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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예레미야-06 언약의 말씀을 좇으라(예레미야 11장 1-5절)
성경말씀은 예레미야 11장 1절에서 5절까지 봉독합니다.
[예레미야 11장]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가라사대
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4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열조를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5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예레미야서 11장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지 한 800년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800년이 지나도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8000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동안에 끝없이 변덕을 부리고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800년이 지나간 시점이지만 하나님은 다른 것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약속한 것이나 지키자는 겁니다.
종종 드리는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서 들어 쓰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들어 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시느냐 하면 신실한 사람이예요.
여러분 신실한 사람이라는 말이 우리는 믿는 사람이라고만 인식을 하고 있어요.
예수 믿는 사람이라 이렇게만 생각하는데, 헬라어로 ‘피스티오’라는 말은 ‘믿는다’ 하는 말도 되지만, ‘신실하다’는 말도 똑 같아요.
신실하다는 말과 충성되다 하는 말이 똑 같아요.
그래서 물론 우리가 인격적인 신뢰 믿음도 참 중요한 덕목이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가진다는 믿음, 즉 인격적 신뢰도 중요하지만 신실한 것도 중요한 거야.
우리가 만약에 믿음으로서 구원받는다는 말과 신실함으로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신실한 것은 그 성품과 그 행동이 충성되다는 말과 믿는다 신실하다는 원어는 똑 같아요.
우리는 앞뒤를 봐가지고 ‘믿는다’로 번역했다가 ‘신실하다’로 번역했다가 ‘충성되다’로 번역하는데, 충성된 사람이라야 되는 거야.
그래서 신실하다는 것은 맨 기본을 뭘로 보느냐 하면, 약속을 지키는 거야.
약속을 지키는 것을 신실한 겁니다. 그것이 믿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과는 중요한 일은 고사하고 사소한 일도 함께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를 세워갈려고 할 때 신실하지 않은 사람, 다시 말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아무 일도 못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는 말을 믿음이라는 게 막 그냥 적극적인 사고방식 이런 것이 아니고 신실함 충성됨 진실됨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실함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깜짝 놀랄겁니다. 그런 얘기는 잘 못 들어봤죠.
맨날 ‘믿음으로’ 이렇게만 했지, 피스티오 피스티스라는 말을 신실하다 충성되다는 이런 말로는 누가 소개도 안 하고, 그냥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행위는 그냥 엉망 되어 버리고 이래도 괜찮은 걸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의인은 오직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할 때, ‘의인은 그 충성됨으로 살리라’ 하면 큰 차이가 납니다.
이런 말이 세상에 나가면 오직 믿음으로 했는데.. 여러분 성경을 아무리 뒤져도 ‘오직 믿음’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믿음으로 예요. 오직이 아니고..
‘오직’은 마르틴 루터가 붙인 것이고, 성경에는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없어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이라는 말에 장단에 맞춘 것이고, 믿음으로 할 때 그 믿음이라는 단어가 우리말로는 믿음으로도 되고 충성됨으로도 혹은 신실함으로 되니까 신실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또 신실한 사람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여러분 사람 중에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힘 있고 백 있고 권력있고 돈 있고 이런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예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신실한 것이고 그게 충성된 사람이예요.
그렇게 하면 우리가 어설프게 믿음으로 믿음으로 하는 것 많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충성된 사람들..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런 말을 하죠.
‘내게 들은 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그 충성된 사람이 믿는 사람이고, 믿는 사람이 신실한 사람이고, 신실한 사람이 충성된 사람이예요.
충성되다는 것이 청와대에 가서 아부하는 것이 충성이 아니라, 그것은 간사한 것이고, 약속을 잘 지키는 거예요.
지극히 작은 약속이라도 약속을 최대한 지키는 것이 충성된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지금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이 ‘언약의 말씀을 좇으라’는 건데, 지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을 맺은 지가 800년이 지나갔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것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언약한 것이나 잘 지켜라..
그 언약한 것을 잘 지킬려면 언약한 것을 읽어봐야 돼요.
여러분 지금 언약한 것을 읽어보지도 않고, 다시 말해서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믿음 좋다 하는데, 뭐가 믿음이 좋은 거요? 그냥 성품이 괜찮은 거죠.
일반적으로 보통 말할 때, 믿음 좋다 하는 게 성품이 괜찮은 것은 몰라도 믿음 좋다는 것은 일단 언약을 잘 읽어보고 그 언약을 성실하게 지킬려고 노력하는 거죠.
