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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한국사
 
 
 
카페 게시글
---高麗 宋명장 岳飛와 조선 개국공신 퉁두란.
心濟 추천 1 조회 436 13.12.30 09:0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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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2.30 11:12

    첫댓글 여진족의 소망은 명나라를 점령하는것인데 태조이성계는 20만대군으로 출격준비를 모두 마치고 최후의 진격명령만 남은 상태에서 병으로 갑자기 쓰러집니다. 소식을 들은 왕자들은 부왕이 곧 죽을 것이라 보고 정도전일파는 세자의 등극에 장애가 되는 대군들을 모조리 죽이기로 하고 서로 시기만 노리다 결국 왕자들의 승리로 태조이성계의 명나라정벌꿈이 좌절되고 맙니다. 태종역시 여진땅을 놓고 영락제와 신경전을 벌였는데 예전에 먼저 쳤어야 했다며 후회합니다. 그도 20만대군으로 출정을 준비하다 영락제가 여진땅을 조선에서 계속 다스린다라는 서한을 보내 양국의 전쟁은 불발되고 말았습니다.

  • 작성자 13.12.30 13:39

    한탕 했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 13.12.30 17:07

    history author님,
    해당기록을 올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 13.12.31 09:19

    이튿날 임금이 경회루(慶會樓)에 나아가서 좌정승·우정승과 이천우(李天祐)·이숙번(李叔蕃)을 불러 웃으면서,
    “어저께 경들이 성을 쌓자는 의논은 어찌 그리 겁약(㤼弱)한가? 일의 위급함이 도성을 수비하는 데에까지 이른다면 어떻게 하여서 나라를 구하겠는가? 무릇 물(物)에는 성쇠가 있으니, 황제가 부왕(父王)의 명이 아닌데도 스스로 즉위하여, 남쪽으로 교지(交趾)를 정복하고 북쪽으로 사막(沙漠)을 공격하는데, 무슨 겨를에 동쪽을 돌아볼 수 있겠는가? 과연 난국(難局)이 온다면 장차 거병(擧兵)하여 바로 쳐들어갈 것이지, 어찌 마땅히 성을 지키고 기다릴 것인가? 평양(平壤)과 의주(義州)의 성이 견고한 것 같지는 않으나, 우선

  • 13.12.31 09:21

    우선 처자를 두고 첩음(捷音)을 달리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태종 13년 계사(1413,영락 11) > 7월26일 (계묘) >
    하륜이 왜병을 끌어들여 명을 공격하자는 내용도 있는데 찾지를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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