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장(衣履藏 시신이 없어 옷과 신발을 묻음)도 발복하는가?
동강의풍수유람까페 6733, 7600번을 보면 아래와 같다.
위의 두 글에서 동강선생은
6733번에서 외조모 묘가 천하대지라 율곡이 구도장원을 했다고
주장하고
7600번에는 외조부 묘가 천하대지라고 하고
율곡은 외손발복의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동강선생은 횡설수설을 하고 있다.
먼저 6733번 글을 보자!
동강선생은 외조모 묘가 천하대지라 율곡이 구도장원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아래 비문 좌에서 우로 6행에
卒于隆慶己巳十月二十二日享年九十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래서 내가
"죽지도 않았는데 외손이 발복해?"라는 글을 올리니
동강선생이 자기까페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 반론 자체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보자.
■천하대지와 대명당의 구분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천하대명당과 대명당중 어느것이 좋은가?"라고 하면 "천하대명당이 좋다" 라고 답변할 것이다.
동강선생은
천하대지, 천하대명당, 세계적인 일류기업을 추동할 대명당 등의
최상의 용어를 쓰고 있고,
그 하위개념으로 상당한 대명당, 대명당, 대기업추동 등을 사용하고 있다.
위 강원도민일보와 동강의 풍수유람에 올린 글을 보면 율곡의
외조모 용인이씨 묘는 두 번다 천하대지이고
외조부 신명화 묘는 상당한 대명당, 대기업 추동가능하다.
라고 두 묘의 차이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즉 외조모 묘가 최고등급이고, 외조부 묘는 그 다음 이다.
동강선생은 율곡의 증조부묘에 대해서는
동강선생은 이렇게 율곡의 증조부 묘에 갈 때마다 그 감평이 다르고
대명당에 정승판서도 충분히 배출할 수 있다고 했다.
친가에 이런 명당이 있음에도 굳이
율곡의 외조모 용인이씨의 묘가 천하대지라 율곡이 구도장원을 했고
친손과 외손은 그 발복이 각각 50 : 50인데
율곡이 외손발복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데 율곡의 외조모 용인이씨가 율곡이 29세에 구도장원을 한 5년 후 별세했음을
내가 비문에 의하여 밝히니
이번에는 외조부묘가 대명당이니 외조부의 발복으로 보면 된다고 변명을 한다.
이런 변명은 사이비 풍수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러면 동강선생의 주장대로
율곡은 외조부의 발복인가?
■율곡의 외조부 묘는 어느 때 이장했는가?
동강선생은 "율곡이 1548(명종3년) 13세에 소과에 장원급제했는 데,
이것을 외조부의 발복이라고 주장했다.
성보의풍수여행을보면
신명화의
외손자 율곡과 권처균이 이장했다고 한다.
아래 율곡의 년표를 보자!
율 곡 년 표
1536년-12월26일 강원도 강릉의 외가에서 이원수의 아들로 태어남
1541년-6살-한양의 본가로 돌아옴.이듬해,어머니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함
1548년-13살 진사 초시에 장원급제함
1551년-16살-어머니 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불교사상에 몰두함
1554년-19살-금강산에 들어가 불교철학을 연구함.
이듬해 강릉의 외가로 가서 유학을 연구함
1556년-21살-한양으로 돌아옴.한성시에 장원으로 급제함
1558년 경상도 예안에서 이황을 만남.
그 후부터 이황과 편지로 학문을 토론함.
1561년-26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남
1564년-29살-생원시 장원 급제.여러관직을 역임함
1568년-33살-천수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옴
1569년-34살-관직에서 물러남 .
선조의 부름으로 호당에 들어가 동호문답을 지어 임금께 올림
1570년-35살-관직에서 물러남 해주에서 이황의 죽음을 전해 들음
1571년-36살-청주 목사로 부임하여 서원 향약을 실시함
1572년-37살-벼슬을 버리고 파주의 율곡촌으로 감
1578년-43살-해주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를 양성함
1581년-46살 대사헌 예문관 제학을 겸임하고 대제학을 지냄
1583년-48살-병조판서를 지내며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10만 양병책'을 건의 했으나 묵살
1584년-49살-육조방략을 지음 숨을 거둠.
율곡의외조부 신명화(1476-1522)는 57세에 졸했다.
율곡이 1548(명종3년)년 13세에 율곡이 진사초시에 장원급제 했다면 외조부 발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현재의 묘는 율곡이 13세 되기 이전에 이장했어야 한다.
첫째 율곡이 13세면 이종동생 권처균은 8살이다.
어린 아이들이 어찌 외조부의 묘를 이장을 하겠는가?
둘째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1551년에 61세로 졸했다.
권처균의 아버지 권화는 1573년 56세로 졸했다.