우리가 완전하게는 못한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지극히 작은 계명이라도 빼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 받을 것이고, 이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충성되기에 앞서서 먼저 우리가 충분히 읽어봐야 돼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세례받을 수 있는 기본 자격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고 가르치는 코스를 꼭 한번 통과하게 하는 것은 들어보고 이해가 되고 그러고 나서 믿겠다 말겠다 해야지, 들어보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않고 ‘믿습니다’ 하는 것은 미신이예요. 믿음 좋은 게 아니고 그것은 미신이예요.
그래서 우리 국산품 믿음은 상당히 가짜가 많다고 봅니다.
대개 ‘믿~씁니다.’ 할수록 믿음이 없는 거거든요. 믿음이 한 방울도 없는 수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자꾸 믿어야 된다 하니까 억지로 믿을려고 쥐어 짜는 거야.
‘믿~씁니다’ 짜면 뭐 나올줄 알고.. 그런 경우는 가까이 가서 ‘믿씁니다 하는데 뭘 믿습니까?’ 물으면 글쎄요..
그래서 안 이루어졌을 때는 자기가 잘못 믿는 것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원망하는 쪽으로 갑니다. 이런 사람을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그것은 충성된 것도 아니야..
그래서 바른 믿음 좋은 믿음은 놔두고, 바른 믿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무슨 언약을 맺었는지 옛 언약은 무엇이며 새 언약은 무엇는인 이런 것을 공부를 해야 돼요.
오늘 낮에는 먼데에서 오신 분이 많았어요. 대구 경주 서울에서 오신 분..
그래서 오후 내내 만나고 만나고 끝이 없이 사람들이 와요.
경주에서 두분 모녀가 오셨는데, 옛날 교회에 가서 한참 헤매다가 여기 오니까 예배 끝났답니다.
그래서 점심만 먹고 그냥 갈려니까 너무 섭섭해가지고 또 차례 기다렸다가 맨 늦게까지 있다가 만나고 갔는데, 두번이나 에스라 성경강좌에 참여한 거예요.
첫 번째 참여하고는 좀 새롭다 이런 정도 생각했는데, 두 번째 가면서 좀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들은 것을 또 듣고 있으면 얼마나 지루하겠나, 좀 따분하겠다 했더니 그게 아니고 첫 번째 들은 것은 절반도 안 들렸고 두 번째 듣고 나서 그렇게 희열이 넘치게 들었는데, 집에 가서 정리를 하다가 울면서 정리를 했답니다.
자기 어머니 혼자 하나 앉혀놓고 강의를 하는 거예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예레미야까지 하다가 왔다는데..
그래서 샤론교회에 가 보고 싶더래요. 어떻게 하는지..
그래서 공부를 꽤 열심히 하고 그런 분인데, 정리 하다가 눈물이 그렇게 나더래요.
여기 와서도 그냥 눈물이 연신 촉촉히 젖어가지고..
누군가 10년전에 얘기를 했답니다. 가 보라고..
그래가지고 그 10년 전에 ‘성경통독’이라 하길래 성경 한번 읽고 오는 게 큰일이다 해가지고 사람들이 가는데, ‘왕년에 누구는 성경 안 읽었나?’ 그러면서..
자기는 성경을 좀 읽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10년 동안 안 왔는데, 그 때는 ‘성경강좌’라고 하지 않고 ‘성경통독’이라 해 준 사람에 대해서 원망이 하늘같이 사무치더라는 거야.
이것을 누가 성경통독이라 했냐? 말이야..
그래서 그 자매가 영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요. 보니까..
엄마 하나 놓고 하기 힘들거든요. 남을 놓고 하기도 힘든데 엄마를 앉혀놓고 해봐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4명 앉혀놓고 해 봤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힘들게 한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도 자기 딸에게서 감동 받아서 따라온 거야. 오늘까지..
그래서 여태까지는 구약이 왜 하나님과 언약이며 신약이 왜 언약이냐? 이런 개념도 없이 그렇게 믿어왔는데, 여태까지 모태적 신앙 외가댁에서부터 믿음이 있는 집안이니까 굉장히 뿌리깊은 믿음인데 하나도 바로 믿은 것이 아닌데 그래도 자기는 잘 믿는 줄 알았다는 거야. 들어보니까 전혀 잘 믿는 게 아니고 성품이 그냥 좋은 거야. 성품이..
그래서 그 자매가 참 오늘 오후에 오히려 저를 감동을 시킨 거야. 엄마를 앉혀놓고 감동을 시키고..
사실 가족들에게 뭘 가르친다는 것은 어렵거든요.
보통 남편들이 아내에게 운전 가르치다가 부부싸움 하죠. 여기는 안 하는가..
