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은밀한 일
렘 33:1-9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가 멸망해 가는 절망적이고 급박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당시 남유다의 왕이었던 시드기야가 예레미야 선지자를 가두어 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가 하는 예언의 말씀이 자신의 뜻과는 맞지 않았고 자신을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남유다의 멸망을 예언하게 하십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며, 우상들을 섬기며 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바라셨을 때에 남유다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도록 결정하셨습니다.
결국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를 향하여서 멸망을 예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사람들에게 대적해서 싸우지 말고, 항복하면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포로생활을 준비하라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니 이 말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한참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데 힘내서 바벨론과 싸워서 승리하십시요가 아니라, 어차피 졌으니까 포로생활을 준비하라는 말에 누가 호의를 가지겠습니까?
결국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남유다는 확실하게 멸망을 당할 절망적인 일만 남겨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말씀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나라가 망할 것이 확정된 때에 하나님은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절망가운데 있던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셨습니다.
유다나라가 멸망해서 없어질 것 같지만,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당신의 계획이 있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들은 너무 크고 은밀해서 사람이 도저히 알 수 없도록 진행하십니다.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잘 알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그 계획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서 말씀하시는 것이, 하나님은 앞으로 있을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해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 : 일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2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이 어떠한 분인가를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일들을 계획하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주체적인 분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나오며 성취됩니다.
(잠언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그런데 유다백성들은 이러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협하는 바벨론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던지, 그렇지 않으면 바벨론에게 망해서 포로가 되어서 포로생활 준비를 하라고 하셨는데, 유다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서 자신들의 계획대로 고집스럽게 행했습니다.
4-5절에 보니까, 유다사람들은 바벨론 사람들과 싸울려고 했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인해서 싸움에서 비참하게 폐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을 돌아보지 않겠다고 하셨고 그 결과가 그러한 비참함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주권자임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알고 믿는 자들이면 하나님 앞에 부르짖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자신들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들을 하나님께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세상 사람들을 의지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절대적인 주권자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수고하고 애쓰는 삶을 살아간다고 하더라고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주신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6절)
바로 그 멸망 가운데서 새로운 회복을 하나님께서는 진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대사람들은 스스로 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를 썼지만 그게 통하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계획하고 있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셨던 크고 은밀한 일 중에 하나는 치료입니다. 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사회나 병들게 되면 평안이 없고 안정감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일이 6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병들어 멸망 당해 죽은 것 같지만, 도리어 이제 고쳐서 낫게 해주시겠으니 이를 보라고 하십니다.
이 은밀한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악으로 멸망당하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간단한 감기에 걸렸어도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거부하신다면 고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하고 죽을 중병에 걸렸어도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시면 그 일을 이루시는 줄로 믿습니다.
셋째 : 죄를 사하여 주신다.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 할 것이라”(8절)
유대나라의 멸망은 하나님께 범한 죄악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끼리 잘못을 했으면 서로 용서해 주거나, 아니면 서로 무시하고 살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범죄는 그렇지 않습니다. 꼭 해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작은 죄던, 큰 죄던 하나님앞에서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백성들이 범한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시고,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제대로 된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그들이 죄로부터 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제사가 회복되고, 그들의 죄가 사해짐을 하나님께서는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후에 보면, 유다사람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자신들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그리고 속죄의 제단을 쌓아서, 그 전에는 형식으로 드렸던 제사를 진실함으로 행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를 받으시고, 그들의 죄를 정케하사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 죄사함의 크고 은밀한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이 죄가운데서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모든 죄를 정하게 하시고, 의롭게 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넷째 : 열방의 찬송과 영광이 됩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9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택하신 이유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성전을 세우시고 세계 열방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서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수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들의 뜻대로 살아갔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크고 은밀한 일은, 바로 그러한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셔서 나의 기쁨의 이름이 될 것이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루살렘에 주시는 복과 평안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세계의 열방들이 이 모습을 보고서 도리어 두려워서 떨 정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수치가 되었던 자들을, 하나님의 기쁨, 찬송과 영광의 존재가 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