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오월동주
“지부장님, 혹시 장유파에서 마약 거래를 트자고 제안하려는 건 아니겠습니까?”
잠자코 있던 삼봉이 자기 생각을 드러냈다.
“장유파가 어방배달을 마약 거래의 파트너로 생각한다고? 설마?”
문도가 책사 삼봉이 꺼낸 뜻밖의 의견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는데? 네가 어제저녁에 부산 유태파가 장유파하고 마약 거래를 하는 것 같다고 하지 않았어?”
함께 식사하면서 문도가 했던 말이 기억난 정훈이 일리가 있다며 수긍하고 나섰다.
“그랬지. 근데, 장유파가 유태파한테서 사들인 마약을 김해 유흥업소에 팔려다가 삼방파한테 즉사하게 터지고 손 뗐었거든!”
문도가 장유파는 이제 김해 시내를 함부로 넘보지 못할 거라며 도리질했다.
“그러니까 장유파가 직접 김해 유흥업소를 접촉하는 대신에, 업소에 술안주 배달하는 어방배달하고 계약해서 간접적으로 마약을 공급하려는 생각일지도 모르잖냐?”
정훈이 자기 생각을 설명하면서 어방배달 사장 강철에게 시선을 보냈다.
“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장유파가 김해 시내에 마약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삼방파하고 일전을 치러야 하니까, 우선 손쉬운 방법으로 우리 어방배달을 통한 공급을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강철이 정훈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문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다면, 내일 만나서 만약 그렇게 나오면 어쩔 거야?”
문도도 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대책을 물었다.
“그러게? 참, 이 경사님! 해경에서도 마약 단속을 한다면서요? 고향이 진주라던데, 혹시 진주 이병율파의 마약 거래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까?”
문도를 통해서 장유파와 이병율파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정훈의 말을 전해 들었던 강철이 확인차 물어봤다.
“맞아요! 그러잖아도 오늘 촉석루 앞에서 우연히 두 조직이 접선하는 걸 목격했어요. 틀림없이 마약 거래가 있었을 겁니다. 그 바람에 지켜보다가 남강 둔치에서 그 쌍칼하고 이병율파 조직원들과 크게 한 판 붙을 뻔했지요. 여기, 삼봉 씨 덕분에 배 타고 건너오던 이병율파 열 명 정도를 물리치고 우리가 이기긴 했지만요. 하하.”
정훈이 옆에 앉아있는 삼봉을 치켜세워주며 웃었다.
“아, 그랬군요. 그럼, 이무계가 오늘 이병율이한테서 산 마약을 김해 시내에 뿌리려고 하겠네요? 그런데, 장유파는 지금까지 마약을 부산 유태파에서 구입한 걸로 아는데, 구입처를 바꿨다는 얘긴가요?”
강철이 조폭들이 거래처를 그렇게 바꿔도 괜찮은가 싶어 물어봤다.
“그놈들이야 값만 싸면 얼마든지 구입처는 바꾸겠지요. 다만 그랬을 때, 기존 거래처의 항변에 당당하게 맞설만한 자신이 있어야 할 거구요.”
정훈이 조폭 사회에서는 돈이 최우선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유파가 유태파에게 맞선다고요? 그건 어려울 겁니다. 장유파는 기껏해야 30명 남짓이라서 25명인 삼방파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유태파는 자체 인원만 40명 정도고, 조직원이 30여 명인 영도파와 밀착되어 있어서, 합하면 70명이나 됩니다. 장유파가 감히 유태파에 맞서지는 못하지 싶은데요?”
김해를 넘보는 부산 조폭들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강철이 도리질을 했다.
“아, 유태파가 영도파와 밀착되어 있군요! 70명이라.. 그런데 이병율파가 얼추 30명은 되니까, 장유파 30명과 합하면 60명은 되지 않습니까? 10명만 보충하면 70명이 되니까, 쪽수로는 유태파와 다이다이가 되는 셈이네요. 하하.”
정훈이 장유파와 이병율파가 연합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 그래서 이무계가 어방배달을 점찍은 모양입니다! 어젯밤에 출동한 오토바이 부대 전사만 16명이나 됐다면서요?”
삼봉이 무릎을 ‘탁’ 치며 어젯밤 첫 번째 전사인 짱구를 돌아보고 웃었다.