우리는 많이 했어요. 운전면허증 집 사람이 저보다 훨씬 일찍 땄죠. 처녀 때에 땄으니까..
그런데 운전면허증 따 놓고는 운전을 안 하는 거야.
88년도에 자동차 생겨가지고 운전대 맡겨보니까 못 가르치겠어. 얼마나 엉터리로 하는지 고함이 안 나올 수가 없어. 그냥..
항상 핸들을 너무 크게 조작해가지고 이쪽으로 갔다가 좌로 치우치고 아니면 우로 치우치고.. 그래서 내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
아무리 해도 안 돼. 시야가 좁아서 보는 안목이 없어서 전혀 옆을 못보고 앞뒤를 못보고 오직 앞만 보고 가니까 그냥 실수하는 거야.
그래서 가족을 가르치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나는 학교가 왜 생겼는가 했더니.. 가족을 가르치는 것 정말 힘들어요. 진짜..
나는 참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
사람을 가르치는 것 참 힘들어요.
여러분 사람을 가르치는 것 하나님도 어려워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11장입니다.
[예레미야 11장]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가라사대
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또 다시 언약의 말씀을 이야기 하죠.
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원래 그랬죠.
여러분 레위기 26장이나 이것을 해석한 신명기 28장을 보면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할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800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계획이나 하나님의 의향은 일향 한결 같애요. 전혀 하나님은 변덕부리지 않습니다.
3절,
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복을 못 받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언약을 쫓지 않는 자는 복을 못 받는다 정도가 아니고, 거기를 넘어서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4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열조를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여러분 끝난 것 아닙니까? 우주와 만물과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신 만복의 근원 되시는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그 백성 되면 게임 끝난 거죠.
그러면 복이 문제겠어요?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것 하나만 하라는 거예요. 언약의 말씀만 지키라.
그 언약의 말씀이 두꺼우냐? 레위기 한 권이야.
레위기 한 권 이것만 지키라는 건데..
제사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다 할 것이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사 문제는 레위지파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11장에 가서 음식물 가리면 되는 것이고, 12장에 산혈이 맑아지는 기간 지키면 되는 것이고, 13장에 나병 한센스 병 걸렸을 때 진찰도 제사장이 하는 거죠.
나병 나았을 때 정결케 되는 절차도 레위인들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15장에 유출병 성병 걸렸을 때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아요?
16장에 속죄일 대속죄일 지키면 되는 것이고, 17장에 피와 기름 안 먹으면 되는 것이고, 18장에 성 윤리 지키면 되잖아요.
여러분 성윤리라는 게 지키기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이 간음을 아무나 합니까? 건전한 부부생활하면 되는데 세상 수월한 거죠.
괜히 남의 여자와 신경 쓸려면 돈도 많이 들고 유지 관리비 많이 들고.. 그렇지 않아요?
19장에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 도덕적으로 돌보고, 20장에 반드시 죽이라 하는 것 죽이는 것은 레위인 제사장들이 재판해서 하는 것이니까..
21장도 제사장들에게 관계된 것이고, 22장도 제사장들에게 성물 규례법이고, 23장은 1년에 명절 세번 지키는 거야.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그 세번을 못 지켜?
엿세 일하고 하루 쉬는 것 누가 못해요? 안 쉬는게 힘들죠.
그러니까 우리가 율법을 보면 어려운 것도 아녜요. 사실..
24장에 성막과 제단 관리 다 레위인이 하는 것이고, 25장에 안식년 희년 토지 무르기 그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거든..
6년 동안 땅을 갈아먹고 한 해 땅을 묵히고 쉬는데 얼씨구 좋은 거죠. 쉬어도 먹고 살게 한다는데..
그러니까 아무리 봐도 레위기가 막 어려워서 지키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게 아닙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 혹은 아론의 자손들 제사장들은 상당히 제사 업무가 까다롭고 참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힘겨운 짐이 아니었어요.
예수님도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는 가볍고 쉽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는 것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이고 부처님 귀신 섬기는 것이 어렵죠.
우리는 옛날에 하도 많은 우상숭배 미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예수 믿으니까 세상에 이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우리 이상하게 지리산 살 때 예수 안 믿을 때는 오직 못만 하나 박아도 탈이 나는 거야.
흙 한뭉치 찍어 발라도 탈이 나는 거야. 점쟁이는 그런 것은 용케 알아요.
어느 방향에 흙을 다렸다 그러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하니까 엉성한 집에 흙도 찍어 바르는 거죠. 그리고 못을 박았다고 눈에 상처가 나고..
그래서 결국 우리집 중간집 큰집 큰외가집 작은 외가집 전부 우리 가까운 집에 장남이 쓰러지는 거야.
