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너무 배가고파 이제는 밥을 먹게 되었구나 행복한 생각을 가지고 마당으로 들어갔는대
마루 밑에는 구두와 고무신들이 가득하고 방에서 즐거운 식사하는 소리가 밖에 까지 흘러나옵니다.
이때 부엌에서 풍채가 좋으신 아주머니가 한 분 나오시다가
거지꼴의 우리 3형제를 아래 위를 훑어 보시더니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멀건 배추국 한 사발을 떠와서
"밥이 다 떨어졌으니 이거라도 먹고 가거라"
고 하십니다.
우리는 멀건 배추국을 한모금씩 마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청주로 향합니다.
나는 걷기도 하고 다시 형의등에 업히기도 하면서
50리 길을 걸어 (20km) 청주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너무 반가워 청주시내를 훑어보니 큰 건물들이 다 파괴되고 사직동의 전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제사공장`(누에의 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을 짜는 공장)이 다 망가져 있는게 아닌가?
공장이 매우 크고 유명하여 우리는 학교다닐 때 단체로 견학을 간 곳입니다.
제사공장과 전쟁이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이렇게 파괴를 할 수가 있는가?
나는 북한이 너무 미운것입니다.
자기들이 남한을 점령하면 자기들 한테도 유익한 공장인데
공장이란 공장은 무조건 다 때려부수고 큰 건물과 다리도 다 끊어 놓는 아주 못된 전쟁입니다.
우리는 무심천 제방을 따라 영동으로 와서
다시 불문로 3가 끝을 지나 논밭길로 우암동을 바라보며 갑니다.
거기에 우리가 사용할 집이 있다는게 얼마나 반가운가?
형들의 발걸음이 더 빨라집니다.
우리가 드디어 집에 이르니 대문이 열려있고 방문도 다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뒷곁에도 가보고 이방저방도 둘러보는데
누가 살림살이들을 다 훔쳐 갔습니다.
심지어는 된장 고추장도 하나도 없이 다 퍼갔습니다.
우리는 너무 기가막혀 안방으로 들어가 엉엉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러자 우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웃이 놀라 찾아옵니다.
"엄마는 어디갔니?"
"총에맞아 돌아가셨어요"
"뭐라고?"
깜쩍 놀라 울음을 터뜨립니다.
"참 좋으신 분이 었는데 흑흑흑"
"정말로 친절하시고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었어요 어떻게 이럴수가 엉엉엉"
한 부인이 밥을 가지고 와서
"배가 고플텐데 어서 먹어라"
고 하시자 우리는 그만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어 치웁니다.
어느 분은 쌀도 조금 갖다주어 우리는 다음날 밥도 해 먹었는데
한번 해 먹으니 그만 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땔 나무가 없어서 우리 셋은 돌아다니며 나무 조가리들을 줏어 옵니다.
나는 들에나가 말라버린 풀들을 뜯어 옵니다.
우리는 밤중에 담요 한장으로 서로 껴안고 잠을 잡니다.
(계속)