“그러네! 이무계가 아주 꿩 먹고 알 먹으려고 너하고 만나자고 한 게 분명한 것 같다.”
책사 삼봉의 의견은 가급적 따르는 문도가 틀림없다는 표정으로 강철을 쳐다봤다.
“나한테 마약 거래를 미끼로 해서 만약에 유태파랑 장유파 사이에 알력이 생기면 우리 애들을 동원하겠다? 하하. 웃기는 자식이네, 이무계! 내가 삼방파 보스 강철이 형 동생인 줄 알면, 기겁하고 나자빠지겠구먼! 큭큭큭.”
강철이 어이없어 파안대소하고 만다.
“대충 감 잡았으니까, 이제 내일 만났을 때 어쩔 건지 작전을 세워야 될 거 아니야?”
문도도 따라 웃으며 좌중을 둘러보고 탁자 앞으로 당겨 앉았다.
**
다음 날 낮 12시, 김해 강변장어타운의 장어구이 전문점 ‘두레박’ 2층 별실 좌석 식탁.
장유파 두목 이무계와 막 인사를 나눈 어방배달 사장 박강철이 직원인 짱구와 나란히 앉아 있는데, 이무계 옆에 함께 나온 중간보스 물소가 배석하고 있다.
어제 이무계와 통화할 때만 해도 문도와 함께 나올 생각으로 친구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에 쌍칼 부대와 김해중앙병원 주차장에서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혹시 오늘 쌍칼이 따라 나올까 봐 짱구로 대체했다.
“이렇게 나와 줘서 고맙소. 듣던 대로 사장님이 아주 젊으시오. 아직 서른도 안 돼 보이오마는.”
서른여덟 살 이무계가 무게를 잔뜩 잡고 첫마디를 건넸다.
“예, 이제 스물여덟 됐습니다. 어제는 미처 몰라보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강철이 꼿꼿한 자세로 머리만 약간 숙여 예의를 표했다.
“아이구, 실례랄 게 뭐 있소? 내가 다짜고짜 전화했는데, 사업하기 바쁜 젊은 사장이 장유파가 뭔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허허.”
이무계가 다시 한번 자기가 폭력조직 장유파 두목임을 강조했다.
“나중에 좀 알아봤더니 장유파가 장유면 코아상가 사거리 주변을 다 잡고 있는 조직이라면서요? 사장님 연세도 많아 뵈지 않는데,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강철이 입술에 침은 발라가며 이무계를 비행기 태워 준다.
“아이구 뭐, 존경까지야. 허허. 하기사 내가 이 자리까지 오는데, 힘은 좀 들었소! 여기 우리 물소가 고생 많이 했지. 허허.”
강철의 립서비스에 말려든 이무계가 체통 없이 헤벌쭉거렸다.
“장어는 간장구이 양념구이 중에 뭐로 시킬까요?”
두목의 주책없는 행태에 중간보스 물소가 얼른 화제를 주문으로 돌렸다.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걸로 시키시지요.”
강철이 이무계를 자꾸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달리 부를 마땅한 호칭도 없거니와, 듣자 하니 이무계가 장유면에서 제법 큰 아구찜 식당을 운영한다는 소문도 있기 때문이다.
이무계는 담백한 것보다는 화려한 걸 좋아하는지 양념구이를 주문했고, 강철의 동의를 얻어 소주도 시켰다.
주문 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무계가 행동대장인 쌍칼을 데리고 나올 줄 알았는데, 중간보스를 대동해서 약간 의아스러웠다.
어젯밤에 삼봉이 팔매질한 5백 원짜리 동전을 면상에 정통으로 맞았다더니, 어쩌면 얼굴 부상이 심해서 남 앞에 나서기 어려울 지경이 됐는지도 모른다.
그때 강철이가 오토바이로 쌍칼을 공격했지만, 헬멧과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서로 면대해도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 귀한 시간을 내셔서 저를 보자고 하신 데 대해 먼저 감사드립니다. 저한테 도움 될 사업상 일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엽차로 입가심을 한 강철이 정색을 하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 식사하고 술이나 한잔씩 나누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젊은 사장이라 역시 성질이 급하시구먼, 허허. 그래요, 이왕 바쁜 사람들인데 본론부터 얘기합시다. 박 사장이 우리 사업을 좀 도와줬으면 하요!”