큰집에 장남이 40대에 돌아가셨어요.
더 큰집에 제일 큰 백부님 집에서 아들 하나밖에 없었는데 거기도 지금 제가 보니까 암 같아요. 암.. 거기도 서른 몇살에 넘어졌거든요.
큰 외가에도 열두서너살 되었는데 장남이 죽었어요.
작은 외가에는 결혼까지 했는데 큰 아들이 죽은 거예요.
우리 집에 우리 아버지 큰 형님이 가끔 여기 성경강좌도 오시는 그분인데, 그분도 꽤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폐병을 앓아가지고..
또 동네에서 아무도 앓지 않는 맹장염까지 앓아가지고 그것도 하고..
60살에 운전면허를 따가지고 차 사고도 나고, 하여튼 그 형님이 몇번 어려움 겪었어요.
저도 큰 아들 낳으면서 사산 되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죠.
옛날에 이승만 시대에 하는 구호 있잖아요. ‘못 살겠다 바꾸자!’
젊은 사람들 모르죠.
그래서 집안을 좀 바꾸어 봅시다 하고 내가 우리 집안 외가까지 내력을 주워 섬기면서 이래가지고 어떻게 이 귀신 섬겨먹고 살겠나 좀 바꿔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했거든요. 그런데 할 말이 없죠. 사실이니까.. 그리고 형님도 자기 차례니까..
그리고 예수 믿고 나서 딱 끝나 버렸죠.
우리 형님이 지금 74세인데 건장해요.
지금도 자기가 70이 넘은 노인이라고 전혀 생각 않고 꼭 30살 먹은 사람처럼 목적이나 무슨 계획이나 이런 게 자기가 나이 들었다고 생각을 이만큼도 안 하는 것 같아. 음성도 나보다 더 크고.. 그리고 그 음성에 힘이 있어요. 지금도 보니까..
그리고 큰형님의 큰아들도 장로가 되어가지고 건장하고, 하여튼 그런 일이 딱 끊어지고 조금 뭐 하면 탈나고 그런 것 없어졌어요. 깨끗하게..
특히 제가 농촌에 살면서 제가 일 많은 것 얘기 했죠? 그렇게 일이 많으니까 엿세 일하고 하루 쉬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는 생각해요. 도시 사람보다 농촌 사람들이야말로 엿세 일하고 하루 쉬어야 돼. 그런데 안 쉬거든요. 예수 안 믿으면..
나도 예수 안 믿을 때는 논밭으로 나가는데 주일날 건너 동네에서 땅~ 땅~ 하고 종을 치는 거야. ‘미친 놈 같으니라고’ 하면서..
‘농번기에 송장도 일어나서 움직인다는데 어떤 미친놈이 교회 간다고 이 농번기에 종을 치나..’ 했는데, 얼마 있다가 내가 종을 친 거죠.
하나님 들어서 웃었겠죠. ‘네가 조금 있다가 그 미친 종을 칠거다’ 하면서..
그래서 남들은 다 농번기라고 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는데, 우리 부부가 성경책 들고 옷 제일 좋은 것 갈아입고 어슬렁 어슬렁하게 차도 없으니까 걸어가거든요.
1km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봐. 동네사람들이 ‘저런 미친 놈 걸친 놈’ 하면서 욕 되게 했을거라. 내 생각에..
그리고 우리 논을 갖다가 써래질까지 해가지고 물 잡아서 모심을 만큼 해 놓고 그 이튿날이 주일이면 우리는 교회 가니까, 우리 큰집 식구들 다 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논에서 모심고 있어요. 우리는 교회에 가야 되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워겠어요?
그래도 그런 부끄러움 무릅쓰고 그래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양보할 마음이 없었습니다만 그 때는 상당히 율법적이었어요.
주일 범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주일날 모를 심는 게 뭐 그리 자유하냐? 예배 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니까 집안 사람들 남들이 우리 논에 모심으러 오는데 우리는 교회 간다고 가니까..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 집 사람도 참 못할 짓이라는 거야.
동민들이 우리를 얼마나 흉을 봤겠어요? 예수가 밥먹여주나 어쩌고 저쩌고..
자기들끼리 제일 욕을 하는 거죠. 시골 골짜기에서 온 동민 안 믿고 우리만 믿으니까..
그래서 저는 믿고 나서 보니까 우리 어머니가 제일 고생을 많이 했고, 우상숭배도 제일 많이 했죠.
아버지는 1년에 몇차례 제사 지내는 정도지만, 우리 어머니는 안 빈 곳이 없어. 산신령께 비나이다, 용왕님께 비나이다, 성주님께 비나이다, 부처님께 비나이다. 여러 군데야. 한 일곱군데는 될거야.
