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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여행2 - 차 없는 젊음의 거리, 상하이 번화가인 난징뚱루 (남경동로) 를 걷다!
10월 24일 12시 35분에 부산의 김해공항을 출발한 중국 동방항공 MU 5044 비행기는
근 2시간을 날아서...... 13시 25분(시차 1시간) 에 상해 푸동공항 上海 浦东
国际机场 (상해포동국제기장) 에 도착하는지라 비행기에서 내려 통로를 따라 들어갑니다.
지문 등록 부스에 이르러 여권을 스캔 한 후에 2번에 걸쳐 여덟 손가락과 엄지 2개등 열손가락
지문을 찍은후 모노레일 차를 타고는 공항 안으로 이동하는데 현재는 더 간략해 졌습니다.
입국장에서는 입국카드 종이 에 인적사항을 기재하는데 그 외에 호텔 이름과 귀국 날자
및 비행기편 을 적으니 호텔은 그냥 이름 만 적고 주소는 上海 나 Shanghai 라고 써도 됩니다.
그러고는 공항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주니 또 지문을 날인한 다음에 물어보는 법이 없이 여권에 스탬프
를 찍어 줍니다. 배낭을 찾아 2층 으로 올라가서 지하철을 타는 곳을 찾아 입구에 작은 부스인
서비스센터 에서 원데이 패스 One day pass 이리어피아오 一日票 를 1인당 18元 에 구입합니다.
1회권 을 구입하자면 지하철에 비치된 기계에서 첫 화면은 상하이 지하철 지도이니 아래쪽
에서 최종 목적지인 쭝산베이루 (中山北路 중산북로)역이 속한 1호선 을 선택하면
8元 이 뜨니 다시 2인을 선택해 16元 으로 바뀐후 아래쪽에 대금 지불 방법을 묻든
글자에서 Cash(현금) 를 선택한후 20元 지폐를 투입하면 표 2장과 거스름돈 4원이 나옵니다.
요금을 알고 있다면 첫화면에서 오른쪽에 8元 버튼 을 바로 눌러도 돠는데, 50원이나 100원 고액
지폐는 사용이 불가한 기계가 대부분으로 지하철표가 안나오면...... 중국인들은 휴대폰에 위챗
이나 알리페이로 결제하니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지라, 기계안에 거스름돈이 없어 그런 것입니다.
방법은 1. 금액을 잔돈까지 맞추어 넣는다. 2. 10위안 지폐면 8위안 거리 역을 지정하지 말고 10위안에
해당하는 역을 지정해 지폐를 넣으며 2위안 손해 본다. 3. 다른 기계에는 잔돈이 있을지 모르니 다시
시작한다. 4. 현지인 에게 화면을 보여 주고 그사람 휴대폰으로 결제를 부탁한 다음에 지폐를 건네 준다.
지하철 2호선 에 올라 1시간 05분만에 런민꽝창(인민광아장) 에 내려 1호선으로
환승해 쭝산베이루 (中山北路 중산북로) 역에 내려 남쪽으로 걸어서
Starr Hotel Shanghai (上海寰星酒店 ; 上海火车站 ) 에 체크인을 합니다.
1박에 542 元 인 이 호텔은 650m 지하철 중산북로역 North Zhongshan Road Station, 700m
버스 Shanghai Long Distance Bus Station, 750m 지하철과 기차 상하이역
Shanghai Railway Station 이 있으며 2.5km 자연사 박물관에 3.5km 인민광장이 있습니다.
9박 10일 중국 여행은 강남 수향 10곳 가운데 아직 보지못한 저장성(절강성)의 시탕 西塘(서당) 과 남쉬 南浔
(남심) 그리고 장쑤성(강소성)의 저우좡 周庄(주장), 퉁리 同里 (동리), 루지 甪直(록직), 무두 木渎(목독) 와
광푸 光福(광복) 에 제갈공명의 후손들이 세운 마을인 주거바과촌 诸葛八卦村 (제갈팔괘촌) 을 보려고 합니다.
난쉰구전(남심고진) 에서 진화(금화) 로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후저우(호주) 와 진화(금화) 및 란시
(난계) 를 보고 그리고 쑤저우(소주) 와 항저우 (항주) 에 이 도시 상하이(상해) 를 구경하려고 합니다.
여행후 결산을 해보니 우리 부부가 쓴 비용은 항공료와 보험료 937,000원, 9박 호텔비 590,000 원
도시 이동을 위한 기차와 택시비 203,000원 그리고 식비와 교통비에 입장료와
기타 잡비가 470,000 원 합계 2,200,000 원 이니.... 그럼 열흘 여행에 1인당 110만원 이 든 셈입니다.
