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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5:1-8 2022년 나의 열매는 221009 주일
사진)가을의 소감,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벌써 10월 중순, 이제 겨우 두달하고 20일 남았습니다.
주보는 열두장 발행하면 올해는 지나갑니다.
날씨마저 갑작스럽게 추워져서 겨울 준비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시인은 세월의 빠르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이 10대 때는 기어가는 듯하고, 20대 때는 걸어가는 듯하고, 30대 때는 뛰어가는 듯하고, 40대 때는 수레를 탄 듯하고, 50대 때는 말을 탄듯하고, 60대 때는 나는 듯하고, 70대 때는 바람처럼 스쳐가는 듯하고, 80대 때는 번개처럼 지나간다.”
어떤 분은 아예 이렇게 구체적으로 세월의 속도를 말하기도 합니다.
“세월의 빠르기가 10대 때는 시속 10Km로 달리는 것과 같고, 20대 때는 시속 20Km, 30대 때는 시속 30Km, 50대 때는 시속 50Km, 70대 때는 시속 70Km, 90대 때는 시속 90km로 달리는 것과 같다”
사실, 세월이 빠르다는 것은 우리의 느낌일뿐이지 세월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습니다.
하루는 24시간, 그 하루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일뿐 모든 사람에 시간은 동일하게 돌아 갑니다.
다만 똑같은 분량의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월이 빠르게도 느껴지고, 느리게도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사용의 질에 따라 인류의 발자취는 천차만별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1년 열 두달 중 열 달 가까이를 보내고 두 달 남짓 놓고 있습니다.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
이 표를 보시면 올 해가 정말 얼마남지 않았구나 실감이 나실 것입니다.
자, 얼마남지 않은 2022년,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람있게 뜻있게 보내야 할까요?
오늘 성경 본문 요한복음 15:1-8 말씀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유명한 포도나무의 비유로 포도나무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포도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을수 있다는 말씀과, 우리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나님게 영광이 돌려지고 우리가 비로서 주님의 제자가 된다, 즉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다, 열매없는 그릿도인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글은 아주 아름다운데, 사실 상당히 우리를 긴장시키는 말씀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봅시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앞으로 남은 시간 보다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온 시간, 2022년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면 답이 나옵니다.
지나온 기간에 열매를 많이 맺었다면 그대로 계속하면 될 것이고, 만약 지나온 시간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빨리 고쳐야 열매를 많이 맺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 볼 때,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었는지 맺지 못했는지를 돌아 볼려면 기준이 있어야 할텐데,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요?
신앙생활(信仰生活)
만약 우리가 회사라면 먼저 손익을 따져 봐야겠지요.
이윤을 남겼는지, 손해는 보지 않았는지를 먼저 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고, 주님의 몸인 교회이며, 신앙인들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사실 경제적인 이해 득실 문제는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더 잘하고 계시기 때문에 굳이 제가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돌아 보아야 하는데, 지난 열 달 가까운 세월동안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요?
먼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심적인 문제인 예배생활의 열매를 돌아 봅시다.
현재도 코로나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가 점차 소강 국면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예배도 점차 활발하게 진행되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도 코로나의 여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교회 나오기를 주저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의 예배는 코로나 이전상태로 완전히 회복되었는가? 아닙니다.
주일 예배, 찬양예배도, 수요예배도 아직 코로나 이전 상태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분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올해 남은 세월은 예배생활을 회복하는 일에 우리 모두 힘을 내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의무이며, 권리이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박해를 받을 때, 초대교회는 박해를 피해 지하묘지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고, 토굴을 파고 들어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림)데린구우 지하도시와 카타콤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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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잘못된 생각을 하는 교인들은 그러겠지요.
