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다자이 오사무/김춘미/민음사
인간 실격 (人間 失格)
실격이란, 기준에 미달하거나 규칙을 위반하여 자격을 잃음을 말한다고 한다.
사진 석장에 대한 기괴한 설명이 나오는 서문, 세 개의 수기와 후기로 이루어진 글에서 첫번째 수기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13쪽
사진 석장을 설명하는 서문을 보니 뭔가 심상치 않는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인간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데 본문의 첫번째 글은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 인격체가 적어놓은 듯한 말로 시작한다. 정신병자의 글이거나 이미 이 세상을 하직한 후에 적을 수 있는 글이라 생각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 16쪽
주인공 요조는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여 인식하고 있다. 그 구별이 긍정적인 것이 아닌 부정적이며 자신을 사람들로 부터 격리시키고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저는 소위 장난꾸러기로 보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중략... 그렇지만 제 본성은 장난꾸러기 같은 것하고는 도대체가 정반대의 것이었습니다." - 25쪽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자 스스로 타인에게 보일 자신을 만들어 간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러 그랬지?'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다케이치한테 간파당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온 세상이 일순간에 지옥의 업화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것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왁하고 소리치면서 발광할 것 같은 기색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 32쪽
스스로 안정하지 못한 요조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자신을 만들어간다. 늘 불안해 하면서. 그러다가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만다. 안정하지 못해서 불안한데 안정한 것처럼 꾸민 것이 탄로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 다케이치를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죽음이라는 것까지 생각해본다. 다케이치와 관계가 깊어지자 자신의 자화상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다케이치가 말한 것은 예언이 되어 그를 내내 따라다닌다.
"그는 저와 형태는 달랐지만 역시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동류였습니다." - 45쪽
시골에서 도쿄로 나온 후, 그는 호리키 마사오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그도 자신과 비슷한 류라 생각하지만 그는 자신을 가진 인간이었고 요조는 아직 인간이 아닌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호리키는 계속 요조의 주변에 존재하며 그를 서로를 경멸하지만 교재하고 서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관계를 유지한다.
"새벽녘에 여자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습니다. 여자도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완전히 지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또 저도 세상에 대한 공포, 번거러움, 돈, 예의 운동, 여자, 학업 등을 생각하면 도저히 더 이상 견뎌내며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그 사람의 제안에 쉽게 동의했습니다." - 67쪽
'여자'에 관한 다케이치의 예언때문일까 그의 삶은 여자들에게 둘러쌓인 존재가 된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것에 지친 여자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인식하지 못한 자의 동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이 인간임을 인식하여 했을까?
"'진짜야?'
조용한 미소였습니다. 진땀이 석 되 흘렀습니다. 아니, 지금 생각해도 콱 죽고 싶어집니다. 중학교 시절, 저 바보 다케이치한테서 부러 그랬지. 라는 말로 등에 칼을 맞아 지옥으로 굴러 떨어졌던 때의 느낌 이상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닌 기분이었습니다. 그 일과 이 일, 이 두 가지는 제 생애의 연기중 대실패의 기록입니다. 검사의 그런 조용한 모멸에 맞딱뜨리느니 차라리 십 년 형을 구형받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할 때조차 가끔 있을 정도 입니다." - 73쪽
늘 누군가를 의식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삶을 살아왔다가 다케이치에게 그의 행동이 읽혔듯이 또 한번 그의 행동이 검사에게 읽힌다. 자신을 찾지 못한 사람이 타인 모르게 자신의 모습을 만드는 작업(?)을 들켰을때의 민망함은 죽음 이상의 느낌일까? 요조에게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 이상이었다.
"나란히 앉아서 콩을 먹었습니다. 아아, 신뢰는 죄인가요? 상대방 남자는 저한테 만화를 그리게 하고는 몇 푼 안되는 돈을 거드름을 피우며 놓고 가는, 삼십 세 전후의 무지하고 몸집이 작은 상인이었습니다." - 117쪽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요시코가 더렵혀졌다는 사실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렵혀졌다는 사실이 그 뒤에도 오래오래, 저한테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비루하게 쭈뼜쭈뼛 남의 안색만 살피고 남을 믿는 능력에 금이 가버린 자에게 요시코의 순결무구한 신뢰심은 그야말로 아오바 폭포처럼 상큼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룻밤 사이에 누런 오수로 변해 버렸습니다. 보세요, 요시코는 그날 밤부터 제 일비일소에조차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 117쪽
자신을 신뢰 그 이상으로 대해주었던 요시코, 신뢰 그 자제였던 요시코로부터 신뢰를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그는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된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게된 요조는 가족에게 구원을 청하고 그는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누가 무언가를 주었을 때 그것을 거절한 것은 내 생애에서 그때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130쪽
병원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는 요시코가 건내주는 주사기와 약품(모르핀)을 거절한다. 처음 누군가의 손길을 거부한 것이다. 어릴때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아버지의 기쁨을 위해서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선물로 원했던 그는 이제 당장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뇌까린다. 인간 실격.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 134쪽
그처럼 어려운 삶에서 그를 견디게 했던 것은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힘들어도 지나면 된다. 지금은 비록 밤일지라고 기다리면 아침이 오는 것처럼. 그런데 이런 밤이 그에게 계속해서 다가오고 그는 왜 자신만의 촛불을 밝히지 않는 것일까?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 138쪽
아! 이 한 줄로 그 이유를 찾기에는 빈약하다. 그러나 어쩐다. 나는 다른 이유를 이 이야기 내에서 찾을 수 없다. 아버지,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 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핏줄로 엮인 아버지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면 최고이겠지만 어떤 게임에서는 대타가 홈런을 더 잘친다. 요조에겐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자가 없지 않았을까?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 133쪽
형의 조치로 병원을 나와 그는 고향 근처에서 지낸다. 물론 도움이가 함께 한다. 그리고 행복도 불행도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인간 실격은 나의 삶이 비참하다거나 내세울 것이 없다거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았다거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 등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고 행복도 불행도 없는 상태에 있을때 받는 것이 아닐까? 그가 발견한 진리처럼 지나가지 않는다면 인간의 세계가 아닌 것이다. 행복도 지나가고 불행도 지나간다.
나에게 인간 실격의 조건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다섯째 아이(도리스 레싱)"이 떠올랐다. 이 책을 여기에 언급한 것이 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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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소 (直訴)
인간실격 뒤에 붙어있는 또 하나의 소설.
예수를 팔았다고 기록된 가룟유다의 심경을 그린 이야기이다. 주섬주섬 유다가 했을 법한 말들을 엮어 놓았다. 그래 그럴수도.
"사반의 십자가"라는 소설의 제목이 떠오르는데 내용은 글쎄... 30년전쯤에 읽은것이니 기억이 난다면 거짓이겠지.....
(2016년4월26일. 평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