그렇게 일곱군데 비니까 귀신들도 헷갈리는 거야. 탈은 탈대로 나고 맨날..
그렇게 힘들었어요.
우리가 딱 끊어버렸을 때 다른 분들은 몰라도 우리 어머니는 굉장히 겁이 났을 거야. 왜냐하면 6남매에다가 손주들이 줄줄이 크고 있는데, 어떤 귀신이 와서 탈을 낼 것인가 굉장히 신경이 쓰인 거죠.
그런데 아무 탈이 안 나거든.
그래도 교회에 나오시면서도 그 믿음이 안 생기는 거야. 우리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 같으면 참 교육도 못하고 전도도 못할 것 같아.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 가르치다가 포기 했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진짜 잘 가르치거든요. 한글을 가르칠 때 그냥 하는 게 아니고 딱 과학적으로 ‘기역(ㄱ)’하고 ‘아(ㅏ)’하면 ‘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음과 자음을 써가지고 합해가지고 이렇게 칸칸에 써가지고 이렇게 하는데,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게..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도무지 못 배우는 거야. ‘가갸 거겨 고교 고기야’ 계속 그렇게만 하니까 아버지가 잘 못 가르치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잘 가르치는데 가족은 잘 안 되는 거야.
저도 우리 어머니에게는 아무리 설교해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내가 어지간히 남들에게 설명을 잘 하는 편인데, 어머니에게는 잘 안 돼요.
그래서 내가 오늘 자매가 어머니를 앉혀놓고 가르치는 것을 듣고 내가 감동을 받았다니까..
내가 내 아내도 해보니까 잘 안 되고 우리 어머니 놓고 아무리 설교해도 참 잘 안 돼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미신에 걸려서 큰 고통당하고 있는 거죠.
정말 우리가 전도해서 자유케 해야 돼요.
하나님 말씀은 자꾸 말을 안 듣고 안 듣고 하다보니까 이게 두꺼워져서 그렇지, 본래 맨 처음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하나 그것만 안 따면 되는 거였어요.
그 다음에 준 게 십계명이죠. 그 십계명 그것만 지키면 되는데 그것을 안 지키니까, 또 레위기가 되고 또 신명기가 되고 또 예언자가 나타나고 자꾸 두꺼워진 거죠.
하여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사실 세상 그 어떤 신을 섬기는 것 보다 즐거운 것이고, 또 쉬워요. 하나님 보다 다른 신 섬기는 것이 어렵지..
사람들은 우리에게 매주일 교회에 가는 것 어떻게 매주일 가고 매주 수요일 가느냐 그렇게 하는데, 저는 예수 믿고 난 후 우리 어머니가 고통하고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 너무 중요한 거죠.
그래서,
..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그것만 되면 되는 건데..
5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언약도 알고 언약의 역사, 자기 열조가 하나님의 언약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다 인식을 하고 있는 거죠.
6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
끊임없이 언약을 이야기 하는 거죠.
여러분 나중에 집에 가서 이 11장에 언약이라는 말에 줄을 그어보시면 끝없이 언약을 이야기 합니다.
7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부지런히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청종하라 하였으나
딴것을 자꾸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 목소리를 청종하고 언약을 지키라.
8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하라
9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10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파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여러분 기도가 응답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하고 주여 삼창 백창을 해도 안 돼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고 아무리 부르짖는다고 응답이 안 돼요. 그건 미신입니다. 미신..
고함소리에 밀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소리에 그렇게 힘없이 밀리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기도와 간구가 막히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다는 거예요.
그들이 언약을 읽어보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고 계속 부르짖기만 해서는 응답될 리가 없죠.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읽어보고, 그 언약을 완전히 다 지키기는 쉽지 않겠죠. 그러나 최선을 다해야 돼요. 최선을..
그러니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뜻을 알려고 하고..
여러분 우리 교회가 새로 오신분도 계시는데, 주보에 첫 표지에 보면 아무 표어도 없죠.
아무 표어가 없고 딱 한마디밖에 없어요. 주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
여러분 목사를 따를 필요 없습니다. 목사가 엉뚱한 짓을 하면 여러분 따라오지 마세요. 말리든지 따라오지 말든지..
목사를 따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첫째는 주님을 뜻는 아는 게 중요해요. 아는 것..
맨 먼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 중요한 것이고, 앎으로 끝나는 것으로는 안 되고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실천을 해 보는 겁니다.
그것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믿기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고 싶어서 안달나신 분이예요.
우리에게 안 주고 지리산 중놈에게 주겠어요?
