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서울대·美로스쿨 엘리트 코스 밟아와
"어릴 때 사시라고 놀림받아 인권의식 저절로 생겼다"
"TV토론 때 왜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나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 캠프 관계자들은 선거운동 중 이 같은 질문을 종종 받았다고 했다. 곽 당선자는 어릴 때 사시(斜視) 장애인이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도 눈의 초점을 정확히 모으진 못한다.
곽 당선자는 선거운동 중 이 사실을 오히려 적극 드러냈다. 홈페이지에서 그는 "수술 전까지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많은 놀림을 받았다"며 "방 안에서 책을 읽으며 '왜 아이들은 나를 놀릴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저절로 인권 의식이 생겼고 독서하는 습관을 길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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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당선자를 말할 때 '인권'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인 그는 출마 직전까지 출소자 지원 사업, 장애인 탈(脫)시설 운동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가 '약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런 어릴 적 경험 때문이라고 곽 당선자측은 밝혔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인권위 설립을 주도한 법률 전문가 중 한 명인 그는 인권위 창립 과정에서 국가의 인권침해 행위에 단순한 '권고'가 아닌 '시정명령'까지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01년 민주당 추천으로 인권위 초대 비상임위원에 임명된 그는 2005년 인권위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사형제 폐지(2005.4)' '북한 지역 내 상황은 조사대상 배제(2006.12)' 등 뜨거운 논란을 불렀던 인권위의 권고·입장표명이 곽 당선자의 사무총장 시절 나왔다.
진보 진영 안에서 곽 당선자는 "사회운동에서 '성과물'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대부분 사회운동이 그저 '반대'만 외치다 끝나지만, 그가 주도했던 사회참여 활동은 대개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곽 당선자는 '5·18 특별법 제정 범국민대책위' 대변인(1995년)을 지냈다. 대책위 활동 5개월 만에 실제로 5·18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듬해 법정에 섰다. 곽 당선자가 2000년 형사 고발한 삼성의 불법상속 의혹은 결국 검찰·특검 수사를 거쳐 이건희 회장 기소로 이어졌다.
이 같은 전력(前歷) 탓에 곽 당선자는 종종 '좌파' '운동권'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이번 선거 기간 중 바른교육국민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그를 '마르크시스트 법학자'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곽 당선자는 "바른교육국민연합이 근거로 댄 것은 학술지 권두언(卷頭言)에서 다른 동료 학자들의 글을 평가하며 인용한 부분을 내가 직접 쓴 글로 왜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에겐 민주주의 말고는 다른 이념적인 요소가 없다"며 "나보고 마르크시스트라고 하면 진짜 마르크시스트 학자들이 웃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곽 당선자는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스스로 '강성(强性)'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에서 "부패·비리는 절대 못 본다. 약자 권익을 옹호하는 데도 아주 강성이다"라고 말했다.
인권 전문가인 그가 왜 전문 분야가 아닌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을까. 이에 대해 곽 당선자는 "방송통신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평생교육전문가로 이미 교육은 전문분야"라고 답변했다.
그가 교육감 출마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자문위원장을 맡아 학교 현장을 다니면서라고 했다. 곽 당선자는 "일선 학교를 일일이 돌아다녀 보니 아이들이 패배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교육 현장을 바꿔야겠다는 사명을 느꼈다"고 말했다.
곽 당선자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인권운동가로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와 임기란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대표를 꼽았다.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 꿈을 심어 주신 분"이라고 표현했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미국 유학 이전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면서,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천정배 민주당 의원 등과 교분을 쌓았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1995년 함세웅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