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조산 내린 낙동정맥 갈림길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굴욕을 필요로 하는가를
어쩌면 삶이란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것인지 모른다
--- 김재진, 「국화 앞에서」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12월 22일(토), 흐림, 안개
▶ 산행인원 : 13명
▶ 산행시간 : 10시간 20분
▶ 산행거리 : 도상 17.1㎞(1부 10.7㎞, 2부 6.4㎞)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따랐음)
00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4 : 18 - 울진군 서면 쌍전리(雙田里) 산촌마을
05 : 20 - 산행시작
06 : 17 - 송전철탑
06 : 43 - 임도
08 : 47 - 진조산(眞鳥山, △908.4m)
09 : 13 - 낙동정맥 갈림길
09 : 42 - 임도
10 : 24 - 826m봉
10 : 43 - 임도
11 : 28 - 669m봉
11 : 56 - 광회분교, 1부 산행종료, 점심
12 : 44 - 옥방벨리휴게소, 2부 산행시작
14 : 10 - 872m봉
15 : 17 - 옥천암(玉泉庵)
15 : 40 - 울진군 서면 분천리(汾川里) 옥방교(玉房橋), 산행종료
1. 진조산 가는 길, 상고대가 피기 시작한다
▶ 진조산(眞鳥山, △908.4m)
동서울에서 오늘 산행의 진조산 들머리인 쌍전리 산촌마을 주차장까지 266㎞. 멀다. 네이버
가 예상한 운행시간 4시 8분. 더구나 밤이다. 죽령터널 지나고부터는 노면이 얼어 미끄러운
데다 안개까지 자욱하게 끼었다고 하니 운전하는 두메 님은 평소보다 갑절이상 힘들었으리
라. 그런 줄 도시 모르고 이골이 난 단잠에 푹 빠졌으니 미안스럽기 짝이 없다.
04시 55분. 기상하여 차창 밖으로 내다본 ‘쌍전리 산촌마을’ 주차장이 꽤 넓다. 이 너른 주차
장에 차는 우리 버스뿐이다. 한 움큼 냉기 들이마시며 문득 우러르는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다 못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다. 미진하던 잠이 확 깬다. 김영랑의 “별
보면 또렷한 마음이 어이면 늙으뇨”가 위안될까?
지상에는 헤드램프의 행렬이 장관이다. 열 지어 마을 뒤로 돌아 산기슭으로 접근한다. 담장
너머로 잠귀 밝은 강아지가 짖는 앳된 소리가 난다. 길은 있는 듯 없는 듯 무덤이 나오면 잠깐
풀렸다가 무덤 지나면 곧바로 흐트러진다. 고만고만한 산봉우리가 산재하여 독도하기가 까
다롭다. 하긴 확대한 지도에서 마루금 긋기가 심히 어려웠으니 GPS 앞세우고도 엉뚱한 봉우
리를 올랐다가 여기가 아닌가 벼 하고 뒤돌아서는 것이 과한 우세는 아니다.
송전철탑 지나고 잡목 숲에 부대끼는 것은 약과였다. 간벌한 나뭇가지가 아무렇게 잠복한 키
큰 산죽지대를 지나가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다. 임도 나와 숨 돌린다. 임도를 오른쪽으로 약
간 돌아 능선 마루금의 잘록한 안부를 향하여 오른다. 가파르기는 매 한가지다. 낙엽과 땅거
죽이 꽁꽁 얼어 있어 아주 미끄럽다. 엎어지기 여러 번이라 벌벌 긴다.
공기가 차갑더니만 능선에는 상고대가 움튼다. 동녘 하늘은 일출을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일
출을 보려하면 으레 의유당 김씨의 동명일기(東溟日記)가 생각나는데 금방 해가 솟을 듯하면
서도 한참 걸리기 일쑤이고, 그때까지의 한속은 또 얼마나 모질던가. 그렇다고 동명일기에서
와 같은 장관은 내 아직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는 아예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황홀히 번득여 양목(兩目)이 어즐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하여 첫 홍색을 헤앗고, 천중(天中)
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레바퀴 같하여 물속으로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붙으며, 항, 독 같은 기
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혀처로 드리워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 싶
으더라. 일색(日色)이 조요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일광(日光)이 청랑(淸朗)하
니, 만고천하(萬古天下)에 그런 장관은 대두할 데 없을 듯하더라.”(「동명일기」에서)
2. 뒤는 신가이버 님
4. 진조산 가는 길
5. 진조산
6. 진조산
초장끗발 개끗발이라거나 초식불길(初食不吉)이란 말은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계속
끗발이고 초식대길이다. 등로에서 대물인 더덕을 뽑아 올린 이후 그와 엇비슷한 준척이 줄줄
이 따라 올랐다. 딴은 진조산이 올 때마다 명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십 수 년 치의
「월간 산」과「사람과 산」을 뒤지고, 김형수의「韓國400山行記」를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진조산의 소개는 찾아볼 수 없으니 퍽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보고(寶庫)다.