호텔을 나와 남쪽으로 걸어서 상하이 기차역 에 도착해서는 내일 아침에 기차를 타고 쑤저우(소주)로 가야
하니 표 파는 곳 을 찾아보고는 지하철 1호선을 찾으니 3,4 호선은 바로 보이는데 1호선 이 보이지
않는지라 행인들에게 물어 지하로 내려갔다가 올라와 다시 물어 건물 왼쪽 끝 에서 표지판을 발견합니다.
請 問, 地铁 1号线 在哪儿 칭 원, 디테 이하오시안 짜이날? 나야 중국어가 초보라
4성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니 중국인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라.... 사전에
인쇄를 해서 가져온 여행계획서 의 저 칼라로 인쇄된 부분에 동그라미 를 쳐서 보여 줍니다.
물론 마눌의 휴대폰 에는 김해공항에서 데이터를 신청했으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파파고앱
을 클릭해서 한국말로 하면 화면에 중국어로 표시 되니 보여주면 되기는 한데....
그 보다는 내가 들고 있는 여행계획서 종이를 보여주는게 훨씬 더 간편하고 빠르기 때문 입니다?
내가 작성한 10일간 중국 여행계획서는 참고사항까지 포함한 때문에 25페이지 에 달하지만 당일분은
한 장 아니면 2장 이니... 호텔에서 나오면서 오늘 것 한두장만 주머니 에 넣고 다니면서 저
한장을 꺼내서 보여주는데, 상대방에게 보일 글자는 특히 크게 하고 칼라로 인쇄 했으니 보기 쉽습니다.
지하철 1호선 에 타고 3정거장째인 런민꽝창 人民廣場(인민광장) 역에 하차해 올라오니 난징동루가
아닌 난징서루가 표시되어 있으니조금 더 걸어서 드디어 지상으로 올라오니......
新世界城(신세계성) 건물이 보이는게 난징시루 (남경서로)가 아닌 난징뚱루(남경동로) 의 시작이네요?
여기 차 없는 젊음의 거리인 난징뚱루 는 예전에도 한번 와 본적이 있는지라 저 건물을 보니
알겠는데 조금 더 걸으니 第一百货商业中心 (제일백화상업중심), 다시 말해 제일
백화점 건물이 보이니 틀림 없습니다. 상하이는 총 16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하
구 들의 인구가 어마무시하니 100만이 넘는 곳이 허다하고 심지어 500만이 넘는 곳 도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널은 면적을 가진 도시는 충칭시로 어지간한 성(省)급 인데.... 대한민국 전체 영토의
80% 수준으로, 하지만 도심 지역 인구로만 따지면 700만이지만 광역시라 외곽 인구를
합치면 엄청난 숫자가 되며 베이징의 면적은 서울의 20배, 상하이의 면적은 서울의 10배 에 달합니다.
오늘 상하이 거리를 걸어 구경하면서 문득 상하이!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2011년 10월 13일에
발매된 오렌지 캬라멜 의 “샹하이 로맨스 (上海之戀)” 가 떠오르는 데.....
작곡은 조영수, 작사는 슈퍼주니어의 희철이 '우주대스타' 라는 명의로 지었다는게 떠오릅니다.
빠졌나 봐 빠졌나 봐 Lovin' my boy
빠질 거야 빠질 거야 너의 맘도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만날 My boy
100% 는 아녀도
Baby 쌰쌰쌰 오 나의 샹하이 러브
자꾸자꾸 나타나
Baby 쌰쌰쌰 대체 넌 뭐야
훌쩍훌쩍 날 울려
비행기를 타고 가야 만날텐데
만만치가 않아 않아 울먹울먹
양쯔 강을 건너건너 가고파도
돈이 없어 힘들어
그보다 앞서 1990년대 후반에 아이돌 그룹들의 댄스 음악이 휩쓸던 시절에
유일하게 트로트곡으로 젊은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노래가
있으니...... 1997년 9월 1일에 발매된 설운도 의 “사랑의 트위스트 ” 입니다.
학창 시절에 함께 추었던
잊지 못할 상하이 트위스트
나팔바지에 빵집을 누비던
추억 속에 사랑의 트위스트
단발머리에 미소가 예뻤던
추억 속에 사랑의 트위스트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난생처음 그녀를 알았고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그녀에게 빠져버렸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잊지 못할 추억에 트위스트
하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후 일본인들이 물러가면서 소득세 상위 랭킹은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인 중국인들이 대거 차지하는데.... 이들이 건설한게 차이나타운 (中華街 중화가) 이니
인천과 서울 및 부산이 유명했으며 화교들은 해방후 상하이와 무역을 통해 부를 움켜쥐게 된 것입니다.
