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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호 시집 <산빛에 물든 꽃을 봅니다>
해설
통찰洞察을 통通한 통달通達의 화법話法
박 윤 배 | 시인
1.
서성호 시인에게 시란 무엇일까? 우선 살펴보면,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려는 노력의 산물이 곧 그의 시이다. 시의 통로가 되는 객관적상관물들은 늘 현재에 머물고 있으면서 시간 넘나들기를 통해 기억의 반추反芻 혹은 자신의 현재에 대한 반성의 도구가 되고 있다. 과거는 늘 힘들고 가난했지만 아름다웠고 현재에게 어떤 힘이 되는가 하면 희망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원천이 되고 있어, 시인의 기억망에 걸려든 지난날의 연민들은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이미지를 재생산해 내는가 하면 튼실한 의미의 뿌리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고요하고 정적인 기억일지라도 역동적인 힘을 얻게 되면서 새로운 상상의 옷을 걸친 채 무성한 잎을 피우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시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농경사회를 건너오면서 누구라도 한 번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시인의 뛰어난 통찰로 재구성된 형상들은 시인이 지닌 고유한 향기와 안목에 의해 개성적이고 새로운 생명력을 겸비하면서 언어가 뛰어놀 수 있는 원고지 화폭에 이미지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통찰이 결국 그만의 목소리를 만나 통달되고 있다고 보면, 시인이 시로 말하는 화법은 나름 서정시의 한 세계를 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할배는 말 타고
이곳저곳 유랑하셨으니
한량이었나 보다
할배는 오뉴월 모내기에도
쓰러질 초가삼간에서
돈 안 되는 한시를 매미처럼 읊곤 하셨다지
할배는 그래도 되었나 보다
유랑하는 할배의 탈은
또 누구에게 넘겨질 것인지
팔월 보름 전
낫 한 자루에 씨름하는 손자를
할배는 하늘에서 내려보고 계시겠지
- 시 「벌초 1」 전문
양지쪽 산소에
누워 계신 할매는
흰머리 수북한 손자가 보고 싶을까
할매 아들은
무지개다리 건너 당신 곁으로 가셨고
손자는 추석 때마다 겨우 벌초로 인사를 드린다
그러나 할매는,
찾아온 손자가 내뱉는 허튼소리
방귀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대꾸가 없다
-시 「벌초 2」 전문
현재에 머물러 사는 시인은 자신의 근원을 찾음에 있어, 벌초라는 행위를 통해 과거의 할배와 할매를 소환하고 있다. 자신에 존재에 대한 일종의 확인 방법으로 과거를 소환한 것인데, 아마도 기억만으로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무덤 속 할배를 통해 유전적 동일성을 읽어 내려는 무의식적 심사가 그의 시 벌초에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할매와의 어떤 확인, 어릴 적 아마도 사랑 듬뿍 받았던 무의식적 기억을 시인은 지금 만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사적인 내막은 시인과 일면식이 없는 관계이니,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소환된 과거가 거기까지이고 아마도 벌초를 한 곳이 할배와 할매 산소에 해당되고 그 벌초 후에 아마도 이 시가 써졌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시인이 과거 의식을 건드리고 있는 걸로 봐서 할배와 할매는 그의 시적 행위에 있어, 매우 큰 그리움의 대상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특히나 엄마는 시 전편을 읽다 보면 「모시나비 입맞춤」, 「검정고무신」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할배와 할매의 비중은 유년기 기억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 속에 등장하는 할배는 말 타고 이곳저곳 유랑할 수 있는 할배이고 보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한량인 셈이다. 참고로 한량은 할 일 없이 먹고 노는 뜻의 한량이 아닌 한량閑良, 조선시대 양인 이상의 특수 신분층을 두고 한량이라 한다.