“사장님 사업을 도와달라고요? 무슨 사업 말씀입니까?”
“혹시 들어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김해 시내 유흥업소에 물건을 좀 공급할라고 하요. 그런데, 어찌나 김해 조직 텃세가 심한지 몇 달 전에 우리 애들이 심하게 다치고 왔었소.”
천천히 설을 푸는 이무계가 강철의 눈동자 변화를 주시했다. 장유파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 파악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무슨 물건이길래 김해 조직에서 텃세를 부렸을까요?”
강철이 시치미를 뚝 떼고 처음 듣는 얘기인 척 두리번거렸다.
“뭐, 물건이 좀 귀한 것이기는 하요. 그만큼 이익도 크게 따르는 물건이고. 그래서 장유면에 사는 우리가 직접 김해 시내에 공급하기가 어렵겠다 싶어서, 우리 박 사장님 도움을 좀 받을까 해서 보자고 한 거요.”
이무계가 힘들게 운을 떼고 강철의 표정을 계속 살핀다.
“귀한 물건에 이익도 크다면,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게 따르겠네요? 저야, 오토바이로 물건 날라다 주는 사람 아닙니까? 적정한 보수만 주어진다면야, 내용물이 무엇이든, 특별히 배달에 제한을 두지는 않습니다.”
강철이 어젯밤에 문도네와 함께 숙의한 대로 마약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슬슬 덫을 놓았다.
그 말을 들은 중간보스가 갑자기 이무계 대신 대꾸하며 나섰다.
“아, 그래요? 역시 화끈해서 좋소! 구매자 모집과 관리는 우리가 할 거니까 너무 염려 안 해도 됩니다. 어방배달은 물건 배달 외에 명함판 광고지를 업소에 좀 뿌려주고, 화장실 같은데 스티커나 좀 붙여주면 되요. 광고 문구만 읽어서는 일반인은 뭔지 잘 모르고, 물건이 필요한 사람은 금세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니까, 특별히 걱정할 건 없어요.”
중간보스 물소가 은근히 어방배달 임무의 난이도와 위험성을 축소하려는 표현을 썼다.
“뭐, 그 정도면 우리 애들이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짱구야 어떠냐?”
강철이 슬쩍 수하인 짱구에게 토스하며 물었다.
“예, 그런 거는 주문한 업소에 배달하고 오면서 근처 다른 업소에 들러서 뿌려도 됩니다. 높은데 계단 오르기 싫어서 꾀부리는 애들도 있겠지만, 수당만 넉넉히 주면 극장이고 어디고 다 뿌리고 붙일 겁니다. 우리 애들 50명이 뛰면, 하룻밤에 김해 시내 학교만 빼고 어디든지 다 붙일 수 있습니다. 아, 경찰서 화장실에는 붙이면 안 되겠지요?”
고딩이 짱구가 어른들 놀려 가며 별소리 다 하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 그래? 이 직원은 어린데도 아주 총명해 보이네! 허허.”
이무계가 흡족한지 어방배달 직원들을 믿을 수 있겠다는 듯 칭찬했다.
중간보스 물소도 속으로는, ‘저놈도 그제 밤에 수로왕비릉에 왔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는 자기들 편이 되어서 힘써줄 줄로 착각하고 만족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면 배달에 대한 보수는 어떻게 정하면 됩니까? 저희는 대부분 무게로 정합니다만, 물건이 크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물건이 뭔지 구체적으로 말은 안 해줬지만, 강철은 마약류라는 것쯤으로 눈치챈 듯 연기하며 변죽을 울렸다.
“아, 그렇소. 내용물이 뭔지 말할 수는 없지만, 무척 가벼운 거요. 커 봤자 포장이 담뱃갑 하나 정도 크기요. 그러니까 그냥 한 개당 얼마로 정하면 좋겠소만.”
중간보스 물소가 보스 이무계의 눈치를 보면서 제안했다.
우직해 보이지만, 덩치가 별명인 물소에 합당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듬직한 체구다.
“좋습니다! 그럼 한 개당 얼마 정도 생각하십니까? 저희도 위험부담을 상당히 안고 뛴다는 걸 고려해 주시고요.”
강철이 마약 배달 수수료인 한 개당 단가를 물으며 장유파 두목 이무계를 빤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