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에 빠진 캐츠비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김영하, 문학동네.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이다. 그는 160여편의 단편을 썼다. 금전적 성공과 작가적 명성을 함께 얻지만 아내 젤다는 끊임없이 그에게 금전을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위대한 개츠비>는 뉴욕의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정한 20세기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로 <율리시즈>에 이어 뽑힌 적이 있다. 미국 중·고등학교에 실리며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자격이 있지.” 라고 말해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끌었었다. 작가 김영하는 우연하게 고등학생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다. “ <위대한 개츠비> 재미없다”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정도의 작품은 아닌데 했다고 한다. 김영하는 자신이 직접 이 책을 번역했다. 마지막 작업은 뉴욕으로 건너가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며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전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화려한 재즈의 시대이자 광란의 시대였던 1920년대의 미국을 그렸다. 아메리칸 드림과 계급적 갈등, 부에 대한 갈망 등 미국의 사회상을 묘사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기다. 이때 미국 사회는 가치관의 붕괴와 그에 따른 쾌락의 추구가 반영된 모습을 담고 있다. 소설은 매일 밤 파티를 벌이고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즉흥적인 쾌락을 위해 개츠비의 대저택으로 불나방처럼 모여든다. 주인공은 개츠비이다. 주변인물은 닉, 톰 뷰캐넌, 데이지, 미스 베이커, 윌슨, 머틀윌슨, 마이어 울프심 등 캐릭터를 선명하게 묘사하고 그려냈다. 작가는 인물들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개츠비는 상류층 여성인 데이지를 사랑한다. 그는 그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자가 된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집 근처로 이사를 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화려한 파티를 연다. 심지어 자신이 꿈꿔왔던 데이지가 다른 모습을 보여도 그녀를 여전히 사랑한다.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은 무엇일까?
“그는 데이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 생각에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동자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그 집의 모든 것들의 가치를 재산정할 작정인 것 같았다. 가끔씩 그는, 그녀라는 놀라운 존재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는 듯, 멍한 눈초리로 자신의 소유물들을 둘려보곤 했다. 한번은 계단에서 거의 굴러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p.116)
“돌아보면 거의 오 년의 세월이었다. 그날 오후만 해도, 눈앞의 데이지가 그가 꿈꾸어왔던 데이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환상의 생생함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는 독보적인 열정을 가지고 그 환상 속에 뛰어들어, 하루하루 그것을 부풀리고 자신의 길에 날리는 온갖 밝은 깃털로 장식해왔던 것이다. ”(p.121)
이 책의 역자인 소설가 김영하는 데이지를 “그녀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허영에 사로잡혀 있으며 무책임하다.” (p.236)라고 표현하고 있다. 과연 데이지는 어떠 인물일까? 데이지는 셔츠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여성이다. 사랑의 감수성이 타고난 여성이다. 이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남편 톰이 아닌 캐츠비였다. 흔히 낭만적인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말하는데 데이지는 그런 능력을 타고 났다.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줄 아는 낭만적 능력, 즉 센서빌리티이다. 캐츠비의 미소와 데이지의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낭만적 감수성. 데이지와 캐츠비는 이런 면에서 너무 잘 맞는다. 특히 개츠비는 그녀와 헤어지고도 잊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녀의 목소리이다. 데이지의 목소리를 개츠비는 포기할 수 없다. 데이지는 귓속말을 잘 한다. 책은 데이지에 관한 목소리를 끊임없이 언급하고 있다. 귓속말의 매력을 가진 데이지에게 개츠비는 헤어나올 수 없다. 데이지를 만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캐츠비의 사랑. 그녀에게서 그는 희망과 미래 꿈. 환상을 본다. 환상의 힘은 그를 계속 살아있게 만들고 사다리 위로 올라가게 한다. 모두 데이지를 향해서 말이다.
“데이지라는 캐릭터는 그런 희미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허영에 사로잡혀 있으며 무책임하다. 화려한 것을 추종하고 모든 것이 자기 노력과는 상관없이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라며, 자신의 무책임이 심각한 결과로 돌아올 때에는 그 처리를 남에게 맡기고 달아난다. (중략)
데이지는 이후 등장하게 될 수많은 현대적 여성 캐릭터의 모델이다. 우리는 이런 여성들을 심지어 <쇼퍼홀릭> 같은 칙릿 소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원하고, 그러면서도 그 결과에는 무심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 우리는 그런 여자들을 알고 있다.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그녀’들이 우리 곁을 지나간다. ”(p.236-237)
피츠제럴드는 주인공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라는 관용어를 붙여 제목을 정했다. 여러 제목들 중 편집자의 주장으로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로 제목을 정하고, 제목에 맞게 내용을 수정했다고 한다. 과연 개츠비의 위대함은 무엇이었을까.
“피츠제럴드는 전에도 소설의 제목을 여러 번 바꾸었다. 그가 고심했던 제목 중에는 <잿더미와 백만장자들 사이에서>, <에스트 에그로 가는 길>, <금색 모자를 쓴 개츠비> 등이 있었다. 피츠제럴드는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로 바꾸기로 처음 동의한 후 <성조기 아래서> 같은 제목을 제안했다. 하지만 퍼킨스는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츠제럴드는 퍼킨스의 평가를 들은 후 복잡한 재집필과 재구성 작업을 실시했다. 문제의 챕터를 다시 썼고, 좀 더 앞부분에서 개츠비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소개했으며, 그가 부를 이룩한 경위를 암시했다. 또한 광범위하게 문체를 다듬었고 새로운 소재도 넣었다.”-<최고의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중에서-
플라자 호텔에서 데이지의 남편 톰과 개츠비는 데이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며 언쟁을 벌인다. 데이지는 결혼식때 술에 취해 개츠비의 편지를 읽고 울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엔 개츠비를 회피한다. 개츠비는 이런 데이지에게 자신만을 사랑했다고 톰에게 말하라고 강요한다.
“데이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날 사랑합니다.”
“완전히 돌았구만!” 톰이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개츠비도 흥분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데이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니까. 내 말 알아들어?” 그가 소리쳤다.
“내가 가난했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다 지쳐서, 그래서 당신하고 결혼한 거야. 끔찍한 실수였지.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나 말고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어.”(p.164)
<위대한 개츠비>는 대중문학으로 인기있는 요소를 모두 갖췄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그의 순수성에 있다고 보여진다. 소설은 부자들의 공허함, 희극적인 광경, 탐욕스러운 오만 등을 폭로한다. 당시 상류계층의 무책임한 욕망을 보여준다. 불성실하고 부주의한 톰과 데이지의 모습을 닉과 개츠비가 마무리하는 구도다.
<서평-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