아니 국가에서 모여서 예배드리지 말라고 하면 집에서 혼자 예배하면 되지 굳이 목숨걸고 지하묘지에 숨어 들어가 예배해야 하느냐고?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지 얼마 안되던 시기, 밥으로 말하면 밥이 막 퍼서 따끈 따끈한 것과 같은 시기에 기독교인들은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거룩한 마음으로 충만돼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정부에서 모이지 말라, 믿지 말라 하면 믿는 것은 자유니까 믿더라도 숨어서 혼자 믿고 혼자 예배하면 되지 꼭 목숨 걸고 모여야 했느냐는 말은 그 당시 기독교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믿는다면 반드시 교회공동체에 나가서 함께 예배하는 것이 믿음의 길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히브리서는 당시 핍박받던 기독교인들이 많은 상황에서 그러한 핍박을 몸으로 당하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대가 가가울수록, 핍박이 더 강해질수록 모이기에 힘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코로나 상황에서 전염병의 확산 방지, 새염구원의 필요성 때문에 불가피하고 모임을 스스로 제한하고 가정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도 했지만 예배는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공동체로에 모여서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코로나로 인하여 제대로 예배생활을 하시지 못하신 분들은 이제부터라도 모이기에 힘쓰셔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교적 신앙을 본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번에는 지난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말씀생활의 열매를 돌아보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 예배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말씀, 그리고 설교입니다.
신앙생활을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말씀은 골격이요, 장기요, 근육입니다.
사람이 살아 갈려면 골격, 그리고 장기, 근육이 중요하듯이 신앙생활에서 말씀은 전부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대의 신앙인들은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공쳤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예배에서 말씀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의 말씀과, 선포되는 말씀인 설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엘리야나 선지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사람의 말과 문자는 제한적이어서 하나님께서 그때 주신 말씀은 이 시대에 그대로 적용할수 없습니다.
따라서 설교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이 시대에 사람들이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예언자들이 선포하던 시대의 의미그대로 들을수 있도록 성령의 조명과 인도를 따라 재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설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나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말씀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알아 들을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생활은 둘다 잘해야 합니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고 그 뜻을 깨닫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깨달은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말씀이 자기의 삶 속에 녹아들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록된 말씀의 어려움은 이해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은 적어도 지금부터 3500년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여 주님 오신 이후까지 기록이 되었으니 적어도 1600년 동안 40여명의 기록자들에 의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때 역사적 상황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 성경을 원문 그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훈련받은 주의 종들이 있어야 하고,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예배중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조명과 인도자의 지도가운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도 열심히 새겨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일, 그리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새겨 듣는 일과 함께 정말 중요한 것은 들은 말씀을 체화(體化), 육화(肉化)하는 일입니다.
삶속에서 말씀을 내 몸으로 실천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과 교훈 나쁘다거나, 성경의 교리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안나와도 성경의 교훈은 다 잘 압니다.
그래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때로 비난을 듣습니다.
그들이 두고 쓰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말은 잘해!”
여기서 우리가 우리 뒤를 돌아 봅시다
지난 1년 가까운 세월에 우리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했는지?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열심히 들었는지?
그리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려고 부단히 힘썼는지?
여러분 스스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성경읽기를 게을리하고, 설교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그리고 읽고 들은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지 못했다면 올해의 남은 두 달여의 기간에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 말씀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단 말씀이 되고, 여러분의 삶속에서 체화되어 믿음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올해의 지난 시간들을 보고 미진한 것은 다시 시작하고, 잘하던 일들은 더 잘하자는 의미에서 예배생활의 열매, 말씀 생활의 열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생활의 열매가 있고, 말씀생활의 열매가 있다면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에 열매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의 신앙에서 참 중요한 기도와 찬양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잘 할수 있기 때문에 문제없이 잘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서 참으로 힘든 것이 전도의 열매, 다른 사람을 권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열매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전도의 열매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도와 찬양은 본인이 은혜를 받으면 혼자서 골방에서도 할수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안되지만 전도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부딪쳐서 전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런데 전도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차별없이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전도는 이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면,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해라“입니다.
사는 길을 아는데, 죽음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기 사는 길이 있소하고 말해 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걸하지 않으면 살인방조죄가 되는 겁니다.
에스겔33:7-9
7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전도는 두가지 차원에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마땅히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전도의 또 하나의 측면은 사랑입니다.
죽는 길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가고 있는 사람을 알고도 알려주지 않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요?
사랑이 없는 것이요, 인정머리가 없는 거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러시겠지요?
말해도, 전도해도 듣지 않는 걸 어떻게 해요?
네, 전해도 듣지 않는 건 아까 우리가 보았던 에스겔서의 말씀처럼 우리 책임은 아닙니다.
듣고도 믿지 않는 그들의 책임이지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세요.
분명히 말씀드려서 내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이 땅에서도 복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서 불도 꺼지지 않고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고 했을 때, 그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한 두 번 권하고는 안들으니 할수 없지 하고 포기할수 있을까요?
