이 유발된다면 식도 경련을 의심해볼 수 있다. 또한 소화성 궤양으로 인한 흉통은 음식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제산제로 완화될 수 있다.
급성 췌장염의 통증은 심근경색과 유사할 수 있다. 그러나 통증이 명치끝에서 나타나며 웅크린 자세로 완화되고, 알코올 중독이나 담낭질환이 동반된 환자에게서 의심할 수 있다.
◆ 신경·근골격계, 폐질환에 의한 흉통
갈비뼈에 연결된 연골(늑연골)에 발생한 염증도 흉통을 유발할 수 있다. 상체를 움직일 때마다 통증과 함께 '뚝' 소리가 나고 심호흡을 하면 '가슴이 바늘에 찔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나 늑연골염에 의한 흉통은 아픈 곳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통증이 심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심장질환으로 인한 흉통과는 다르다. 특히 늑연골염으로 인한 흉통은 헬스나 수영과 같은 무리한 운동이 원인이므로 20·30대 연령에서 흉통을 호소하면 대개 늑연골염인 경우가 많다.
또한 경추, 흉추의 퇴행성관절염에 의한 흉통은 상체 움직임, 특정 자세, 기침, 재채기 등으로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상포진 환자의 경우 스치기만 해도 아픈 극심한 흉통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통증이 발생한 후 4~5일이 지나면 전형적인 대상포진 수포가 나타난다.
이 밖에도 흔하지는 않지만 여러 신경, 혈관 구조물이 갈비뼈나 근육에 의해 눌려서 통증이 유발되는 '흉곽출구증후군'도 협심증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통증이 머리, 목, 어깨 및 겨드랑이 부위로 나타나며 대개 팔 안쪽의 통증을 동반한다.
폐질환 중 폐색전증에 의한 흉통은 심근경색과 혼동할 수 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도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으며 호흡곤란, 빈호흡, 청색증 등이 동반된다. 기흉이나 폐렴도 흉통의 원인이지만 이는 해당 부위에서만 일시적으로 발생하며 호흡기계 관련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 스트레스·화병 등에 의한 흉통
'불안'은 흉통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화병도 그중 하나다. 통증은 대개 왼쪽 가슴밑 부위에서 나타나며, 환자들은 대개 수 초 내지 1분 미만으로 '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지속된다고 표현한다. 운동과는 관련이 없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데도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잘 생긴다. 이런 경우 환자들은 '숨이 막힐 것 같다' '어지럽다' '가슴이 뛴다' 등의 여러 증상을 한꺼번에 호소한다.
때로는 과호흡이나 입 주위의 감각 이상, 무력감, 손저림, 한숨, 히스테리 등의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스트레스, 우울증 등 정신적 원인도 흉통을 유발한다. 최상식 고려대 구로병원 통증클리닉 교수는 "스트레스가 근육을 과도하게 수축시킬 때 흉통이 생길 수 있다"며 "맥박이 빨라지면서 가슴이 찌릿하거나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히면 스트레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신적인 원인으로 생긴 흉통은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소리만 들어도 증상이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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