중국어로는 당런지에(唐人街/당인가) 라 부르고 일본에서 츄카가이 (中華街/중화가) 라고 부르는데, 중화권
에서는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 등 일본 속의 차이나타운만을 부를 때는 쭝화지에 (中華街) 라고 합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후 항구가 개항하며 인천과 부산 청나라 조계지에 산둥성 출신 한족 농민공
들이 노동자 신분으로 유입되어 차이나타운이 최초로 형성되었는데.....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화교가 동남아 처럼 경제적인 실권을 쥐려고 한다고 지속적 으로 탄압 했습니다.
특히 박정희 정부가 화교에 가했던 탄압 중 하나가 1961년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법 으로 화교들의 부동산
을 압수하고 소유 규모를 제한하였으며..... 1963년 화폐 개혁 을 강행해 화교들이 모아온 재산을
죄다 몰수했고 심지어 중국집에서 쌀 사용 마저 금지하는등 온갖 종류의 화교에 대한 억압이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화폐 단위는 “환” 이었는데, 새로 “원” 으로 화폐를 바꾸면서 종전에 “환” 을 많이 가진
외국인은 교환을 못하게 만들어 중국 화교들의 재산을 빼앗앗으며, 쌀 사용 금지는 ‘영챔프’ 에
연재되었던 '내 파란 세이버' 란 만화에서 중국요리집 주방장이 화교 로 손화명(슨거허민) 이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화교촌을 중심으로 정부가 탄압으로
차이나 타운 을 와해시키다시피했으니...... 조선총독부는 하세가와쵸 ( 소공로 ) 를 새로 뚫었는데,
용산으로 군사 이동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화교 상권을 둘로 쩍 갈라 버렸습니다.
서울시청 앞 플라자 호텔 일대는 1970년대 초 재개발이 되면서 화교회관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결국에는 애물단지가 된 부지는 한화그룹의 플라자 호텔 이
되었으며 일부러 중국을 무찌른 민족영웅의 이름인 을지문덕에서 따와서 을지로 라고 지명을 개칭합니다.
화교들의 재산인 토지 를 빼앗았는데도 결과적으로는 서울특별시의 보상대책을 한국 정부 가
부작위 를 통해 이행하지 않았고 화교 공동체가 박살나는데.... 당시 화교들은 중화민국
국적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을 영주권자 로 인정하지 않고 장기거주 외국인으로 취급했습니다.
화교들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가 되는 것을 금지하니 이들은 아는 한국인을 대리로 앉혔는데
이 한국인들이 만약에 배신해 버리면 재산을 날리게 되는 것이며...... 화교들이 세운
고등학교는 학력을 인정하지 않는 탓에 대학에 가자면 다시 대입 검겅고시 를 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장개석은 김구 주석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이었 또
장개석은 카이로 회담 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관철시킨 사람이니
큰 은혜를 입었는지라..... 이승만은 장개석을 진해로 초대해 반공연맹 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국 정부도 대만과의 관계 때문에 화교에 대해 우호적으로 접근해 영주권을 주고 2003년
영주권자 지방선거 투표권, 2007년 외국인 공무원 임용등의 혜택을 주기 시작 했는데.....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교를하면서 대만(자유중국) 과는 단교 를 합니다.
그럼 한국은 대만에 대통령 특사 를 보내 부득이 단교를 한다며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으며 수교 하루
전날에야 주대만 대사가 대만에 통고 하는 식으로 했으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대만인들은 격분해 태극기를
불태우며 눈물을 흘렸는데 한국은 서울 대만 대사관 건물과 재산을 몰수 해 중화인민공화국에 무상으로 주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동방예의지국으로 공맹과 주자의 사상이 만개했던 유학의 군자국가로 어질고
착한 민족인데 왜 화교들에게 저토록 가혹하게 했느냐 하면..... 두가지 이유를 생각하게
하니 우린 단군의 후손 배달겨레로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강하니 타 민족 에게는 배타적 입니다.
합계 출산율이 2.1 은 되어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0.7~08 이니 100년후 한국 인구는 400만(700만?)
으로 예상되니....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더 낳길 바라기는 어렵고, 국가와 민족의 소멸을
막으려고 하면 부득이 동남아인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흑인들 까지도 대거 이민 을 받아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몇 년전 예멘 난민 400여명 이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을 하자 전국에서 반대 시위로 대한민국이
뒤집어 졌으니 저들이 정치적 박해가 아닌 경제난민 이라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난민심사 통과율은
40~50%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3% 정도로 인색하니 불과 십여명 정도가 될것인데도, 타 민족에
배타적이니 저 난리라? 또 보트피플 베트남 난민 들도 부산에 수용했다가 모두 외국으로 보내 버렸으니....
하기사 조선시대인 1653년에 일본 히라도로 가던 네델란드 배가 풍랑으로 난파돼 64명 중에 살아남은 하멜 등
36명이 제주도에 상륙했는데.... 이들을 1627년에 식수를 구하기 위해 내렸던 벨베데레(박연) 일행
3명 처럼 감금하고는 배에 실린 목향(木香) 94포(包), 용뇌(龍腦) 4항(缸), 녹비 27,000 등은 모두 압수 합니다.