「용비어천가」에서는 한량의 뜻을 풀이해 ‘관직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한량이라 속칭한다.’고 하였으나 조선 초기의 한량은 본래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무과에 급제했어도 관직에 나가지 않는 대충 그런 계층으로 본다면, 한시를 읊던 할배와 현재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은 더 깊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아마도 시인은 시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업장을 떠올리며 산소에 자란 풀들에게 예초기 날을 들이대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시인의 시 「벌초 2」 에 등장하는 할매는 흰머리 수북한 손자를 안타까이 생각하는 그런 다감한 할매로 그려져 있다. 당신 아들은 곁으로 데려다 놓았지만, 손자가 올리는 추석 봉물 앞에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매의 눈길은 내뱉는 허튼소리 방귀 소리도 한량없이 어여쁘게 귀를 열고 듣는 할매의 모습이다. 정이 깊었던 관계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벌초라는 행위를 통해서 시인은 자신의 존재 근원에 대한 고백을, 현재 자신이 시인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당위를 제시하고 있다.
바람 불어 잎 지니
홍시가 나타났다
욕실 거울을 닦으니
초라한 내 얼굴도 보였다
산속에 사계절이 있듯이
나에게도 사계절이 있다
하찮은 풀 한 포기도 꽃을 피우듯
나도 꽃 한 송이 피우고자 산다
- 시 「자화상」 전문
시인 자기 자신을 그린 시이다. 화가들은 변화를 꿈꿀 때마다 자신의 그림에 자화상을 그리곤 한다. 그림의 경향이 바뀔 때마다 그리는 얼굴은 나이와는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젊던 얼굴이 늙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기는 하지만 화가들의 자화상은 어쩌면 외양이 아닌 내면의 심리를 여러 조형 요소를 통해 드러내려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인 또한 위 시 「자화상」을 통해서 바람이 불어와 잎 진 상태에서야 나타나는 얼굴 그걸 그려놓고 싶었던 거다. 잎이 상징하는 것은 일종의 가식일 것이다. 포장을 걷어내고 드러난 실체의 얼굴일 것이고 마치 가을 하늘에 걸린 붉음의 절정인 홍시에 비유하고 있다. 욕실 거울을 닦으니 초라한 얼굴(내면의 얼굴)도 보였다고 말하는 시인은 자신의 일생을 4절기의 계절로 환치하면서 하찮은 풀 한 포기도 꽃을 피우듯, 자신도 꽃 한 송이 피우며 산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때 한 송이 꽃이란 아마도 불변의 가치를 지닌 시 한 편은 아닐까 짐작되는바, 시를 향한 열정과 고뇌가 절절하게 각오로 묻어나는, 위의 시 「자화상」은 그런 자화상의 다름 아니다. 또한 시인에게 자화상이란 자신에 얼굴을 그리는데 한정하지 않는다. 모든 마주치는 사물들이 다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주면서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번 시인의 시집 속에 시들을 분류 열거해 보면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탐색하는 시들은 다음과 같다. 「감자」, 「오월의 노래」, 「낭인의 배낭」, 「난꽃」, 「과욕」, 「안개를 좋아했다」, 「장화」, 「강아지 꼬리풀」, 「동면 일기」, 「걸으면 병이 낫는다」, 「흐린 날도 좋다」 등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시 한 편을 보면
천둥과 비바람이 지난
쪽빛 하늘에
흰 풍선 여러 개가 놀고 있었다
산등성에 기어다니는
아직 덜 부푼 아기 풍선 하나
까불거리며 가지 끝에 앉아
터질 듯 불안한 풍선
쪽배에 노를 저어
먼 바다로 나가는 당찬 풍선
팽팽하여 거리낌 없는
불혹의 풍선
내 삶이 고단해도
천명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풍선
직관으로도 뭐든 할 수 있는
귀밑머리 흰 여섯 번째 풍선
어느덧 한나절은 가고
어둠이 찾아올 무렵
여섯 개 풍선이 집으로 가는 길
하늘이 허전하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하다
-시 「풍선을 띄우고」 전문
「풍선을 띄우고」는 천둥과 비바람이 지난 쪽빛 하늘에 이른 시인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 길 위의 여정에서 자신의 현재를 잘 반영하고 있는 시일 것이다. 덜 부푼 아기 풍선- 가지 끝 까불거리는 불안한 풍선-노 저어 바다로 나아가는 당찬 풍선-팽팽한 불혹의 풍선-고단해도 견디는 풍선 –직관이 깊어진 귀밑머리 흰 풍선 등 여섯 개의 풍선으로 점차 변신을 거듭해 온 풍선이,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하늘은 “허전하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하다.”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결국 인생의 한 여정이 풍선과 다르지 않으며 풍선=뜬구름의 의미는 과거가 아닌 현재인바 어느새 지나와 버린 인생길의 여정을 통달의 언술로 기술해 놓고 있는 그런 시로 볼 수 있다.