포기할수 없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지요? 아멘입니까?
그럴 경우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권해 드렸습니다.
”믿음은 권한다고 믿음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말씀을 듣게 하라, 혼자서는 성경을 읽을수도 읽어도 도움이 안되니, 예배 자리에 출석을 시켜라. 일주일에 한시간 예배당에 와서 앉아 있을수는 있지 않나? 예배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믿음이 생길수 있다.“ 이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안된다면 오늘은 또 다른 제안을 드려보겠습니다.
요즘은 다 웬만큼 잘 사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재산에 대한 관심은 굉장합니다.
사회에서 보는 것도 그렇고,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봐도 그렇고, 연세많은 부모님들은 자식들 눈치 때문에 재산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저 재산이 다 내껀데...하는 생각에 부모님이 돈 쓰는 것을 눈을 부릅뜨고 본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기 명의로 된 재산도 함부로 못쓴다는 겁니다(저번에 2층에 에이스 건설 들어오기전에 건강의료보조기구 ...)->부모님이 사간 보조기구를 자식들이 와서 반품!!)
부모의 재산을 부모들이 마음대로 못한다?
택도 없는 소립니다. 부모님이 그 재산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피땀흘려 고생했고, 쓰고 싶은데 안쓰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모았는데, 먹고 살만 하면서도 부모님 재산에 눈독 드린다는 것, 용납할수 없습니다.
제 형편을 조금 아는 분들은 ”목사님이야 가진 재산이 없으니 그렇게 큰 소리칠지 몰라도 재산있으면 그렇게 못합니다.“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건강하게 잘 커서, 공부할 만큼 하고, 직장 잘 다니고 잇고, 결혼해서 궁하지 않게 살면 그거 된 거 아닌가요?
자기들이 벌어서 살 생각을 해야지 왜 부모님 재산에 눈독을 들입니까?
기부 천국 나라가 어딘지 아세요?
미국입니다.
우리도 과거 어렸을 때에 미국인들의 기부를 받아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도 숭실대학교 석사과정을 공부할 때 미국 사람이 기부하는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분 얼굴도 모르고 받았어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미국은 규모있는 가정에서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나가서 독립해야 한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기들 살아 생전에 쓸만큼 쓰고 나머지는 기부하니까 미국이 세계에서 최고의 기부국가가 된 것입니다.
하여튼 제가 드리고자 하는 또 하나의 전도 방법은 이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도 교회에 나와서 앉아 있을수가 없다면 앞으로 내 재산은 나 쓰고 남으면 전부 전도비로 쓰겠다.“선언하시라는 것입니다.
저는 재산이 있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성경읽기 대회, 성경암송대회, 성경 웅변대회를 개최해서 어린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고 싶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교회의 내일이 걸려 있든요. 기금을 신학교에나 기독교방송국에 넘겨 주면 내가 죽은 후에도 해마다 전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수님 오실 때까지 전도할수 있습니다. 재산 멋지게 쓰는 좋은 방법 아닌가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도하고 싶다면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도전을 줄 수 있고, 그래도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면 자녀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주신 재산, 쓰고 남은 재산, 그렇게 사용하면 누가 되었던지 전도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왜, 제가 성경을 읽기를, 말씀듣기를 그렇게 강조하느냐?
저는 스스로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았고요, 어떤 성경 암송대회에 나가서 요한복음 14장, 15장, 로마서 8장, 히브리서11장을 암송해서 특등상을 탄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암송하면서 믿음의 큰 확신을 얻었거든요.
여러분, 전도해서 지옥갈 영혼들을 살려 내야 합니다.
전도는 사명이고, 내가 믿어 구원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두 달여 남은 올해 꼭 전도의 열를 맺으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예배의 자리에 앉혀 놓기라도 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2022년 나의 열매는?
올 해가 아주 기울기 전에 여러분이 맺어야 할 믿음의 열매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생활로 열매맺으시기 바랍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읽기와 묵상,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삶속에 체화되는 말씀 생활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전도의 사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던지는 마음으로 힘써 전도하여 전도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우리도 한 해의 마지막 시기를 살면서 이제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 좋은 포도를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다“고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좋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예배생활의 열매, 말씀생활의 열매, 그리고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올해의 남은 두 달여 동안 이러한 열매를 꼭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