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의대 증원 문제로 수련받는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사전 협의가 부족하고 과다한 인원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어 의대생들도 행동을 같이해 휴학계를 내고 강의실을 비웠다. 그들을 가르치던 전문의도 제자들을 다독이지 않고 이대로 버려두거나 면허정지와 처벌을 하면, 또 학년 유급으로 학업이 중단되게 되면 현장을 지키기 어렵단 말을 서슴없이 한다.
날이 가고 달이 흐르면서 힘겹게 병상을 지키던 전임의 전문의까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며칠 더 견뎌보고 사직을 할 거란다. 잘 있던 병원은 갑자기 소용돌이 속으로 온통 난리다. 여러 해 전염병으로 숱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끝나자마자 부글부글 대형병원이 끓고 있다. 특히 의사를 키워내는 대학병원이 그러하다.
일반병원은 그렇다 치고 국가가 돕는 진료 기관이 앞장서서 자리를 떠난다니 놀라운 일이다. 전국 각처에 병원을 세워 국민 건강을 지키고 있다. 시와 면 단위까지 시립병원과 보건소를 두어 진료를 이어간다. 산간벽지와 섬마을에도 의사의 손길이 가도록 배려한다. 의사 없이는 살 수 없다.
외상 진료뿐만 아니라 오장육부와 정신까지 정확하게 치료해 생명을 이어가도록 하는 커다란 의술이다. 의료보험으로 진료와 처방 비용이 저렴하다. 참고 지나던 지난날과는 달리 조금만 아파도 병원문을 두드려 마실 다니듯 드나들고 문지방 넘나들듯 찾아간다. 시원한 바람 불 듯 상쾌하게 나아지니 의사와 약사의 고마움이다.
부모 말씀은 거역할 때가 있어도 의료진의 당부는 귀담아듣고 실천으로 옮긴다. 흰옷을 좋아하듯 가운 입은 병원 직원을 믿고 따른다. 진맥하거나 주사를 놓으며 만질 때 이미 벌써 나은 기분이다. 가르칠 때 학급에서 앞서고 전교에서 뛰어난 성적의 학생이 경쟁 심한 어려운 의대 합격으로 갈 때는 자랑스러워서 쳐다보게 된다.
얼마 전 아랫배가 아파 응급실로 실려 갔다. 요도결석으로 관을 꽂아 두 달간 지났다. 매일 피가 흘러나와 불안했다. 가끔 결리고 아팠다. 자주 소변이 찔끔 마려워 미처 화장실 가기 전에 지렸다. 하도 잦아 밤잠도 설쳤다. 이리 길게 시술 날짜를 잡더니 느닷없이 연락이 왔다. 사정으로 한 달 늦춰야 하고 또 미뤄질 수 있다. 어찌할 수 없단다.
바로 전공의의 집단 자리 이탈이다. 소피볼 때 어떨 땐 핏덩이가 나온다. 이러다 콩팥이 상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다. 담당 의사가 다른 지역 아는 병원 의사에게 부탁해 그곳 수술실에서 돌을 깼다. 조금씩 나오던 게 찡하게 아팠는데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쏟아져나온다. 고마워라. 손톱에 가시가 들어도 참기 어려운 연약한 게 사람이다.
아픈 환자를 저버리고 떠난 의사들이 밉상이다. 직장에서 수십 년 일하다 퇴직하면 겨우 2, 3억이다. 의사들은 연봉이 적게는 1, 2억에서 많게는 5, 6억이다. 전문의는 보통 3, 4억 원이니 한 달로 치면 어마어마한 3천만 원이 넘어간다. 일반 월급쟁이 열 배가 넘는다. 부유하다. 그만한 기술과 수고가 있음이다. 의사 수가 적을수록 수익이 높다. 늘리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좋은 기기를 들여 검사가 정확하다. 의술도 날로 발전을 거듭해 낯선 병과 암을 정복해나간다.