하나님 말씀 잘 배워서 그것을 실천하는 성도에게 안 주고 지리산 중놈에게 주겠어요? 그 복을.. 그렇지 않소?
그러니까 오직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그것만 하자고.. 복부터 탐내지 말고..
우리가 정말 탐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그리고 따르는 것..
그래서 저는 모르겠어요. 여러분 보기에는 어떤지 몰라도 저는 가능하면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저 개인적 어떤 주장을 잘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보기는 어떻게 보이는지 몰라도 저는 그래요.
혹시 실수로 무슨 주장을 하는지 모르지만, 저 개인 주장을 어디가서 내 놓고 펼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런 것 없어요. 없고 하나님의 뜻인가 주님께서 기뻐하실만한 뜻인가 그것을 아는데 전력을 다하고 또 그것을 행하는데 최선을 다 하는 것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라고.. 그렇지 않습니까?
12절,
12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곤액 중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치 못하리라
13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그러니까 유다 나라에 얼마나 신들이 많았는지 그 성읍의 수효가 같다..
그러니까 한 성에 우상 하나씩 다 있는 거야. 온갖 잡신이 다 있어요.
이게 어디에서 출발 했느냐?
물론 사사 시대도 있었고 그 뒤에도 이런 저런 실수도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솔로몬이야. 솔로몬..
솔로몬이 처음에는 1천 번제로 시작하더니 조금 지나서 1천 여인을 가지고 1천 우상을 만들어가지고 그냥 뭐든지 천단위로 나가요. 천단위로..
어떻게 1천 번제로 시작한 사람이 1천 여인으로 해서 1천 우상을 다 가져오니까 예루살렘이 솔로몬 때에 만국종교 박람회장이 되는 거야.
여러분 사람이 신령해가지고 은혜 받아가지고 성경을 세권이나 쓴 사람도 타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율법을 모르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 항상 1천번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을 법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 말씀을 알아야 돼요.
..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효대로 그 수치되는 물건의 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았도다
14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과 언약을 어겨버리고 하면 아무리 부르짖어봐야 그 기도는 열납되지 않습니다.
15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거룩한 제육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
16 나 여호와가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
17 바알에게 분향함으로 나의 노를 격동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의 악을 인하여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와 내가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였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재앙을 선언하면 끝장입니다. 끝장이야.
우리 조그만한 손으로 열심히 모아봤자 하나님 그 큰 입으로 후~ 불어버리면 끝장입니다.
여러분 그런 말이 있어요. 너희가 부지런히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버렸다고.. 학개서에 나오는 말씀이죠.
18절입니다.
18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19 나는 끌려서 잡히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과실을 함께 박멸하자,
나무도 없애버리고 과실도 없애버리자,
.. 그를 산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 이름으로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예레미야는 자기를 누가 해칠려고 이를 갈고 있는 것을 몰랐어요.
하나님이 알게 해 줘서 알았다는 거죠.
20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원정’이라는 말은 어려운 말인데, 히브리어로 ‘리브’라는 말은 논쟁, 구설수에 휘말리게 된 정황이예요. 원한과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를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21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예레미야를 잡아죽일려고 하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이 아니고 고향 사람들이예요.
이 예레미야가 아나돗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거든요. 아나돗이라는 말은 사랑과 전쟁의 신의 이름이예요. 그 당시 동방 셈족의 어떤 사람들이 민족이 섬기던 신입니다. 사랑과 전쟁의 신이라는 신인데, 그 동네예요.
그 어떤 베냐민 땅에 그런 동네 이름이 있어요.
옛날에는 아나돗이라는 신을 섬기던 동네인데, 거기 베냐민 지파에 있는 레위자손,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잡아 죽일려고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너 죽을래? 하는 거죠. 예레미야에게..
22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23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
여러분 저도 사실은 덕을 세울려면 부드럽게 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제가 교회에서는 부드럽게 하는데 나가면 세게 나가거든요.
전부터 그랬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데모 대책 위원장이었고,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까 노회에 가서도 불의를 보면 잘 못 참아요.
그래가지고 나 혼자 손해 보는 것 뻔하죠. 그런데 손해 보거나 말거나 그런 것 따지면 일을 못해요.
그래서 좀 바른 말 했더니 그냥 잡아죽일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쫓겨나서 저 밀양에 귀양 갔다가 괜시리 여기 왔는데, 여기 와서도 내가 노회에 가면 틀림없이 실수할 것 같아. 앉아 있기가 고역이고 바른 말 했다가 누가 아나돗 사람들처럼 그럴 것 같아서 내가 노회에는 한번만 가고 한번 안 가고..