이 사위들이 1548년
율곡이 진사초시에 장원하기 이전에 이장했다면 말이 된다.
율곡은 37세(1572년)이전에는 관직에 있었다.
요즘 같으면 강릉에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시절 관직에 있으면서 외조부 묘 이장을 하기 위하여 며칠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율곡외조부의 이장은 율곡이 구도장원을 한 이후며
율곡이 37-46세 사이 관직을 떠나 파주에 있을 때 한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율곡의 13세 진사장원급제나 29세에 구도장원은 율곡의 외조부 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율곡의 외조부 묘는 시신이 없는 의리장이다.
위에 올려진 비석의 비문 우측
첫 줄에는 "松亭申命和墓表"라고 비의 제목이다.
두째 줄에는 "己卯名賢松亭申公衣履之藏在江陵郡丁洞面助山於道旺洞辛坐之原"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기묘명현 송정 신명화의 묘는 의복과 신발로 장사했는데, 강릉군 정동면 조산 도왕동 신좌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율곡의 외조부 신명화 묘는
시신이 없어 의복과 신발로 장사했다는 기록이 비문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동강선생은 율곡의 구도장원이 이 외조부 묘의 발복이라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허무 맹랑한 주장인가?
동강선생은 족보도 부정한다.
그리고 자기가 가본 이묘지에 비석도 보지않았고.
내가 올린 비문도 보지 않았다. 만일 내가 올린 비문만 보았어도
이와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동강선생은 한자를 모르는 풍수로 보인다.
자! 이제까지의 과정을 보자.
동강선생은
1. 율곡의 외조모 용인이씨의 묘가 천하대지라
율곡이 29세에 구도장원을 했다고 주장했다가
내가 외조모는 율곡이 구도장원한 5년후에 졸했다고하니
2. 이번에는 말을 바꾸어 율곡의 외조부묘가 대명당이라
율곡이 13세에 진사초시에 장원급제했다고 변명을 했다.
그런데 천하대명당이라는
율곡의 외조부 묘는 시신이 없어 의복과 신발을 묻었다.
그래서 동강선생게
"의리장도 발복하는가?"라고 질문을 한 것이다.
동강선생은
"비문이 거짓이다"라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을 것이다.
만지면 점점 커지는 물건이 있다.
동강선생의 변명에 오히려 더 큰 질문으로 되돌아가니
함부로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정말 난감할 것이다.
학문이 진실이라면 어떠한 질문도 두렵지 않다.
어설픈 학설로 세상을 덮으려면 문제가 생긴다.
동강선생이
"의리장도 발복하는가"에 답변을 못하면
1. 율곡이 외손발복의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 날아가고
2. 신명화의 외손들이 율곡을 제외하면 군수하나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천하대지인 율곡의 외조모 묘와,
천하대명당인 율곡의 외조부 묘 두 개가 소지소혈도
못 된다.
소지소혈도 아닌 것을 천하대명당, 천하대지라 했으니
동강선생 학설의 기반이 흔들린다.
만일에 동강선생이 정답을 내신다면
1. 죽지않아도 그 자손이 발복하고
2. 시신이 없는 의리장도 발복한다는
풍수의 새로운 역사를 쓰신 분으로 기록될 것이다.
동강선생의 또 다른 변명을 기대해 본다.
첫댓글 교활한 족보풍수 인호야 너나 잘해라!
너는 항상 변명으로 일관하는자가 아니던가!
족보풍수 인호야!
너는 항상 보면 내가하면 애로요 남이하면 불륜이냐?
너가 만들었다는 등급표를 보면 대통령이 나오는 자리는 귀A자리라고 했다.
그러면 너의 선영도 귀A자리에 모셨을거 같은데
너가 하는 행동을 보면 남을 헐뜯을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행동를 하는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너먼저 잘못된점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고 남을 비방하던지 하거라!
천지공사 요놈아!
너는 동강의풍수유람에 아부하는 간신배가 아닌가?
동강은
1. 율곡은 그의 외조모 묘가 천하대명당이라 그 발복으로 구도장원(시험에 9번 1등함)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율곡은 29세에 이미 구도장원을 했다. 율곡의 외조모는 그후 5년을 더 살다가 생을 마치었다.
동강은 이렇게 새빨간 거짓말을 해도 정심(천지공사) 너는 동강에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2. 또 동강은 외조모 발복이 거짓말이 되니
이번에는 외조부의 묘가 대명당이라 외조부의 발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외조부는 시신이없어 옷과 신발을 묻었다, 이것을 유식한 말로 "의리장"이라 한다.
그래서 내가 동강에게 "의리장도 발복하는가?"라고 물었다.
동강은 유구무언이다.
그런데 정심(천지공사) 너는 동강에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너 같은 놈을 두고 간신배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