고국으로 보내달라는 애걸을 거부하고 병자호란에 조총수로 부려먹은 벨베데레 처럼 만들려고 한양에 데려왔으나
2명이 청나라 사신앞에 귀국을 애원 하는 바람에 놀라 사신은 뇌물로 입을 막은후 2명을 죽이고 나머지는
전라도에서 노비 로 살게하다가 하멜등 일부가 탈출했는데 나라의 지리 가 서양에 알려지는걸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1543년 9월 23일 100명의 포르투갈인이 풍랑으로 가고시마 남쪽 다네가시마 (種子島) 에 표류하니 일본은 그들을
절로 인도해 숙식을 제공하며 배를 수리해 주고 부상자를 치료하며 도주 다네가시마 도키타카는 거금을 주고
조총 2자루를 구입 하는데..... 책임을 맡은 대장장이는 총신의 비밀 을 풀기위해 16세난 외동딸 와카 까지 바쳤습니다.
배를 수리해 포루투갈인들을 귀국 시켰으며 사위(?) 가 된 서양인으로 부터 조총 제작법을 알아내 서양
무기로 무장하고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며, 포르투갈과 스페인 및 네델란드인 들을 받아들여
천주교를 수용 하는데.... 쇄국정책으로 문을 닫기도 했지만 훗날 서구문명 을 받아들여 강국이 되었지요?
조선말 ~일제 시대에 중국과 연해주로 떠난 150만이 넘는 한국인들은 의병등 정치적인 동기도 일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먹고 살수 없어 떠난 경제난민 이며, 중국과 소련은 저들 불법 입국자들
(경제난민) 을 도로 한국으로 추방하거나 수용소에 가두지 않았으니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는....
두 번째는 해방후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 했기 때문인데...... 남한에는 공장(회사) 이 원래 적었던데다가
일본인 사장과 기술자가 물러가니 공장을 돌릴 돈도 없고 기술자도 없으니 한국인 노동자들이
공장 물품을 처분하면서 공장은 없어졌고 농업국가에 쌀 생산은 적은데 인구는 크게 불어나니 굶주립니다.
4월 봄철은 보릿고개 라고 해서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피지 않았으니 산과 들을 헤메며....
초근목피로 넘기니 길거리에는 굶어죽은 시체 가 널렸고, 기업이 없으니 대학 졸업자는
모두 백수, 룸펜에 세금 으로는 공무원과 경찰, 군인 월급줄 돈에도 모자라는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해서 일본인들이 두고 간 적산인 가옥과 토지에 공장 을 팔고 또 미국이 준 구호 물자를 시장에 내다
팔아 그 돈으로 간신히 국가를 운영하려니 국민소득이 80~90달러 (현재는 35,000 달러) 라
아프리카 케냐 보다도 가난한지라..... 살기 위해서 중국 화교들의 재산을 빼앗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국인들은 원래 악한 민족은 아니고 선하고 착하며 동정심이 많은 선량한 사람들로 인정도 많은
데.... 반만년 역사(실제로는 2,500년?) 에서 원나라의 일본 침공때 2번 몽골의 앞잡이 로 침략전쟁의
선봉에 선 것을 제외하면, 우리 스스로는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입니다.
그럼 “가난이 웬수” 라? 해서 “곳간에서 인심 난다” 라는 속담도 있지요? 동막골 영화
에서도 촌장이 우선 뭐라도 멕여야 겠다는 말 처럼.... 해방후 너무 어렵게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인 미국은 너무 먼 나라이니 그럼 상하이와 홍콩 이라....
홍콩에서 만들어진 영화 를 보면서 또 상하이를 소재로 한 노래 를 부르면서 한국인들은 상하이 여행을 꿈꾸었는데,
이제 나 같은 보통 사람도 벌써 상하이 여행이 4번째 이니.... 한국은 국민소득 35,000달러에다가 동남아와
아프리카 저개발국가들을 원조하는 부자나라가 되었고 전 세계가 한류 에 열광하니 문화 선진국까지 되었나 봅니다?
상하이시의 중심은 런민꽝창(인민광장) 다시 말해서 런민꽁위안(人民 公园 인민공원)
이니 여기 동쪽 보행자 거리를 난징뚱루(남경동로) 라고
하는데...... 조금 더 걸으면 지하철 2호선 역인 난징뚱루짠(남경동로역) 이 나옵니다.
난징뚱루짠(남경동로역) 에서 장난감 같은 꼬끼리 열차 를 타거나 아니면
15분 가량 걸으면 황푸강변에 자리한 영국등 서양인들의 조차지
였던 와이탄 (外灘 외탄) 이 나오고...... 강 건너에 동방명주 가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