이해를 하십시오. 한번 가고 한번 안 가는 것은 왜 그렇냐? 자꾸 가면 내가 틀림없이 실수할 것 같아..
12장입니다. 이 예레미야도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해요.
[예레미야 12장]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여러분 그런 것 있죠?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해요. 그렇죠?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고 패역한 자가 안락한 거야. 죽을 때까지 아무 고통도 없고.. 그 집 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고..
살이 쪄서 눈이 솟아나고 죽는 날까지 고통도 없고 이런 사람이 있어요.
보라 항상 악한데 항상 편하다는 거야.
그런데 반대로 예레미야는 맨날 징징거리고 울고 평안도 없고 맨날 징책을 당하는 것 같고..
그래서 예레미야도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가 있었던가 봐요.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하나님이야 항상 옳죠.
그런데 하나 물어봅시다 하는 거죠. 하나님의 항상 옳은데 왜 이런 일이 있느냐?
..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사실 저도 처음에 교회에 나가면서 이런 것 예레미야가 물었던 것을 묻고 싶더라고.. 그런데 하나님도 대답을 잘 못해요.
그런데 나중에 성경 여러 곳을 종합해서 보니까 악한 자가 형통한 것도 오래가는 것 아니야. 그리고 의인의 고난도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다 하나님이 정한 때까지만 그런 거야. 정한 때까지만..
이것과 비슷하게 물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의인의 고통에 대해서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묻고 회의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어요.
예레미야도 있지만 바룩도 비슷한 질문을 한 것 같고, 또 시편 73편 기자도 그런 질문을 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대답을 잘 안 해주니까 심히 곤란하더라는 거예요. 이해도 안 되고..
그러나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갔는데 반짝하고 열어서 그 사람이 서 있는 곳을 보여주는데, 심히 미끄러운 곳에 서 있고 거기에서 한발자국만 실족하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지옥이야.
거기에서 살 좀 쪘다고 부러워하느냐? 그래서 그것을 보고 나니까 참 내가 이와 같이 우매무지하여 짐승에 불과한 생각을 했구나. 저런 사람을 내가 질투하다니 하면서 그들은 너무 미끄러운 곳에 서 있어. 한발 실족하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에 서 있는 거야.
그래서 73편 기자가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나의 기뻐할 것은 하나님 밖에 없다. 그런 고백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그런데도 형통하더라는 거죠.
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 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예레미야는 결혼도 못했어요. 한 70세까지.. 한 30살에 소명을 받아가지고 40년 동안 거의 보나마나 거지같이 살았을 거야.
무슨 세탁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이 빨래해도 그렇지..
세탁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가끔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 옷 입은 것 보면 그렇죠?
땀과 먼지가 함께 옷에 쩔어가지고 아주 갈색으로 변한 것을 입고 다니는 거야.
그리고 목욕도 자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예레미야가 옷은 놔두고 40년 동안 어디서 얻어먹고 살았는지 그것도 걱정이야.
그렇게 사는데 권력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악인인데 항상 형통하고 패역한데도 안락하고 연락하고 잔치하고 그런 것 볼 때 회의가 일어나는 거죠. 자기가 하는 일에..
4절입니다.
4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5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6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오늘 낮에 봤죠? 세상에 하나도 믿을 사람이 없이 자기 집안에 형제까지도 서로 속이고 하나님을 떠나버리니까 인생이 다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국은 버리는데,
7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내 집’은 성전입니다. ‘내 산업’은 이스라엘 나라예요.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은 성소 예배 받던 곳이죠.
8 내 산업이 삼림 중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 고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
9 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나라 예루살렘 성전 성소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애지중지 않는 것이고, 지구상에서 정말 하나님의 눈이 그 곳에 향하여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이고 그런 것을 다 버린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그들이 저버리니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 내버립니다.
10절,
10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11 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하나님도 그냥 개의치 않고 내버려두니까..
12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무릇 혈육 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도다
13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
결국은 이스라엘 나라를 하나님께서 다 끝장을 낼 판인데, 그런데 그 중에 조금 유다 지파 중에 일부를 조금 남겨줄 것을 14절에서 이야기 합니다.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보호한다는 말을 이렇게 한 거예요.
왜냐하면,
15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그러니까 돌아오게 될 날을 예시하고 있는 거죠.
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바알에게 한 것같이 하기만 하라..
여러분 지금 귀신 섬기는 사람들이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목욕재계하고 그렇게 합니다.
우리 여기 예배당이 지금 아직은 내가 겨울 난방 준비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추워도 참아야 돼요. 옷을 좀더 따뜻하게 입고..
