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그저께(12일. 금요일)에 1년만에 김오랑과 12.12관련 자료들이 돌아왔습니다.
원래는 지난해 10월경에 '김오랑의 일대기'의 완성 원고와 함께 돌아와야 할 것인데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서류(자료)만 무사히 2박스가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8월에 '김오랑중령 일대기' 제작관련 모 기자분과 계약을 하였으나
계약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계약금은 아직 돌려받지 못하였고 자료(서류)만
너무나 깨끗하게 돌아왔어요. 서류를 넘겨줄 때 포장했던 쇼핑백과 작은 가방등에 내용물은 너무나 보관상태가 양호하였고, 12,12관련 재판진행 과정의 진술서, 소명서, 판결문 등등도 너무 양호하게 돌아와서 감사했어요. 계약한 작가분이 한번도 넘긴 흔적이 없었어요.

(백중절의 망인의 위패 2011. 08. 14. 00선원 하계동)
오늘은 저희 집에서 멀지않은 주택가에 00선원(절)이 있는데
백중에 마추어 6주전에 이 00선원에 신청을 하였습니다. 소정의 비용으로 '김오랑과 백영옥'의 이름을 올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신묘장구대다라니경'을 10장 적어서 전달도 하였고요
오늘이 백중절로 절에서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추모를 하는 기일인 것 같아요.
현재 김오랑 중령과 백영옥씨가 현충원에 합장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92년 백영옥씨가 죽은후 왜 현충원에 합장되지 못한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3년전에 김오랑 중령의 형을 만나서 합장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조용히 거부의사를표시 표시했습니다.

(주말에 사무실에서 인증샷)
합장은 어느 한 측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면 가능(현충원 확인)하다는 것인데
백영옥씨의 형제(백영도, 행불)가 당시 합장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백영옥씨가 살아 계실제 백영옥씨와 시댓간의 관계가 어떻했는지 몰라도
백씨의 사후에도 사돈 양가의 관계가 소원해던 모양입니다.
제3자들이 관여할 수없는 부분이네요.
어쨌튼 올 백중에 김오랑과 백영옥씨를 같이 이름하여
"좋은 곳으로 가셔서 영면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김오랑 중령의 일대기' 관련하여 지난 1년동안 힘들었습니다.
계약직후부터 모 작가에게 많은 부분이 아쉬웠지만 ING에 대해 행복했습니다.
처음 그 분의 진정성에 의심이 없었고 김오랑관련 저의 초고를 읽고 울었다는 말을 듣고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대기'계획에 대한 사실을 알고 맡겨달라고 하였지요.
지난 추석 때는 선물까지 들고서 인사를 하였지요.
근데 지난 10월중순이 원고 1차마감인데 아무른 답신이 없어서
함부로 간섭하기가 뭐하여 10월 말에 "잘 되시는지"라는 메일에
11월말까지 일단 완성 원고를 전달해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근데, 일대기를 저술한다면 제가 만든 초고에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저를 수차례 통화하거나 확인을 하기 위해 괴롭게 해야하는데
제게 전화든 메일이든 관련 내용의 확인을 위해 연락을 보내온 적이 없더군요.
그 작가분은 이렇게
다음말
다음달...
그러다가 아무른 중간 원고도 보여주지 않아서 올해 3월에 계약이 해지되었고
자료와 계약금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이 마저 다음주,
다음주....................
드디어 5개얼이 지나고 지난 금요일에 무사히 자료만 돌려받았습니니다.
모 기자에 대한 위의 넉두리를 하고 싶었는데
김오랑이라는 사람의 일로 누구를 몹쓸 사람으로 만들기는 아이러니하여
덮어두기로 했습니다
4월부터 다른 작가를 접촉하여 '김오랑 일대기' 요청을 드려 약속을 받았는데
자료(도서 등)을 돌려받지 못해서 의뢰를 못하였고
돌려받지 못한 계약금의 핑계로 남탓을 하였지요
이제는 '김오랑의 일대기'는 저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계약금이 저의 생활에 부담을 주는 금액이지만
돌려받지 못한 계약금 때문에 핑계를 대기에는
이제는 제 스스로가
저의 의지 박약과 손해에 대한 이재 밝히기 라는결론이 서는 군요.
이제 '김오랑 중령의 일대기'는 다시 원점에서 저의 몫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