2.
시인의 시에 나타난 두 번째의 통찰은 농경사회의 서정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시인이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몸속에 혹은 기억 속에 각인된 풍경들은 농경사회에서 이루어진 가족관, 인간관, 자연관에서 형성된 가치 기준들이 직관을 통해서 마치 통달한 듯한 진술로 여러 편의 시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시에 끌어들여진 중심 소재들이 자연이면서 농촌의 풍경과 다르지 않음은, 시인인 그가 살아온 풍토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군 부대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낸 시인의 시에 왠지 초콜릿 냄새가 나고 혼혈 아이들의 비애가 묻어나는 것처럼, 어촌도 아닌 내륙의 농촌 냄새가 시인의 시를 지배하고 있다.
갓난아이 혀를 닮은 밤톨이다
헤벌쭉 벌어져 툭 떨어지니
나무 아래 까불거리던 강아지도
깜짝 놀라 호들갑이다
이 밤톨로 며느리 치마폭에 던지며
자손 번영을 바라시던
아버지
어머니
마른 풀잎을 일으켜 세우는 바람 속에
떨어진 밤송이를 주우며
올 추석 제사상에 올릴
햇밤을 줍습니다
-시 「햇밤」 전문
못생겨도 기특하지
비스듬한 곳
기름지지도 않고
많은 물도 필요치 않아
서늘할수록 힘이 나
채소라 하기에도,
곡식이라 말하기도 뭐하지만
밥을 대신하고
삶아 먹기도 전 부쳐도
수제비 떠도 좋아
연인들의 손에 잡힌 포카칩은 얼마나 행복해
하지만
까까머리 책가방에
도시락 반찬으로 3일째…
어머니는 맛있다고 하면
기본이 일주일이었지
그래도 못생긴 감자는 좋다
-시 「감자」 전문
위 시 「햇밤」에서 밤톨을 보면서 어린아이의 혀에 낯설게 하기로 비유한 것은 아마도 밤이 갖는 다산의 의미를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벌어진 밤송이에서 형제처럼 살을 맞대고 있던 밤알이 빠져나오는 모습을 연상했거나 혼례식 후 폐백에서 어른들이 신부의 치마 섶에 던져주던 밤의 의미가 고스란히 시 안에 옮겨지는 연상의 이동은 지금까지 어떤 시인의 시에서도 만나기 힘들었던 시인만의 독특한 기억의 환치로 보인다. 제상 진설도에서도 항상 첫 번째 과일로 치는 밤의 의미를 시인은 시 속에 은근슬쩍 데려다 놓고 있다.
현재 시인은 그런 밤을 올 제상에 올리려고 줍는 동작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밤송이에서 빠져나온 밤알을 향해 손을 뻗는 동작이 있고 그런 손이 닿기 전 계절의 막바지에 이른 풀이 슬쩍 자신의 잎에 바람을 불러들여 주는 이 파노라마 같은 장면은 시인이 아니면 어찌 통찰하고 통달의 언어로 빚어낼 수 있겠는가.