봉봉이 잦되 굴곡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 등로 주변의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와 참나무가 볼
만하다. 잡목은 가지가지 상고대 꽃 피워 겨울풍경의 어엿한 일원임을 과시한다. 진조산 정상
주변은 더욱 장관이다. 진조산 정상에는 쌍묘가 있다. 그 머리맡에서 정상주 분음한다.
진조산 정상을 벗어나자 안개 속이다. 낙동정맥 길을 간다. 아까의 등로와는 사뭇 다른 탄탄
대로라서 줄달음한다. 그러나 잠시다. 굴전, 답운치(踏雲峙)를 향하여 남진하는 낙동정맥 길
을 보내두고 우리는 서진한다. 안면 블로킹하며 간벌한 잡목 숲 뚫는다. 이리 즐비한 아름드
리 금강송을 구경하는 것만 해도 진조산의 무박산행 값어치는 충분하다. 양팔로 싸안기에 어
림없지만 프리허그(Free Hug) 흉내한다. 프리허거는 소나무다.
미리 임도로 내렸다가 자작나무 숲으로 든다. 지형이 비슷비슷하다. 대개 봉우리 내려갈 때
길을 잘못 들기 쉬운데 여기에서는 봉우리를 올라갈 때에도 길을 잘못 든다. 엉뚱한 봉우리를
올랐다. 사면을 대 트래버스 하여 등로 잡는다. 826m봉 내리면 또 임도다. 적사장이 있는 것
으로 미루어 차량통행이 드물지 않은가 보다.
길 좋다. 속도전이다. 소나무 숲 울창한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숱하게 오르내리다 정확하게 삼
근초교 광회분교로 떨어진다. 교사 현관에서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7. 진조산 정상
8. 진조산 정상에서
9. 진조산 정상 내리는 길
10. 첫 번째 임도 내리기 직전
11. 자작나무 숲
12. 자작나무 숲
13. 광회분교로 내리는 길
▶ 872m봉, 옥천암(玉泉庵)
2부 산행. 들머리인 옥방벨리휴게소로 이동한다. 명산이 대수랴 어차피 시간 때우는 것. 임도
가 지나는 872m봉을 갔다 오기로 한다. 우선 임도 따라간다. 산굽이 돌자마자 일단은 오른쪽
생사면에 붙고, 김전무 님, 더산 님과 나는 임도가 꺾이는 곳까지 임도 따라가기로 한다. 임도
도 눈길이라 걸을만하다. 고라니들이 러셀까지 해놓았다.
임도가 완만한 사면을 쫓아 꺾이는 골짜기 입구에서 우리 셋도 사면에 붙는다. 거의 수직으로
가파르다. 성긴 잡목을 홀더 삼아 볼더링 하는 것이 재미난다. 고도 110m를 높이는 한 피치
오르면 능선 마루금과 이웃하는 임도가 나온다. 우리 셋이 너무 이른 선두다. 임도가 길게 돌
아가는 봉우리 앞 눈길에 직등하는 발자국 몇 개 찍어놓고 몰래 임도로 간다. 뒤에 오는 일행
들이 이에 질세라 발자국 따라 직등하리라. 어디 한번 혼나 봐라.
그 즐거움을 느끼려고 직등하였느냐 물었더니 그들은 영악했다. 대번에 위장한 발자국인지
알아챘다나. 더산 님은 사면 쳐서 능선으로 올라가고 나는 872m봉 임박해서 능선 붙든다. 혼
자 가는 호젓한 산길이다. 내 거친 숨소리를 몰라보고 놀란다. 872m봉. 올라왔으나 근처 임도
절개지가 절벽이라서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그중 등고선 간격이 뜬 남쪽 사면의 골이 적당하다. 그랬다. 수북한 낙엽 지쳐 내려 도랑 건너
면 임도다. 줄곧 임도 따라온 김전무 님은 내가 내리기 쉬운 곳을 보아두려고 872m봉 주변을
돌았다. 더산 님도 소식이 없고 뒤의 일행도 감감하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 (그들은 중
간에서 내려갔다) 지능선 눈길에 발자국 크게 내고 내린다.
잡목 숲 헤치며 뚝뚝 떨어진다. 골로 간다. 골이 깊다. 사방댐 건너서 협곡의 단애에 난 잔도
같은 길을 간다. 겁난다. 골이 넓어지고 임도가 생기고 옥천암이 나온다. 암자 주변의 눈밭에
아무 발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한겨울에는 빈 암자다. 대로가 이어진다. 대로는 낙엽송 숲
길 지나 회룡천을 돌아간다. 대하로 흐르는 회룡천이다. 지난번에 승부 낙동강 건너면서 된
영금을 보았던 터라 얌전히 옥방교까지 걸어간다.
14. 2부 산행, 임도에서 올려다 본 능선의 소나무
15. 2부 산행, 임도에서 올려다 본 능선의 소나무
16. 872m봉 아래 임도 절개지
17. 옥천암 지난 낙엽송 숲, 넉장거리하기 직전의 김전무 님, 보무도 당당하다
18. 파란색이 오늘 산행, 노란색은 지난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