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이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리고 선한 눈매와 유순한 인상, 왜소한 체격, 그런데 이런 외모를 다소 배신하는 허스키하고 카랑카랑한 음성이 폭발하며 에너지를 발산할 때는 대구-경북 문화계의 지형을 바꿀 것 같은 위력적 기획과 문화 게릴라의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하던 재욱씨가 정말 우리 곁을 떠나신 게 맞나요? 이 사람 덕에 우리는 김덕수 사물놀이팀의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민족가수 장사익의 찬란한 음성을 대구 바닥에 편안히 앉아서 몇 차례나 감동하고 즐길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재욱씨가 홀연히 떠난 자리에 우리는 허탈하고 아연실색하여 이젠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무슨 기대감으로 문화생활을 누릴까, 길바닥에 주저앉아 방성통곡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과 계획이 태산 같이 많았을 텐데, 아리따운 부인 영미씨와 따님과 아드님, 사랑하는 문화운동 동지들과 선후배 지인들, 그를 아끼는 수많은 지역민들을 남겨두고 이 땅을 떠나야 했던 재욱씨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요? 그 며칠전 전항성씨가 재욱씨를 병실로 문병갔을 때 항성씨 손을 꼭 쥐고 놓지를 않더랍니다. 그 모양이 자신이 갈 길을 확실히 예감하고 있는 사람 같더라는 항성씨 말을 듣고 바쁘다는 핑게로 차일피일 문병을 미루다가 결국 일을 당하고 만 저는 너무나 애석하고 미안하고 자기가 미워 "종무이 이 씹새야! 니는 인간도 아이다"를 수십번 되뇌었답니다.
그러나 어쩐지 재욱씨는 우리 곁에 아직 머물러 있는 것도 같습니다. 솔 사무실에 들어서면 캐비넷에서 서류를 꺼내다가 뒤돌아서며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줄 것만 같고 사업계획이 난관에 봉착하면 어디선가 허스키 음성의 해결사가 나타나줄 것도 같습니다. 50킬로의 몸 안에만 재욱씨의 전부가 있다가 고스란히 없어졌다고는 아무리 아무리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실존적 감정과 기억속에 재욱씨는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것 아닐까요? 인간됨, 인격의 참된 모습과 가치는 역사가 지속하는 한 영원한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고 전태일과 김근태처럼 누군가에 의해서는 박재욱의 존재가 착실히 차곡차곡 기록되고 기억될 테지요! 재욱씨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저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내주신 것만 같은 재욱씨, 부디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