이 좋은 세상을 좀 더 살려면 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수백만 원을 들여 돌을 꺼냈다. 주로 검사비이다. 온갖 곳을 거치며 수다스럽게 촬영과 피, 소변, 호흡 검사를 받았다. 전체 금액 모두 내라면 허리가 휘청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료보험의 고마움이다. 그래야 의료진을 뒷바라지하고 병원을 유지할 수 있겠다 싶다.
환자들의 어려움이 나타난다. 나는 가까스로 시술받았지만 저만치 밀리는 환자가 많다. 다급한 사람은 떠돌다가 위험에 처한다니 안타깝다. 의약분업과 의대 증원 문제로 몇 차례 갈등을 빚었다. 그때마다 의사의 주장에 맥없이 물러서고 말았다. 전공의들이 마구 환자 곁을 떠나니 감당할 수 없다. 국민을 길들이는 좋은 수단이 생겼다. 들어줘야만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의협 간부의 말은 정부는 우리 의사를 이길 수 없단다. 매몰찬 말이지만 어찌해 볼 수 있겠나.
지난날 학교에서 말썽이었던 교원단체를 모두 파면해 거리로 내몰았다. 오갈 때 없어 온갖 학원이 득실거려 생겨난 적 있다. 적은 수도 아닌 수만 명의 전공의와 수련의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선처해서 되돌아올 수 있도록 느긋하게 기다려야만 한다. 우선 급한 사람은 병원문을 넘어야겠지만 이럴 땐 어지간하면 견뎌내며 지내는 수밖에 없다. 지난번 아픔으로 이냥 죽었으면 했다.
살 만치 살았는데 무슨 여한이 더 있겠나 싶다. 마냥 살 수 있나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 했다. 얼마 뒤 갈 몸이다. 여태 죽음을 모르고 살았다. 천년만년 살 줄 알았다. 나이 지긋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니 오히려 편한 마음이다. 돌을 꺼냈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지난날은 오래 살았으면 했다. 죽으면 안 돼 그럴 수 없다며 되뇌었다.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노랜 턱도 없다. 누가 그리 사나. 백 년도 못 산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늘그막엔 오직 그런 마음뿐이다. 얼마 전 고향 갔을 때 친히 알던 윗사람이 모두 떠나간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하, 가는 길은 어김없구나. 늦추거나 늘릴 수 전혀 없어라. 다음 차례가 스멀스멀 다가온다. 삼천갑자 동방삭이 저승사자를 속이고 피해 다니면서 18만 년 산 얘기는 그저 즐거워라 전해오는 말이다.
전공의들이 돌아와야지 그들 갈 곳이 환자 곁 말고 또 어디 있겠나. 수틀리면 우우 빠져나가 종적을 감추고 연락도 안 된다. 뒤이어 스승인 전문의가 제자들을 위하려 사직하겠다며 야단법석이다. 의협 간부들은 이 지경인 대도 정부가 의대생 2천 명 고집을 꺾지 않으면 남은 마을 의원마저도 손 놓겠다고 위협이다. 강의실과 교수, 장비 부족인데 무슨 증원이냐이다.
반대가 심해 20년간 의대 증원을 미루다가 비로소 확정 발표가 이뤄졌다. 초등은 교사 1인당 16명이고 중학교는 13명, 고등은 10명이다. 대학은 7명인데 현재 의대는 1.5명이다. 강의실과 교수 부족은 맞지 않는 말이란 발표다. 의대 6년 졸업 수련의와 전문의를 따려는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의 아직 젊은 전공의가 병원을 영락없이 떠나고 있다.
그러니 전공의와 수련의를 볼모로 앞장세워 떠나게 한 뒤, 교수인 전문의가 배수진을 치다 물러난다. 마지막으로 마을 의원을 문 닫게 해 환자들을 내몰면 견딜 수 없어 백기를 든다는 생각이다. 거기다 공수처에 고발하고 국제노동기구에도 도움 요청 서한을 보냈다. 보건복지부장, 차관 사직과 대통령 하야 말도 나온다.
여태껏 쳐다봤다. 그러려면 헌신짝처럼 팽개친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나아가 조금 겸손해지면 안개 꼈던 햇볕이 다시 비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