또 다른 시 「감자」 전문에서 감자를 노래하면서 자신과의 동일화를 통해 못생긴 감자를 친근한 감자로 탈바꿈시켜 놓은 기술은 발랄하기도 하며 탁월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연인들의 손에 잡힌 포카칩은 얼마나 행복해” 이 부분에서 구태의연하게 끝나는가 싶던 감자를 돌발적인 감자로 돌려놓는 발랄한 순발력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어머니가 도시락에 넣어준 감자는 바로 농경의 산물이고 구황작물로도 대표 격 아니던가. 자식의 맛있다는 말에 며칠이고 도시락 반찬으로 넣어주는 어머니의 아픈 심정과는 다르게 “그래도 좋다”라고 말하는 아들은 이미 엄마의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나름 철이 든 아들로도 보인다. 이렇듯 시인의 시는 농경의 서정을 다양하게 담아내려는 어떤 의도를 품고 있다. 그런 유형의 시를 시집 속에서 살펴보면 「참새와 메뚜기」, 「고추」, 「참깨와 참새」, 「강정」, 「장화」, 「모내기」, 「원두막에서 졸다 깨다」, 「보리타작」 등의 시들이 옛 농경의 향수를 오감을 통해 떠올려 주고 있다.
3.
또 다른 한편으로 시인은 안주하는 삶과 떠도는 삶을 동시에 꿈꾼다. 할아버지가 말을 타고 전국을 유랑하는 한량의 삶을 살았듯이 시인 또한 유랑의 시편을 남기고 있다. 여행을 통해 쓴 시들이란 대개 요설에 가깝거나 설명적일 때가 많은데, 시인은 그런 설명보다는 직관의 화법을 선택하고, 어느 한 연에서 알레고리를 통해 풍경의 너머를 의미 혹은 자신의 생을 반추한다는 점에서 나름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귀뚜라미 우는
증도 해변에 서서
구름 속에 갇힌 달을 보네
-시 「신안 증도에서 2」 일부
화북리 덕천골 길가에 핀
무궁화 백일홍이 친구처럼 반갑다
부처님의 선자扇子인가?
절 인근 빙혈에서 불어주는 찬 바람도 시원하다
-시 「인각사」 일부
동백 숲 청아한 새 울음소리
꽃피면 만나 기뻐서 울고
피고 지는 꽃잎 따라 슬퍼서 울고
붉은 피 토하듯
이리저리 꽃들은 절규한다
-시 「옥룡사지 동백숲」 일부
꽃은 왔다가 지고
삶은 쫓다가 지치고
배회하거나 주저하지 않아도
봄이 오면 다시 피고 지는 것이다
-시 「화엄사 홍매화」 일부
겁 없이 내민 청보리는
남쪽 바람에 실려 연두색 파스텔로
휑한 들판을 문지르고
들 한가운데 우뚝 선 정자나무는
각시를 기다리는 더벅머리 총각이다
-시 「리틀 포레스트」 일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예배당을 줄지어 놓고
신안 증도의 갯벌에는 칠게와 농게, 짱뚱어가
보란 듯이 여유란 이런 것 하고 가리키고 있다
-시 「한국의 섬티아고에 가다」 일부
꼬부랑 고개는 몇이나 넘었을까?
천둥벌거숭이던 아이가 자라
고루한 돈키호테가 되고
이윽고 풀밭 속에 들어앉은 야생화
오선지에 그려진 안단테
-시 「만항재를 넘다」 일부
반면 머무는 현실의 자리에서 또한 소홀하지 않으려 남긴 시편들이 유랑의 시편들 못지않게 시를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반성의 미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고백을 통해 “지금에야 해보는 여보 사랑해/ 겉모습이 초라한 나는 바보야”가 설득력을 획득하고 있다.
