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최찬상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시 읽기> 반가사유상/최찬상
시에서는 철학적 사유나 고차원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고 설명해서는 안된다. 설명하는 순간 사유를 담은 수필이 되고 만다. 시는 오직 이미지와 시적 진술로만 사유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감각화된 사유이다. 감각화된 사유는 개별화, 구체성 집요함에 깊이를 더하는 플러스 요인이다. 시적 정황을 직관하는 시적 사유가 단순한 설명이 아닌 시적 진술로 드러날 때 우리는 무릎을 탁 치는 감동을 받게 된다.
시에서 적절한 사유를 나타내려 할 때 다 안다는 듯이 우월한 태도로 상황을 인식하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깊이는 내용이 깊이가 아니라 정서의 진한 맛(자극)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월한 화자는 깨달음을 주려는 태도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깨달은 것에 확신을 갖고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의지를 갖는다. 그런 확실한 전달 의식은 시가 내용 전달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시는 내용이 아니라 정서에 기반을 두고 독자에게 감각적으로 스며드는 장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화자 우월성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정황에 밀착되어서 시적 대상의 태도가 갖는 겉의 속성과 맞닿아 있는 내적 속성을 보다 더 진지하게 감각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반가사유상」은 201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의 깊이는 총체적이고 대의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단순성, 근원성, 본질성이 공감대가 큰 시적 사유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간절한 체험과 만날 때 시적 깊이와 직관이 생겨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개별자의 눈으로 간절하게 체험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최찬상 시인의 「반가사유상」은 화자의 개입 없이 시적 대상인 반가사유상의 외연과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이 시에서 반가사유상의 외적 속성은 고정된 자세, 철로 된 몸, 녹이 슨 상태만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그런 외적 형상이 가진 속성을 바탕으로 내적 속성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탐구를 할 때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이 시에서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은 ‘녹이 슨 상태인데도 아직도 저 안에 부처가 있을까?’, ‘그가 만약 떠났다면 남겨진 형상은 무슨 의미일까?’, ‘그가 만약 떠났다면 남겨진 형상은 무슨 의미일까?’, ‘자세는 무엇을 의미할까?’ 하는 것들이다.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바탕으로 답을 찾듯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아마도 ‘그는 면벽하는 자세만 남기도 떠났다.’라는 사유가 답으로 탄생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시를 쓸 차례다. 구체적인 겉의 속성은 꼭 필요한 것만 묘사한다. 그런 후 이면에 담겨 있는 속성을 아주 천천히 섬세하게 시적 진술을 통해 던져 놓으면 된다. 그런 방식에 의해 이 시의 압권에 해당하는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생각이므로/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란 구절이 탄생하게 됐을 것이다. 거기에 담긴 시적 사유는 간결하지만 울림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무소유가 갖는 자유로움과 공할함이 이 구절 하나에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에 “한 자세로/녹이 슬었으므로/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반짝이겠다”라고 한 구절 또한 백미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이 시의 깊이와 매력에 흠뻑 빠졌을 것이다. 무소유의 절정은 무소유를 깨달았다는 생각마저 지우는 것이기에,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반짝이겠다”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절창이다.
이렇게 시적 사유는 단순하고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에서 비롯 된다. 단순성, 근원성, 본질성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것들이 훼손된 상황이나 부재된 상황 또는 차이를 드러내는 상황을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첫댓글 이 시는 201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