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래자의 반의지희(斑衣之戱)
솔향 남상선/수필가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한국효문화진흥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나는 1전시관 안내 해설을 하기 위해 전시관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고희(古稀)는 돼 보임직한 남자 한 분이 졸수(卒壽)의 연세 정도로 추측되는 노옹을 휠체어에 태우고 앞으로 오고 있었다. 말을 걸어 보니 휠체어 타고 계신 어른은 아버님이시며 93세라 했다. 요즈음 요양차 집에서 쉬고 계신 어르신인데 바람도 쐬고 싶고 진흥원 전시관을 관람하고 싶다 하셔서 모시고 왔다 했다.
휠체어를 밀고 있는 아들 노옹의 모습과 휠체어를 타고 있는 백발의 아버지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인생사 만고풍상 다 겪은 할아버지 성자 같으신 자애로운 모습과 그에 어울리게 효성으로 휠체어를 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순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휠체어를 밀고 있는 백발이 다된 아들의 허연 머리를 보는 순간 노래자의 반의지희(斑衣之戱) 고사가 연상되었다.
반의지희(斑衣之戱) 고사는 당(唐)나라 중기 이한(李澣)이 지은‘몽구(蒙求)’의 ‘고사전(高士傳)’에 나오는 말이다. 나이 70이 다 된 아들 노래자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알록달록한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며 춤을 췄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고사의 주인공 노래자는 일흔의 나이로 연만하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색동옷을 입고서 유희를 했고, 목전(目前)의 고희(古稀) 노인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부친을 휠체어에 태우고 전시관 관람을 나온 것이었다.
사람과 시대만 다르지 아버지를 위하는 효심은 매 한 가지로 현대판 노래자의 반의지희임에 틀림없었으니 이 어찌 가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고희 노인의 효성스런 모습에 매료되어 1전시관부터 5전시관까지 훌 코스로 안내 해설을 다 해드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전시관 관람시 요체(要諦)만 설명하고 발품을 판 것이 1전시시관 출구 왼 편에 있는 월남 이상 재 선생님 콘텐츠 앞에까지 와 있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충남 서천의 전통적 유학자 집안에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조부의 묘에 관한 소송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자 부친을 대신해서 감옥에 갔다. 감옥에 대신 가는 일이 요즈음은 불가능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탄한 재판관은 이상재 선생님을 사흘 만에 석방했다.
여기서 일단 생각해보자. 요즈음 같으면 아버지가 가야 할 감옥을 대신 갈 만한 자식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든 걸 이해타산 쪽으로 머리를 굴리는 현대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효도를 이상재 선생님은 몸소 실천하여 재판관까지 감탄시켰던 것이다
1전시관 마지막 볼거리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서 있는 동상 앞에까지 와 있었다. 아들 등에 업힌 어머니 동상을 보는 순간 박효관 시조와 반포보은(反哺報恩) 고사가 떠올랐다.
뉘라셔 가마귀를 검고 흉(凶)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긔 아니 아름다온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 박효관 -
반포보은(反哺報恩) 고사 내용을 요역하면 다음과 같다.
까마귀 어미 암컷이 둥지에 알을 낳고 20일간 품어 새끼가 부화되면 엄마 아빠 까마귀는 산야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벌레를 잡아다가 새끼들을 열심히 키운다. 어미 암컷 수컷의 힘겨운 정성과 사랑 덕분에 새끼들은 성장을 빠르게 한다. 이미 새끼들이 다 컸을 때는 암수 어미는 늙고 무기력하여 잘 날지도,먹이사냥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때 새끼들은 저희들 어렸을 때를 생각하여 엄마·아빠 까마귀를 둥지에 앉혀 놓고 새끼들이 벌레를 잡아다 어미를 부양한다. 이와 같이 까마귀는 효도를 하며 산다는 이야기이다.
반포보은 고사에서 보다시피 까마귀도 자신들 부모한테는 효도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불효해서 쓰겠느냐는 얘기다. 부보님을 소홀히 하고, 불효하는 사람들에게 정문일침(頂門一鍼)의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연유에서 까마귀를‘효조(孝鳥:효도하는 새)’,‘자조(慈鳥)’,‘반포조(反哺鳥)’라 부르기도 한다.
실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교훈적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옛날보다 현재는 문명이 발달된 시대다. 그로 인해 편리한 세상은 됐지만 옛날보다 행복하게 사랑을 느끼며 사는 세상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폭발적 인구증가로 생존경쟁이 치열해 져 인간성 상실까지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이렇다 보니 우리는 물질적으론 풍족해도 정신적으론 외롭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됐다. 인정도, 사랑도 없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 시대가 되었다. 사람다움아 없는 인성으로 살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불행해져 가는 삶의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우리는 2세들이 공부 잘하는 것보다 올바른 인성교육에 힘써야겠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어머니들은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하다. 요즘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공부 잘하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 온갖 극성을 다 부린다. 좋은 학원을 몇 개씩이나 보내는가 하면 좋은 대학 - 명문대, 일류대 - 진학을 위해 온갖 열정을 다 쏟는다.
내 교직에 있을 때의 얘기를 좀 해야겠다. 어머니들이 입학식이나 졸업식, 학교행사가 있을 때는 내교를 많이 한다. 그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우리 애는 영어 수학을 못하니 잘 좀 지도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게 일쑤 있는 일이었다. 지난 세월을 회고해 보니 이런 학부형들이 십중팔구였다. 그런데 기억되는 3, 4인 정도의 학부모는 결이 다른 분들도 있었다.
대부분 학부모들은 자녀들 공부 잘 하는 것 - 성적 올릴 생각이나 걱정으로 꽉 차 있는 것- 이 대부분이었는데, 3, 4인 정도는 공부보다는 올바른 인성교육을 생각하는 학부모였다.
< 우리 애는 공부 못해도 좋으니 사람만 제대로 만들어 주세요.>
하는 참 학부모였다. 물론 공부도 잘하고 인간성 좋은 사람도 있지만 둘 다 좋게 되기는 어렵다 봐야 한다.
우리는 자녀를 공부 잘 하는 사람으로 키우려 하지 말고, 부모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아들딸로 키워야겠다. 공부 잘하는 자녀보다는 올바른 인성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
아버지 감옥을 대신 가는 이상재 선생님의 인성으로,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미는 아들 노옹의 인성으로 키워야겠다.
‘현대판 노래자의 반의지희’내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첫댓글 반포보은
인성의중요성
잘 인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