귀신을 섬기면서 얼음을 깨고 목욕재계하고 그런 사람이 있어요.
전에 제가 산청에서 목회할 때 천리교 나가던 50쯤 되었을까 그런 부인인데, 뇌성마비 딸을 벽장 속에 숨겨두고 있다가 제가 전도자로 파송했던 전도사님이 벽장에서 꺼내어서 믿게 했던 그 집인데, 그 부인이 그 엄마가 정정자씨 엄마가 천리교 신자였어요.
겨울에도 몇번씩이나 찬물에 목욕재계하고 그렇게 기도드리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럼 거기에 비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은 너무 수월하다는 거요. 자기들이 볼 때..
그리고 그 옆에 이른바 생비량 교회라고 하는 그 교회에 무당 굿하던 무당 진짜 처녀 무당인데 이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믿어 나왔는데 이 사람들은 철야가 기본이죠.
굿하는 사람들은 철야가 기본 아닙니까?
우리는 심야 한두시간 하고 그것도 힘들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굿을 했다하면 철야야. 계속해서 두드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니까..
교회에 와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이것은 너무 수월하다는 거야.
그러니까 여기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에게 맹세한 것처럼만 하고 바알에게 한 것만큼만 정성을 들여봐라.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복 주실 수 있다..
17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래서 하다못해 바알신에게 한 것만큼도 안 하고 그러고 은혜받기를 바라서는 안 되겠죠.
제가 지난번 10월 강좌에서 그 때에는 사람들이 얼마 안 왔었어요. 그 중에 이성철을 만나볼려고 이성철 앞에 가서 절 3천배 하고 이성철 만났던 사람이 거기 참여한 거야.
바빠서 다 들어보지는 못했는데, 그 사연을 들어보고 싶더라고..
절을 3천배를 했대요.
거기 3천배 한 것에 비하면 에스라 성경강좌에 오면 가만히 앉아 있는데..
읽어주지 믿음 다 해주지 하나도 힘든 게 없다는 거야.
여러분 우상숭배하는 것 지옥가기 위해서도 그 정도로 힘을 쓰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고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서 오전 9시부터 세시간에는 그런 고통을 다 참아내셨는데, 우리가 조금 힘든 것 그런 것 힘든다고 하면 안돼요.
저는 그래서 어릴 때 하도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여간 힘들어도 못하겠다 그런 말 잘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본은 항상 언약을 어겼거나 언약을 등한히 했다는 거예요.
또 거기는 누구 누구 책임도 있지만, 첫째 가르쳐야 할 제사장의 책임이 제일 커요.
지금 성경책을 가지고 있어도 개인이 갖고 있고도 지식이 이만큼 갖고 있어도 제대로 안 가르치면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때는 성경이 딱 한권이나 두권밖에 없었을 텐데, 하나는 왕이 자기 곁에 놔두고 안 가르치고, 하나는 지성소에 제사장이 갖다놓고 안 가르치면 모르는 거죠.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데, 오늘은 전부 성경책 한 사람이 여러권씩 갖고 있고, 이 번역 저 번역 다른 번역 온갖 교재도 많이 있고 얼마든지 매체도 많이 있어서 공부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공부를 안 가르치고 안 배우고 해보세요. 그래서 하나님 모른다 하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밤이 깊어가고 가을이 깊어서 밤이 길어지고 하면 성경도 안 보이는 것을 혼자 열심히 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모를 봐에는 그냥 놔두고,
공부 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읽어 오시고, 많이 안 읽어도 돼요.
예배 오기 전에 두서너장이라도 읽어 오시고, 그리고 집에서 읽어와도 참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하다가 저와 함께 공부하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집에 가서 한번 더 정리하고..
그러니까 그게 기본이죠. 예습 학습 복습..
예습 학습 복습 이게 우등생 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저와 보니까 어려운 것도 보이죠? 딴데에서는 이렇게 가르치는 데가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지구상에서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 이왕에 오실 때 많이 안 읽어도 괜찮아요. 두장 석장 틈틈이 꼭 읽어보시고 모르겠다 싶으면 줄을 그어놨다가 모르겠다 싶은 것을 배어야 달게 읽어지는 거야.
집에 가서 정리해보고 이렇게 해서 여러분 모두가 누구에게든지 안 배웠으면 모르지만, 배웠으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데까지 이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에도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것 때문에 이렇게 애를 태우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신실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성실히 지키는 것이 신실한 것인 줄 믿습니다.
또 그 신실함으로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면 먼저 우리가 어떤 언약을 맺었는지를 잘 읽어보고 깨닫고 즐거워하면서 지켜 나가는 거룩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