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공교육에서의 성교육은 단순하게 생리적인 기능과 생물학적인 성에 대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교육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은 성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영화나 시청각 자료들을 통해서 교육받고 있는데, 그러한 성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12학년까지[고등학교 3학년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어지는 가운데, 그들의 태도와 가치관을 개방적으로 발달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한 아이가 성에 관하여 알고자 하면 무엇이든지 알 수 있게 된다. 단지 그 아이의 가치관이 변화되는 데에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뿐이다.)
간음을 장려하는 자들의 목표는 해로운 "신화들"(즉, 기독교 신앙)과 "곤란한 문제들"(즉, 윤리적 제약)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본주의 선언, Humanist Manifesto>에 따르면, 그러한 것들은 학생들을 편협한 태도로 육성하고, 보수적인 종교적 태도와 금욕적인 문화로 양성하는 것이 된다. (그들에 따르면) 그러한 성에 대한 "억압적인" 태도들은 아이들이 "성적인 존재"로서 충분한 잠재력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그들의 성적인 성향을 표현하는 것을 막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성교육은 임상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모든 정보들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즉 성교, 번식, 성병, 자위, 동성연애, 산아제한, 낙태 그리고 피임과 같은 인간 행동 양상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매리 칼데론(Mary S. Calderone) 박사는 SIECUS(Sex Information and Education Council of the United States, 전미성교육자문기관, 1964년)라고 알려진 기관의 기초를 세운 사람인데, 이 기관이 세워진 주된 목적은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서의 성교육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무신론자들의 집단인 전미인본주의협회(American Humanist Association)는 이 사람을 1974년에 "올해의 인본주의자"로 선정한 바 있다. "SIECUS 연구 지침서" 1,5,9,10장에서는 무너져가는 전통적 가치관을 주된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자유방임적인 인본주의 철학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기독교 윤리를 멸시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동성연애를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낙태와 성병의 유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본주의 교육자 중의 하나인 폴 블랜샤드(Paul Blanshard)는 "전미인본주의협회"의 기관지인 <휴머니스트, Humanist> 지에 기사를 실었는데,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75년 인생을 뒤돌아보며 사뭇 만족한 듯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삶은 종교적 미신에 대한 완전한 반항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한 아이가 비록 16년 동안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글 읽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의 마음이 가정에서 배운 종교적 미신에서 벗어나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매우 성공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인간 역사를 통해서 어떤 짧은 기간일지라도 이 세상은 "정직한 의심"에 따라 이끌려 왔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두 말할 나위없이 "의심," 즉 자기들의 입장과 달리하는 모든 종교적인 교리들에 대한 의심은 인본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미덕이다.
1983년에 발행된 <휴머니스트> 지에 글을 실은 존 던피(John J. Dunphy)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투쟁이 공립학교 교실에서 교사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새로운 신앙의 개종자이며, 자기들이 해야 할 역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나는 이 투쟁에서 그들이 이길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니까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교실 책상 뒤편에 서 있는 "새로운 신앙"의 개종자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이 과연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종류의 "신앙"인가? 던피는 계속 말한다. "그들(교사들)은 특별한 종류의 성직자들이다. 그들은 유치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가르치는 모든 과목들을 통해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전달하는 데에 (교회의) 강단 대신에 학교 교실을 사용하고 있다. 교실은 옛 것과 새 것이 싸우는 씨름판이 되어야 하며,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즉 부패한 송장과 같은 기독교와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신앙의 싸움 말이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학생들이 읽고, 쓰고, 계산하는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오늘날 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와 나에게 무슨 의미죠?" 그것은 인본주의 교육자들이 당신의 동의없이 하나님과 가족과 국가에 대한 당신의 자녀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데 책임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출판된 대부분의 사회문제 연구 서적들은 그 서문이나 교사용 지침서들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전통적인 가치관을 주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어떤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전통적인 가치관을 배운 채로 학교에 들어왔다면 그는 정신적인 손상을 받은 것이기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자들은 현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2세의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 체계로 교육시킨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 성장하더라도 그 가치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에 다니기 전에 그럴 수 없다면, 그 아이를 위한 차선책은, 가능한 한 이른 나이에 그 아이가 받은 가정환경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라면 이와 같이 가치관을 바꾸기 위해 재교육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 과학자들은 초등학교 수준에서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당신은 "소위 기독교 국가라는 곳에서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자, 바바라 모리스(Barbara Morris)는 [공립학교에서의 인본주의 신앙, the Religion of Humanism in Public Schools]이라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오늘날 교육과정에서 역사, 수학, 문학, 언어, 사회학, 성교육, 환경교육학, 가정 경제학 등 모든 과목들은 인본주의적 신념들을 장려하는 매개체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수년 동안 끊임없이 쇄도하는 인본주의적 영향은 인본주의적 교과서들을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것으로써 교사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인본주의 신앙의 선교사가 되도록 훈련되었습니다. 이렇게 지난 수년 동안 인본주의적 영향은 고착되어 저변에 깔려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지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와 학교가 인본주의 교리를 수용하도록 결정해 버린 것입니다. 학교에는 인본주의를 장려하는 궁극적인 장치인 '가치관 교육'이 있습니다."
가치관 교육이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혹자는 교사들이 그 교육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참으로 그것은 사실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가치관을 이끄는 것을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교사의 목소리, 옷차림, 그의 품행 등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가치관은 전달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