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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세련의 또래 글방 원문보기 글쓴이: 짝꿍*^^*
2011년 1월 3일 월요일 눈...눈...몹시도 많이 내리다
아침 출근길에 시어머님이 한의원을 가시겠다고 따라 나섰다. 남편이 한의원까지 모셔다 드릴 때까지만 해도 하늘은 말짱했다. 방과후수업이 끝날 때쯤 눈발이 희끗희끗... 그저 울산에도 눈송이가 날리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농협에서 물품 대금을 송금하고 나섰을 때는 깜짝 놀랐다. 불과 5~6분 사이에 세상은 온통 흰색이 되어 있었다. 엔진도 식지 않은 자동차마저 눈옷을 입은 채였다. 농협에서 자동차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우체국까지 갔을 때는 이미 길까지 미끄러울 지경이었다. 차에서 내려 20여초 걷는 동안 온몸은 눈으로 뒤덮일 정도였다.
송금과 입금, 계좌이체 등의 절차를 마치고 나오는데 문득 시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떻게 됐을까? 시간을 계산해 봤다. 최대한 잡아서 기다리는데 30분, 진료 받는데 30분, 보통 사람의 걸음이면 10여분의 거리지만 노인의 걸음으로는 30분,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 불과 20분도 안 됐으니까 집에 가셨겠다. 나름 계산을 하고 집에 왔는데 아뿔싸~ 현관문은 잠긴 채였다. 어떻게 된 거지? 이 눈 속에 미끄러지기라도 했으면 정말 큰일인데...
가방만 던져 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핸도폰도 없는 시어머니를 찾아 우선 한의원엘 갈 요량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눈으로 엉망이 된 복도를 쓸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입구 현관 유리창 밖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꼬마눈사람. 시어머니였다. 자그만한 체구에 눈을 덮어쓴 시어머니는 그대로 눈사람이었다. 눈밭에 낙상하지 않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아장아장 걸어오는 시어머니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자칫하면 불효로 이어질 뻔한 위기를 넘긴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아니~ 병원 진료 끝난 지가 한참 됐을 텐데 왜 이제 오세요?" 걱정이 안심으로 바뀌자 가벼운 질책을 했다. "내일이 네 생일이잖아? 갈치라도 한 마리 살까 하고 갔는데 눈이 막 퍼붓더라." 그래서 그냥 올 수밖에 없었다는 그 말에 눈물겨운 순간이었다. 소찬이지만 며느리한테 밥 얻어먹는 것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반찬이 신통찮아도 그냥 드시라며 옷에 들러붙은 눈을 탁탁 털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던 순간이 오랜 행복으로 남을 것 같다. |
첫댓글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혼자 눈물 찔끔 흘렸던 기억입니다.
곰여우님의 효심이 느껴지네요. 어리석은 중생은 부모님이 잘 드실 때는 외면하다가 병으로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니 이것 이것 해다가 조금만 드셔 보라고 애원하듯 보채곤 하니, 이 또한 병든 부모를 괴롭혀 불효 자식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지, 부모를 위함인가? 곰여우님의 뭉클해진 마음이 저에게 전염된 것 같아요.
참으로 오랜만에 따뜻한 눈소식으로 인사를 하시네요. 곰여우님의 글에는 항상 인간성에 대한 희망과 긍정 아름다운 사람냄새가 묻어있어서 향기롭답니다. 약간은 딱딱한 우리 카페를 부드럽게도 해주시고.
시어머님 덕분에 한 편의 단편동화가 완성되었습니다.감사할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