가녀린 줄기 세워 지나온 세월
한 송이 바라보며 피워 올린 꽃
눈보라 몰아치던 어두운 날도
대문 앞 하염없이 기다린 밤도
짐짓 모른 채 넘긴 부끄러운 나
패랭이꽃 당신은 순결한 사랑
사랑이 진할수록 두렵지 않아
당신이 아픈 날은 내색도 못 해
지금에야 해보는 여보 사랑해
겉모습이 초라한 나는 바보야
-시 「패랭이꽃 당신」 전문
4.
서성호 시인의 시집 『산빛에 물든 꽃을 봅니다』는 결국 패랭이꽃에게 바치는 시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하면서 시인이 한 권의 시집 안에 돌리는 피의 온도는 매우 따듯하다는 걸 느낀다. 한 권의 시를 다 읽고 난 그 느낌이 “왜 이리 편안한가?”의 이유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과 그 시인의 눈길이 머무는 곳곳의 반응과 사랑이 마치 세상을 다 이해한다는 어떤 통달의 안목에 잇닿아 있음 때문은 아닐까?
지렁이가 아픈가 보다
마당 위로
흙을 봉분처럼 토해놓고 있다
나도 아프다
흰 종이 위로
설익은 말을 토하고 있다
-시 「지렁이가 흙을 토하다」 전문
해와 달 중에
누가 더 빠를까
이런 생각들이 창가에 어른거릴 때
서산을 넘는 해도 늙는다는 것을 본다
그러나, 노을은 항시 불평이 없어
어둠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나도 함께 걷는다
-시 「오후」 전문
우리 집에는 다섯 식구가 산다
마누라와 나 견공 셋이다
그들은
애완견 하늘
사냥개 별
마당개 태양이-본명 그레이트 피레니즈
오늘도 진서리 맞으며
잔디마당에 엎드려 코 고는 두 놈을 내다보며
집 안에서 뜨뜻하게 잠자는 하늘이를 툭 치고 나선다
그렇다 인생이 그렇고 짐승도 그렇지
지게 자리 놓기 나름이라고
어떤 놈은 안방에서 뜨뜻하게 자고
별 볼 일 없는 놈은 찬 서리 맞으며 밖에서 잔다
살다 보니 그렇더라
가진 것들은 더 가지려 하고
못 가진 것들은 못 가져 안달이고
바람이야 어떻게 불든 구름은 흘러가겠지
하늘과 별과 태양은 매양 그대로인 것을…
-시 「하늘과 별과 태양」 전문
위 시 「지렁이가 흙을 토하다」에서 지렁이가 아픈 걸 보는 시인은 결국 자신이 아프기에 지렁이도 아픈 것임을 역설적인 화법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이러한 시적 경지는 눈앞의 대상을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 속으로 자신이 녹아든 후에나 가능한 동일화의 한 예이다. 지렁이가 쌓아놓는 흙이 마치 봉분처럼 읽히는 것도 내가 아파서 흰 종이 위에 설익은 말을 토해놓는 것도, 서로 다르지 않음이랄까! 아무튼 다른 것을 다르지 않게, 같은 것도 같지 않게 언어를 풀어내는 연금술의 경지는 예사롭지 않음에 틀림이 없다. 행간의 미학 또한 살아 있으며, 함축이 상징을 만나게 되면서 통찰이 낳은 통달의 한 문장을 만나 멋진 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두 편의 시를 거론하자면 해와 달의 경주를 생각하는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이다. 먼저, 시 「오후」에서 시인은 늙음 즉 노을을 불러내고 자신과 노을이 다르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 또한 시집의 대표적 수작이라 할 수 있으며 마지막 시 「하늘과 별과 태양」은 시인 자신의 근황을 솔직한 문체로 풀어놓은 시여서 “살다 보니 그렇더라/ 가진 것 들은 더 가지려 하고/ 못 가진 것 들은 못 가져 안달이고/ 바람이야 어떻게 불든 구름은 흘러가겠지” 가 독자들에게 설득력 얻기에 있게 충분하다.
시인이 그리는 꽃이, 산빛을 머금고 잔잔한 감동으로 널리 오래 독자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